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도 그랬을까
육아를 하다 보면 욱하는 순간이 정말 많다.
아이 엉덩이를 한 대 파~~ 악! 때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하루에도 수십 번이다. 영아기 일 때는 그저 힘들지만 사랑스러웠는데 자신의 주장이 생기면서부터는 쉽지가 않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이 되면 오죽하랴. 부모가 되는 건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들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좋지 않은 기억들이었다. 아버지가 초등학생 때 태권도를 다녔는데(그 시절도 태권도장이 있었다니) 할아버지가 공부 안 하고 태권도하러 다닌다고 태권 도복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고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할머니와 둘이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박물관을 가게 되었는데 옛날에 아버지가 나한테 자전거를 타고 계란 배달을 시켰던 그 자전거랑 비슷한 자전거가 있더라고요. 돌아서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어린 나에게 그 무거운 계란을 싣고 산길을 넘어 배달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그때 나한테 왜 그런 일을 시켰는지 묻고 싶어요."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거의 본 적 없었는데 아버지가 뒤돌아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처음 들었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 외에 여러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굉장히 무섭게 했던 것 같다.
아버지도 장남이기에 할아버지와 많은 부분에서 부딪혔던 것 같다.(작은 아버지들은 할아버지를 아버지만큼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좋은 기억이 많았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어, 나는 이런 아버지가 될 거야' 생각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에게 정말 심하게 맞은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잘못 한 부분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본 때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정신없이 맞다가 아버지가 대뜸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한테 혁대로 맞았다.
그 상황에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 또 혁대(가죽 벨트)로 맞는 게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아마 그때 아버지는 나에게
'나는 아버지 같은 그런 아버지가 되지는 않을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은 있지만 맞은 걸로 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나도 내 아이를 절대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게 된다. 아이를 한 대 쿡 쥐어박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아이 엉덩이조차 때려본 적이 없다. 그러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 했다.
아버지가 초등학생 당시만 해도 집안 형편이 꽤나 좋았다고 했다.
그 시절 집에 불독 같이 생긴 꽤나 큰 강아지도 있었고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아버지는 중학생 때부터 이모네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다. 이모집에서 사촌형의 눈칫밥을 먹으며 생활했고 아버지는 꽤나 공부를 잘해서 고등학교를 대도시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고등학생 때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학교에 찾아왔는데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삼촌이 교실에 와서 아버지가 와있으니 나와 보라고 했다고 한다. 내려가니 할아버지가 나무 뒤에서 쓱 나오셨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무섭던 아버지가 사업이 망해서 자식 앞에서 당당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니,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라고 생각했단다.
할아버지가 정말 자식에게 부끄러워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렇게 무서웠던 나의 아버지가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내 자식에게 죽을 때까지 큰소리치는 아버지가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당당한 아버지'라는 표현을 '큰소리치겠다'라고 표현한 것 같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식에게 '큰소리'를 쳤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에게 굽히지 않았다. 굽히는 것은 곧 아버지로서 권위를 잃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권위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반항'으로 여겼다. 아버지는 그렇게 끝까지 자식에게 떵떵거렸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좋아했고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성격이 불 같았어도, 표현은 많이 하지 않았어도 자식에 대한 깊은 마음이 있었다. 나도 그런 아버지 곁에 늘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거리감 있게 지내왔기에 한 번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의 문제는 나와 아버지 사이에 민감한 문제였고 결국 나의 결혼식에 어머니가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나와 아버지의 대립은 폭발하고 말았다.
나에게도 아이가 생기고 아버지가 된 입장으로써 나의 아버지를 많이 돌이켜 보게 된다.
아버지의 모습이 나에게 많이 투영되어 있음을 느낀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빠처럼 안 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버려.
그것이 오히려 너의 마음에 발목을 잡게 돼.
반대로 아빠의 좋았던 모습을 기억하고 그런 부분을 하도록 해보렴.
내가 좋았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 당당한 모습이었다.
어딜 가든 꿀리지 않고 늘 당당했던 그 모습. 나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줄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든든한 백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