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데?
어릴 때 참 이상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른들은 그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슬퍼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생각인데 그때 그렇게 생각한
그럴만한 이유는 나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6살쯤 돌아가셨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지라 너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 당시 병원이 공사 중인지 온전한 병원의 모습이 아니었고
할아버지가 누워계신 병동에 들어갔는데 할아버지가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계셨던 기억이다.
그런데 그 마저도 그것이 나의 진짜 기억인지 아니면 꿈인지 정확하지 않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의 기억은 온통 할머니의 눈물이다.
할머니는 정말 많이 우셨다. 할아버지 제사 때도,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도 정말 많이 우셨다.
20년쯤 지나고 나서 할머니는 좀 담담해지신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은 단 한 번도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도 그렇고 어머니도 눈물이 많았다.
아버지를 포함한 남자 어른이 우는 건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더라도 슬퍼서 눈물이 나는 건 여자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남자 어른이 우는 모습은 TV 속에서만 보았다.
훗날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할머니가 부둥켜 안고 엉엉 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아버지가 눈물을 보였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른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 어른이라는 개념은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사람'이었다.
즉, 부모가 된 사람이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어른이다.
그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무엇보다 높은 산이자 우주다.
그래서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된 어른은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이미 '어른'이기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 것 같다.
어쩌면 그 어린 시절 나에게 '어른'은 너무나 크나큰 존재였기에
어린 나는 '어른이 되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슬프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말이다.
나는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눈물이 많다.
나이가 들수록 더 눈물이 많아진다.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도 마음이 슬프면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지인들과 술을 한잔하다가도 눈물이 나면 그렁그렁, 회사 사람들이랑 회식을 하다가도 그렁그렁.
나에게는 눈물 포인트가 있다.
부모님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그런 자신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많이 공감이 되기도 하여
눈물이 나기도 한다.
얼마 전 정말 친한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친구는 나에게 담담하게 연락이 왔다. 우리는 단톡방에 10명이 있는데 친구는 부고장을 나에게만 따로 보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단톡방을 따로 만들어 모두를 불렀다.
해외에 있는 친구들 말고는 전국 각지에서 다 모였다.
나만 올 줄 알았던 친구는 우르르 나타난 우리를 보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난 또 그걸 보고 눈물이 핑...)
친구는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고마워했다.
가까운 지인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처음이었다.
(나는 다행인지 이 나이가 되도록 지인 부모님의 장례식은 처음 가보았다)
어른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나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내가 부모가 된 것부터가 어른들의 일인데 나에게도 일어난 것 처럼 말이다.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더 잘하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