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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몬 Oct 26. 2022

중국에서 대한민국 여권을 본 역무원이 한 행동

중국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역사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친 나라. 


그렇기에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기도 하면서 다른 문화와 사회적,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서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접하는 중국의 뉴스 기사나 이야기들은 굉장히 자극적인 것들이 많다.

손흥민이 중국인이라고 우긴다느니 하는 등의 내용들로 말이다. 그러나 그건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혹은 한국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몇 사람들이 한 이야기 일 뿐이고 그것들이 뉴스를 통해 과장되고 확대되면서 한중 양국 사이를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


공자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당연히 중국 사람이다. 우리는 공자가 중국인이라는 것을 학교에서부터 배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한국인들이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우긴다고 알고 있다. 정말 황당하지 않은가? 이 문제는 TV에서도 나올 정도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모르는 사실이다. 정말 근거 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인해 양국 간의 사이가 나빠지고 있다.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나는 여러 중국인들과 마주쳤는데 중국 쓰촨 성을 여행한 후 원래 있던 우한으로 돌아가려던 기차 플랫폼에서 있었던 일이다.


때는 2009년 1월.

교환학생 학기를 마치고 중국에 남아 윈난 성의 쿤밍, 리장, 호도협을 여행한 후 기차로 쓰촨 성으로 넘어가 청두, 구채구, 총칭을 여행한 후 우한으로 기차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아름다운 구채구. 물 안이 훤히 보인다


총칭에서 우한까지는 약 16시간 정도 소요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엔 고속열차가 그리 많지 않았고 있다 해도 가격이 비싼 편이라 나는 비교적 느린 기차 편을 탔는데(우리로 치면 무궁화호 정도 될듯하다) 누워서 갈 수 있는 침대 기차칸 표를 사고 싶었지만 모두 매진이었고 결국 딱딱한 의자(硬座) 좌석을 타고 16시간을 가야 했다.


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16시간을 가면 허리가 부러질 듯 아프다.

16시간을 그 좁은 공간에서 눕지도 못하고 가야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기차를 타면 자신의 좌석과 옆사람의 좌석이 구분이 되어 있지만 그 좌석은 소파같이 일자 형으로 되어 있어 팔걸이도 없고 뒤로 젖힐 수도 없었다. 나는 그 기차를 타고 16시간을 갈걸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기에 술에 취해 잠이라도 푹 자자 싶어 기차에 탑승하기 전 마트에 가서 칭다오 맥주를 잔뜩 샀다.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잠시 밖에 나가 플랫폼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역무원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당신 지금 왜 사진을 찍냐며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군사시설도 아니었고 찍으면 안 되는 곳도 아니었기에 왜 이러나 싶었고 가방에 있는 여권을 꺼내 역무원에게 보내줬는데


한국인?


응, 한국인!


중국어는 존댓말, 반말 개념이 크게 나뉘지 않는다.


좌석이 어디야?


아, 요기 딱딱한 의자 칸이야


침대칸으로 바꿔줄까?


음??? 침대칸으로 바꿔준다고?

갑자기 무슨 횡재인가.

그런데 분명히 침대칸이 매진이었는데 어떻게 좌석이 있다는 거지?


침대칸 매진이던데 자리가 있어??


응, 여분의 자리 남겨둔 곳이 있는데 좌석 차액만 내면 거기로 바꿔줄게


대박!!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당장 바꾸겠다고 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좌석을 바꿔주었다. 내 기차표를 반납하고 침대칸 기차표로 교체했다.


딱딱한 의자 칸으로 뛰어들어가 내 짐들을 모조리 싸서 나왔고 그와 함께 침대칸으로 향했다. 그저 고맙다며 '씨에씨에'를 연발했고 조심히 돌아가라는 인사를 받았다. 16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개고생 할 뻔했던 나를 그 역무원 아저씨의 호의로 정말 편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역무원 아저씨가 왜 갑자기 좌석을 바꿔준다고 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나의 대한민국 여권을 보고 호의를 베풀었다는 사실이다. 여권을 본 순간부터 나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고 침대칸으로 바꿔줬으니 말이다.


한 사람이 전한 감동이 그 나라에 대한 인식과 그 나라 사람에 대해 호의적으로 변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때의 감동과 기적 같은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뒤 나도 한국에서 중국인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꼭 도움을 주곤 했다.


나로 인해 그들도 한국과 한국인에 좋은 감정을 가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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