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사람이 존경스럽다
앞선 이야기
여러 가지 상황들을 통해 서른 중반이 되어가면서 나의 결혼에 관한 가치관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결혼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실제로는 결혼식이 끝나고부터 시작이다.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서까지 연애 때처럼, 신혼 때처럼 지내는 이는 거의 없다. 너무나 익숙해진 서로, 가끔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 실제 결혼생활이다. 연애 때 한 번도 다투지 않았어도 결혼해서 다투게 되고 신혼 때 다투지 않았어도 육아 문제로 다투게 되는 것이 결혼생활이다.
결혼, 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잘 유지하는 건 더 어렵다.
이것이 내가 결혼하기 전 주변 이들의 경험과 의견들을 토대로 생각한 결론이다.
그렇게 서른 중반이 되었고 해외에서 일하던 나는 한국으로 파견을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주변에서 소개팅이 밀려왔다. 친구들, 후배들 그리고 가족까지 소개팅을 주선했다. 사실 내가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은 6개월간의 파견이었기에 소개팅하기가 애매했음에도 다들 일단 해보라고 했다. 상대방도 나의 이런 상황을 다 알고 만났다.
사실 소개팅을 해본 적이 없었는지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처음 본 사람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너무나 어색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약 5개월 정도의 짧다면 짧은 시간 내에 9번의 소개팅을 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파견기간은 연장되었다.)
소개팅을 한 상대는 모두 30대였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이가 서른이었고 가장 많은 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30대면 다들 소개팅을 할 나이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애가 아닌 결혼을 목적으로 한. 소개팅을 가장한 선이었다. 20대 때는 학교나 학원 혹은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취직을 하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개팅에 나온 이들은 괜찮은 사람들이 많았다. 외모도 나쁘지 않았고 어떤 이는 직업이나 수입도 나쁘지 않았으며 어떤 이는 집안이 정말 빵빵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점점 높아져만 갔고 이런 조건, 저런 조건 따지게 되면서 점점 까다로워졌다. 몇몇은 나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왜인지 마음이 끌리지가 않았다.
좋은 사람이었고 괜찮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세 번 이상 만나게 되지 않았다.
소개해준 지인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상대방에게도 미안했다. 경제적으로 정말 풍요로운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편하게 살겠다 싶었지만 끌리지 않는 사람에게 끌리는 척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9번의 소개팅 이후로도 많은 소개팅이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나는 역시 소개팅으로 만난 이와 연애 혹은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느꼈다. 지금까지의 연애가 그랬듯 나는 한 사람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 싶었다.
그러나 서른 중반의 나이, 이제 더 이상 결혼을 미루다 가는 정말 결혼을 못 할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친구들의 60%는 결혼하지 않았고 미혼의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들도 결혼을 하고 싶지만 새로운 사람 만날 기회가 참 없다며 비슷한 이야기들을 했다. 또 여자친구가 있는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고민하고 있기도 했고 상대방 집안과의 마찰로 인해 못 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냥 결혼하지 말지?
왜?
하지 마라면 그냥 하지 말라고!!
라는 농담도 했다.
유부남인 친구들은 총각인 우리가 부럽다고 했다. 결혼하면 자유롭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피곤하니 차라리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란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란다.
결혼은 어쩌면 한번 할 때 정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기에 그 선택이 두려운 이들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눈이 높아지고 따지는 게 많아지면서 결혼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나도, 그들도 다른 이들도.
또, 결혼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상대방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결혼은 개인과 개인이 아닌 집안과 집안이 하는 결혼이었기에 보통 피곤한 게 아니었다. 서로 결혼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상대방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또 서로의 집안끼리 동의가 있어야 진행되는 것이 결혼이었다.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듯 집안끼리의 인연도 시작된다. 결혼에 대해 개인에게 모든 선택권이 있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많은 부분에서 집안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것이 과하면 간섭이 된다. 그로 인한 불화가 생기고 나아가 이혼의 사유가 되기도 한다.
친구들 중에는 부모님의 상견례 자리에서 파혼하는 이들도 있었고 종교적인 문제로 헤어지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쉽지 않은 결혼이다 보니 이제 결혼 한 이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결혼은 이런 수많은 것들을 돌파하고 통과해야 골인할 수 있다.
이러다 평생 혼자 살아야 되는 것 아닐까? 내 인생에는 결혼운이 없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고 아무리 늦어도 서른 중반쯤엔 결혼을 하고 싶었다. 훗날 태어날 아이에게 너무 나이 많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홉 번의 소개팅을 했지만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럼 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 해도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따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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