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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현 Sep 13. 2024

쇼핑으로 채우려던 것들



나의 20대는 불안과 혼란의 시기였다. 비행으로 불규칙적인 생활이 반복되면서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하루는 파리에서 또 하루는 뉴욕에서 눈을 뜨는 파편적인 시간 속에서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손님이 왕이었던 시절의 신입이었던 난 출근만 하면 ‘죄송합니다’를 수십 번 내뱉곤 했었다. 그 한마디가 쌓이고 쌓여 나의 자존감을 좀먹고 있었음을 꽉 찬 신발장과 옷들을 보며 알아차렸다. 발은 두 개밖에 없는데 신발은 왜 100켤레 넘게 샀을까? 저 수많은 옷들 중 왜 입을 옷이 하나도 없을까? 사도 사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심리적인 결핍에서 온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것을 모른 채, 난 수년동안 전 세계 쇼핑 성지에 노출되었다. 심지어 함께 비행을 간 동료들이 쇼핑 메이트가 되어주니 사는 개수와 금액이 훨씬 더 빨리 늘어났다. ‘잘 어울린다’란 달콤한 말은 돈을 쓰게끔 만드는 기적을 일으킨다. 물건의 효용가치는 그것이 가지는 필요유무를 떠나 충동적 욕구를 채워주는 데 그친다. 막상 한국에 들어와 그 옷을 다시 보았을 때 후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쇼핑욕구가 극에 달했을 때가 바로 대리 진급 직후였다. 똑같은 비행을 가더라도 내게 주어지는 업무할당량이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연차는 다소 낮지만 모든 클래스의 서비스를 다 할 수 있으니 선배들 입장에서 얼마나 든든한 아군이었겠는가. 업무강도와 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더 많이 더 자주 쇼핑을 했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이 정도는 보상해 줘야지’란 안일한 생각에 물건 사재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가만히 그때를 회상해 보면 후회와 동시에 나에 대한 측은지심도 든다. 인력부족으로 비행스케줄이 자주 바꿨고, 그로 인해 개인적인 약속과 일정을 변경해야 되는 일이 잦았다. 점차 내 시간을 마음대로 못쓴다는 상실감이 젖여 들었다. 그래서 그 상실감을 쇼핑으로 채우려고 했었다. 


사람은 쇼핑을 하거나 운전을 할 때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의 돈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거나 운전대를 잡고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다 보면 상황을 통제한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리라. 나도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라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쇼핑을 했겠지만, 사실은 통제받는 상황을 애써 외면하기 위함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었다. 그건 아마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나의 쇼핑 중독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이유를 찾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회상해 보았다. 모든 문제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현재 5켤레의 신발과 옷장 한 칸에 모든 옷들이 다 들어갈 정도로만 가지고 있다. 막상 정리를 하고 보니 비움의 이로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옷과 옷사이의 만들어진 공간은 넣고 빼기를 수월하게 만들었고, 의류상태 또한 좋게 유지보관 할 수 있게 했다. 간소해진 옷의 가짓수는 외출할 때 선택적 압박감을 덜어주고 시간과 에너지를 줄어주었다. 더불어 남아 있는 옷과 신발을 볼 때 나의 취향을 명확하게 알 수 있어 쓸데없는 쇼핑을 더 이상 하지 않게 해 주었다. 


앞서 나의 쇼핑중독의 원인은 ‘상황통제의 부재’였다. 다시 말해, 스케줄변동과 업무강도에 따른 스트레스가 문제였던 것이다.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 없으므로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대응할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써보았다. 6개월에 한 번씩 휴가를 몰아서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 푹 쉴 수 있는지 방점을 찍어놓고, 나머지 시간은 성실히 비행업무에 임하는 것이다. 더불어 신용카드 대신에 적당한 달러 현금만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를 믿지 않고,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상황에 대한 관점과 마인드를 바꾸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자연스레 물건을 사고 싶다는 충동이 사라졌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다시 제대로 살게 한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리부팅(rebooting)’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부팅을 다시 하는 것이다. 컴퓨터를 구동하는 것은 부팅이라고 부르는데, 에러 등이 있을 때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켜는 것을 리부팅이라고 한다. 컴퓨터도 사람도 다시 세팅해야 되는 순간이 있다. 컴퓨터도 부팅을 다시 하기 위해선 이전 데이터나 프로그램 등을 싹 다 지운다. 이 작업이 선행되어야 새로운 자료들을 입력하고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덧붙이기 이전에 빼는 작업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과거를 성찰하고 복기하며 앞으로 나아갈 기반을 견고히 다져야 한다. ‘리부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군가는 고장 나거나 실패해서 다시 끈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이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출발에 초점을 맞춘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비움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기초작업임을 상기시키며 당신의 ‘정리 리부팅’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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