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지난 아들에게 전하는 다섯 번째 편지
유유야
엄마 뱃속에 너라는 생명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엄마 몸의 변화 때문이었어
엄마는 당시에 한 시간 반을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 속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 지하철을 타다가 뛰어내려 토 한적도 있고
머리가 아프고 잠이 많이 오고 배가 자꾸 고프다고 하더라
아빠는 엄마의 이런 신체변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엄마에게 테스트를 권했고 엄마는 그저 속이 안 좋다고 생각해 임신이라고는 생각도 못하다
테스트 결과가 임신이라고 떠서 엄청 놀래더라
병원에서 임신이 확실하다는 걸 알게 되고 아빠는 엄마에게 퇴사를 권유했어
입덧이 심한 엄마에게 출퇴근 길은 너무나 힘들었거든
그렇게 엄마는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은데
입덧이 심해도 너무 심해서 정말 힘들어했어. 아빠가 참 많이 미안했지
엄마는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임신을 하다 보니 호르몬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기고 계속 졸리고 힘이 없어 힘들어했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엄마의 임신 사실을 모르실 때라
결혼 앞둔 애가 왜 이렇게 표정이 좋지 않나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해
공개해도 된다는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고 아빠가 식사하는 자리에서 두 분께 말씀드렸는데
2초 정도 멍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시더니 너무 좋아하시더라고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구나)
아니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냐고 하시면서 술 더 가지고 오라면서 너무너무 좋아하셨어
스킨십을 잘하지 않는 외할아버지가 나중에 엄마를 꼭 안아줬다고 하시더라
그 뒤로도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안아주는 모습을 몇 번 더 봤는데 아빠가 눈물이 날 정도였어
너의 엄마이기 전에 누군가의 소중한 딸임을 명심해.
(아빠도 그러고 있어)
입덧이 심한 엄마는 기대하고 고대하던 결혼식날을 가장 걱정했어
혹시나 결혼식 도중에 입덧을 할까 봐 말이지
다행히 문제없이 우리의 결혼식은 무사히 끝이 났어
엄마가 원했던 결혼식 그대로 말이야
(잘했다 우리 아들. 안 그랬으면 아빠는 평생 시달렸다)
아빠는 아침 6시에 출근하고 집에 와 일찍 자는 편이라
집에 돌아오면 엄마랑 밥 먹고 산책하고 10시가 되면 바로 잤는데 엄마에게 참 미안했지
그래도 주말마다 엄마를 데리고 한 주는 서울시내를, 한 주는 다른 지역을 여행 다녔어
아빠가 일하러 간 시간 동안 엄마는 너를 위해 좋은 것만 먹고 건강관리를 위해 산책을 했지만
먹을 땐 괜찮은데 먹고 나면 꼭 다 토해내서
아빠는 퇴근하면 엄마의 부탁으로 집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가곤 했어
나중엔 그것마저도 토하더라.
그러다 보니 새벽에 허기가 져서 매번 자다가 일어나 냉장고에서 뭘 꺼내먹었는데
아빠는 잠귀가 밝아서 엄마가 항상 조심스레 스윽 일어나 배가 볼록하게 나와서 뒤뚱뒤뚱 걸어서
냉장고 문을 조심스레 열고 뭔가를 꺼내먹는 게 너무 웃겨서 도둑 펭귄이라는 별명도 지어줬지 크크크
우린 결혼하면 아이는 셋을 낳자며 서로 이야기했었는데
엄마가 너를 임신한 기간 동안 너무 고생하는 걸 보니 도저히 세명은 무리인 것 같아서
아빠가 셋까지는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내 여자를 이렇게나 고생시키다니!!
그렇게 세 달을 아주 힘들게 입덧을 하더니 그 뒤론 괜찮아져서
이것저것 맛있는 걸 많이 먹으러 다녔지. 일주일에 세, 네 번은 외식이었던 것 같아
엄마는 아빠가 뭘 사준다고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너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온갖 사이트와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검색하고
네가 태어나면 쓸 것들을 왕창 사기도 하고 (아직 태어나기 몇 달 전인데 왜 사냐고 했다고 혼났다)
본인 것 보다 너의 것을 준비하기에 바빴지. 그러다 보니 엄마가 필요한 것들은 항상 아빠가 챙겼다
엄마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말이야(사실 네가 뭐가 필요한지 아빠는 그다지 관심이 없...)
아빠의 엄마인 할머니는 모성애가 참 강한 사람인데 아빠는 그런 엄마가 참 좋았거든?
너 또한 사랑 많이 주는 좋은 엄마를 만난 것 같아 아빠가 뿌듯하다
(나중에 아빠한테 이런 엄마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요 하거라)
출산일이 다가오고 아빠와 엄마는 더 넓은 집에 이사하기로 결정했고
집을 계약하자마자 집에 넣을 가전, 가구를 사기 위해 백화점, 쇼핑몰, 가구 전문점 등을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다녔지.
남들은 결혼 전에 하는 걸 우리는 결혼하고 나서 했는데
그것도 우리에겐 나름 추억이더라고.
너는 이 모든 과정들을 우리와 함께했구나.
우리는 그렇게 네가 엄마 뱃속에서 잘 자라고 무사히 태어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나의 여자가 너의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들을 보면서
'여자는 약하지는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