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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Oct 14. 2022

양심냉장고를 기억하시나요?

이경규가 간다

1990년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잘 나가는 경규 옹을 최고의 자리에 앉게 한 '이경규가 간다'의 가장 대표 격인 

'양심 냉장고'라는 코너가 있었다.


'양심 냉장고'는 그 당시 새벽시간, 자동차들이 신호등이 빨간불이 왔을 때 정지를 하는지를 보는 몰래카메라 형식의 코너였는데 이경규와 스텝들이 숨어서 신호를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보고 있었다.

지킨다는 의미는 빨간불 일 때 정지선 앞에 정확히 서서 파란불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의미했는데 지금 세대들은 의아해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새벽시간 사람들이 없겠거니하며 신호등을 지키는 것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던 시대였다.



이걸 지키면 냉장고를 선물했다. 

그래서 '양심 냉장고'라는 이름을 썼는데 나에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 회차가 있다.

바로 첫회였다.


이경규와 스텝들은 모두 숨어서 몰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여러 차량이 신호를 무시한 채 쌩쌩 달리고 있었고 빨간불이 되었을 때 한대의 경차가(티코) 정확히 정지선을 지키며 대기를 했다. 이경규와 스텝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가 파란불이 될 때까지 출발하지 않길 바랬고 결국 그 차량은 파란불로 바뀌고 출발을 했다.


스텝과 이경규는 다급히 그 차량을 붙잡았고 운전자는 창문을 내렸는데 그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눌한 말투, 당시 그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김영희 PD는 음주운전자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지체장애인이었다. 조수석에는 아내도 타고 있었는데 같은 지체 장애인이었다. 이때 이경규는 운전자인 남편 분에게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


라고 물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당연하지 않았기에 했던 질문이었다.


그는 불편한 몸으로 어눌하게 말했다.


내... 가... 늘... 지켜... 요


당시엔 그저 주말 저녁에 TV나 비디오 말곤 볼 게 없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가족과 함께 보고 있음은 물론 여러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대부분이 다 보고 있었기에 이 첫 방송은 큰 감동을 주었고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었으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재방송 요구로 그다음 주에 방송 사상 최초로 전주의 방송인 1회 차를 정규 편성시간에 그대로 다시 방영하기까지 했다.


그 뒤로 이런 공익류의 예능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에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질서와 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다.



당시에 초등학생이었던 나조차도 나중에 커서 내가 운전을 하게 되면 언제 어디서든 꼭 신호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고 운전을 하게 된 후로 신호는 반드시 지키고 있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 신호를 지키지 않는 것이 이상하것이 되었고 이런 방송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얼마나 커졌는지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담배를 밖에 나가서 혹은 지정된 장소에서 피지만 예전엔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는 건 기본이었고 심지어 버스 안에서도 피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공중도덕이나 질서를 지키지 않을 생각을 할 때 이 '양심 냉장고'가 생각이 난다.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던 초등학교 시절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그 시절에 비해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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