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데...
앞선 이야기
이 글은 브런치 1위를 했던 브런치북 '10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의 여자 주인공 '그녀'의 입장과 생각을 쓴 내용입니다. '그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여 옮겨 썼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이혼가정에서 자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았으면 했다.
이혼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분명, 부모님이 다툰 모습을 보고 자랐을 것이고 그 모습이 아마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나타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연애를 하면서 부모님의 문제로 고민하거나 어머니가 함께 살지 않아 어머니의 빈자리로 조금은 삐뚤어진 사람도 보았다. 나는 두 분이 화목한 모습만 보고 자랐기에 가정사가 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다. 주변 사람들의 여러가지 가정사를 들으며 결혼하면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영향은 자식에게도 크게 끼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일찍 결혼하고 싶은 것도 부모님의 영향이듯.
아빠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상대에게 아빠와 비슷한 부분을 찾거나 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아빠의 모습으로 좋아하고 존경하고, 이성은 그 이성이 가진 장단점이 있으니 나는 그걸 잘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궁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일찍 출근하며 열심히, 성실히 사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그의 모습에서 나쁜 점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나를 결혼할 상대로 생각해서일까? 그는 그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그의 아픈 가정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아마 그도 이 이야기를 마음 편히 꺼낸 건 아닐 것이다.
그는 항상 밝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이혼과 그의 인성은 별개였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장녀로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는 무뚝뚝한 딸이지만 그 누구보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단란한 우리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이혼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이 부모님의 걱정을 끼쳐드릴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거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나는 그를 밀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매일 아침 '굿모닝~'하며 연락 오는 그의 카톡에 느지막이 답장하고 성의 없이 답장했으며 그의 전화를 피하고 만남도 피했다. 10살 차의 나이 차이, 그의 해외 본사로 복귀(결혼하면 나도 해외로 가야한다), 이혼가정 등 여러가지를 고려한다면 그와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그를 심하게 밀어내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서 연락이 뜨문뜨문 왔다.
하루, 이틀... 매일 연락 오던 사람이 연락이 오지 않으니 뭔가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내가 너무 모질게 굴었나 싶기도 했고 먼저 연락하려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머리로는 그를 밀어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은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그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사실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만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게 미루다 보니 일주일이 더 지났고 2주 만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 날 그에게 더 이상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처음 만난 스타벅스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그를 만나고 모임 장소에 가야 했기에 30분 정도만 이야기하다 가려고 했다. 스타벅스에서 그는 이미 나의 음료까지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오궁은 여전히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굳은 결심을 하고 왔는데 마음이 약해진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2주간 거의 연락 안 했는데
내가 신경 쓰이긴 했어?
꽤나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솔직히 신경 쓰였다. 매일 나에게 다정하게 아침 인사도 해주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한순간 연락이 오지 않는데 어떻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경 쓰였죠...
매일 연락 오던 사람이었는데...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엔, 오늘 단호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고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할지만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얘기하지? 어떻게 얘기해야지 이 사람이 상처를 안 받고 끊어낼 수 있을까?' 약속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그는 뭔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온통 어떻게 이야기하지 생각만 하다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일단 오늘은 모임 장소에 가야 했기에 나가자고 했다.
약속 장소가 그의 집 근처였기에 함께 갔는데 나는 그 보다 조금 빨리 걸었다. 아니, 거의 뛰다시피 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할 무렵 내가 후다다닥 뛰어가자 오궁이 외쳤다
나 너 계속 좋아할 거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전혀 모르고 있는 그에게
희망 고문하기 싫어요~!!
라고 외치며 약속 장소로 들어갔다.
그는 다음날 서울에 출장을 가야 했다.
그 출장 뒤에 긴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다. 나는 그와 긴 시간을 못 보게 되는 이 시기가 그와 멀어지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고 그가 떠나기 전에 반드시 단호하게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장을 가기 전 그를 만나 이야기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오늘 몇 시에 기차역에 가요?
12시 반쯤 갈 것 같은데?
그럼 같이 기차역에 가요~
나 엄청 기쁜데 불안한 이유는 뭘까..?
나는 거기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가 일하는 회사(내가 아르바이트한 회사)에 가서 그를 기다렸고 큰 캐리어를 들고 나타났다. 함께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면서 나는 그와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창 밖을 보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역에 도착하여 그와 함께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 앉았다.
어쩌다 보니 나란히 앉게 되었는데 나는 온통 어떻게 이야기하지?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는 거야... 이 생각뿐이었지만 결국 카페에서도 그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이 말이 그에게 상처를 줄까 봐 말을 꺼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기차역 플랫폼까지 그와 함께 내려갔다.
그는 짐을 먼저 기차에 실어두고 플랫폼에서 나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차 출발 1분 전, 이제는 정말 말을 꺼내야겠다 싶었다.
아까 불안하다 했죠?
그 말을 하는 순간 그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아는 눈치였고 이미 그의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얘기 안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는 바로 기차에 탑승했다.
나는 그가 앉는 모습까지 바라보았다. 오궁은 창밖의 나를 향해 손으로 엑스자를 표시하며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기차는 떠났고 나는 그 기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제대로 끝을 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운을 띄웠으니 끝을 맺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장문의 글을 카톡에 써내려 갔다.
얼굴 보고 얘기하려고 했지만 얼굴 보니 도저히 말이 안 나왔어요
몇 번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성실하고 저에게 잘해주고 배울 점이 많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 내가 모르는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우리가 만나게 되면 해외에 나가야 될 텐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는 힘들 것 같아요.
(중략)
살면서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표현해 주고 마음을 주는 사람이 가족 말고는 처음이라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 몰라, 또 그것이 상처될까 말을 못 했지만 이제는 얘기해야 될 것 같아요
(중략)
제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으로썬 관계가 발전되지 않더라도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싶어요.
많은 내용이 생략됐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가 해외 본사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오빠로서 편하게 만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참 동안 그에게 답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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