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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현 Sep 14. 2024

빼기의 수고로움

당근마켓



쇼핑할 때를 떠올려보자. 티셔츠 한 장을 사더라도 디자인과 재질을 포함해 가격까지 비교하며 찾고 또 찾아본다. 짧게는 몇 시간, 길면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물건 하나를 갖기 위해 들인 시간과 에너지만큼 비울 때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수고로움이 필요한 이유는 쉽게 다시 사들이지 않기 위함이다. 버리는 과정에서 부딪치게 될 감정선 상에서 물건을 어.디.에. 버릴지에 대한 고민까지 같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수많은 방법들 중에 ‘당근마켓’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물건을 소개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왜 이 물건을 샀는지?’를 떠올려보았다. 거기에 팔려는 금액까지 스스로 정해 보면서 이 물건에 대한 가치를 되새김질하였다. 어떤 물건은 비싸게 사서 도저히 가격을 낮출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또 어떤 물건은 ‘나눔’의 형태로 그냥 거저 주기도 했다. 1000원으로 할까? 1만 원으로 할까? 금액을 기입할 때마다 내가 주고 산 원가격이 떠올라 속상했다. 그렇게 힘들게 비행하면서 번 돈을 허투루 낭비한 것 같아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것보다 날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이었다. ‘당근마켓’ 어플을 통해 물건을 팔면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았다. 안전한 거래를 위해 시스템 자체에 설치해 놓은 페이방식이나 거래규칙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 사소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어기는 사람들 때문에 자주 화가 났다.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사람을 한참 기다리면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물건을 정리해야 하나?’ 짜증과 회의감이 몰려왔다. 심지어 무례한 사람을 만나는 날이면 그다음 당근거래를 하기가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비대면 거래를 하지 않고 직접 사람을 만나 물건을 건넸다. 그게 훨씬 감정과 체력소모가 많이 들었지만 그게 지난 철없는 내 행동에 대한 벌이자 반성의 과정이었으므로 그것만큼은 반드시 지키며 물건을 비워나갔다. 






그렇게 물건을 팔고 집으로 걸어오는 날에는 홀가분함과 동시에 허탈함도 함께 몰려왔다. 물건을 비워내서 후련한 것보다 아무렇지 않게 버릴 물건들을 끌어안고 지낸 시간이 허무했기 때문이다. 사용하지도 않았던 물건을 세 번 넘게 이사하면서도 버리지 않았었다. ‘언젠가 사용하겠지?’란 막연한 기대감에 그 물건에 대한 사용빈도와 쓰임을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물건의 무게까지 이고 지고 다녔던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그 뒤로 난 ‘언젠가’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초점이 흐려진 사진처럼 명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대답과 약속일 때 쓰이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근거래 때 안 좋았던 기억과 잦은 이사경험으로 인해 더 이상 물건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그 후, 난 물건의 애매한 가치를 찾기보단 해당 물건의 사용 빈도수를 확인했다. ‘일주일에 이 물건 몇 번 쓰지?”,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적이 언제야?” 라며 수시로 물건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자주 사용하고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만 남겨 놓고 싶었다. 더불어 언젠가 사용할 거라는 막연한 심리적 기대감을 버려 버렸다. 그 작은 잡동사니가 내 인생을 좀먹지 않도록 가뿐히 비워버리는 것을 택했다. 어찌 보면 ‘쓰인다’라는 말은 소모된다는 말과 결을 같이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제 역할을 다하며 빛을 발하는 게 있고 방치된 채 낡아가는 것들이 있다. 여기서 물건의 주인이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중장기적으로 해봐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 도구들만 잘 추려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물건빼기'의 진정한 목적이다. 



수년간 쓸모없는 물건이 삶에서 조금씩 빠지자 정말 신기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간소한 물건과 단순한 삶'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내 인생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들만 사용하면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하고 단순하게 시간을 보내는 삶. 물건을 비우고 관계를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가 명확해졌다. 물건 빼기의 수고로움이 나에게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https://youtu.be/wyZh20BOhXQ?si=tO_rPMaL81HOhpa8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 윤선현, 정리컨설턴트

살다 보면 욕구와 목표, 관심사 등 다양한 이유로 물건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물건들만 집에 남는다. 그 물건들은 더 이상 의미 있는 추억이 아니라, 낭비된 시간, 감정, 돈, 에너지에 대한 미련과 회한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다. 우리는 집안에 쌓인 물건을 어디에 둘지, 어떻게 쓸지, 아니면 버릴지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이 살아온 과거의 시간뿐 아니라 현재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할수록 각자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지를 능숙하게 판단하게 된다. 결국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바라는 삶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정리를 단순히 ‘테크닉’이 아니라 ‘인생 설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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