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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Sep 18. 2018

영화 <명당>

#사적인 영화28: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 명당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9/19일 개봉 예정) 



오랜만에 추석을 겨냥한 한국 블럭버스터 한 편을 봤다.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 배우 조승우가 출연하기 때문에 보고 싶었다. 그가 선택한 사극, 그것도 명당이라는 소재를 갖고 어떻게 풀어냈을까, 호기심을 안고 봤다. 영화는 명당을 둘러싼 개인의 욕망이 역사를 배경 삼아 끝없이 분출된다. (사전 정보 없이 봤기 때문에 결말에 이르러서야) 이 영화가 흥선대원군이 지관의 조언을 받아 후손 중 두 명의 왕이 나온다는 묏자리로 남연군을 이장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됐음을 알았다. 여기서 흥선군은 지성이 연기했으며, 조승우는 끝까지 흥선군의 마음을 돌리려는 반대 편의 지관으로 등장한다. 


때는 바야흐로 장동 김씨의 세력이 하늘을 찌르고 세상을 군림하던 시대. 혼자 바른 소리를 하여 김 씨 세력의 눈 밖에 난 지관 박재상(조승우)은 친구 구용식(유재명)과 무사히 화를 피해 13년을 두문 분출한다. 그러나 장동 김 씨 가문의 권력욕을 막기 위해 김좌근 부자의 비밀을 캐던 중, 몰락한 왕족 흥선군(지성)과 뜻을 같이 하게 되지만, 새로운 왕이 나올 천하 명당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이를 막고자 하는 박재상과 이를 찾고자 하는 흥선군의 갈등이 영화 후반부의 긴장을 이어간다.  






13년 후, 서민들 사이에서 인기 지관으로 이름을 날린 박재상은 풍수지리를 비롯한 명당에 대한 조언들에 귀가 쫑긋해진다. 그 시대 또한 과거 급제할 수 있는 명당을 찾기 위해 계급을 막론한 어머니들의 과열 경쟁이 드러난다. 돈이 없어 명당을 구하지 못하는 서민에게는 방의 책상 위치를 바꾸면 공부에 환기를 더해줄 수 있다는 조언도 흥미롭다. 문을 등지고 책상을 두기보다 마주 보는 것이 좋다는 것, 남편과의 잠자리를 하기 위해 남편의 위치는 문 가까이가 아닌 구석으로 둘 것 정도. 사소한 팁들이 그럴듯하게 귀에 들어온다. 좋은 땅의 기운을 얻는 것부터 세세한 집의 구조나 방의 위치, 가구의 배치 등, 어쩌면 풍수지리는 이미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자리란 무엇인가. 사소하게 남향집을 고르는 것 또한 오래도록 이어진 생활 풍수의 지혜라면 지혜일 것이다.  


영화는 손님을 빼앗긴 오랜 장터를 새롭게 단장하는 모습 등의 볼거리를 보여준다.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민을 먼저 생각하는 박재상의 성품도 드러 난다. 신념이 강한 인물로서 권력과 야망보다 대의와 선의를 먼저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김좌근 부자는 반대편에 선 인물이다. 대대손손 끝없는 부와 명예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행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심지어 죽고 나면 그 모든 것이 소용없을 텐데 , 가문을 위해 서슴지 않고 왕조의 묏자리까지 훼손시킬 수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화살의 끝이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망각하니, 인간은 참 어리석고 어리석은 동물이다. 김좌근(백윤식)의 잔혹한 아들 김병기를 맡은 배우 김성균의 악역 연기는 거의 처음 본 것 같다. 그의 마스크는 선함과 악함을 자유자재로 끌어낼 수 있는 것 같다.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된 영화 속에서 지성이 연기한 흥선군은 조금 더 다채롭고 갈등적인 인물이다. 상갓집 개로 통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왕족, 왕을 보필하고자 하는 충심, 사촌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뼈 아픈 굴욕, 사랑하는(?) 여인조차 자기 손으로 지키지 못하는 분노가 중첩되면서 권력을 향한 숨은 욕망이 탐욕으로 팽배해진다. (지성은 브라운관에 더 익숙한 배우이지만, 영화 <좋은 친구들>은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다.) 영화 <명당>은 조승우와의 호흡이 기대되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월영각의 대방, 초선을 연기한 문채원은 우려에 비해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역할이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빈틈을 잘 메웠다고 본다. 






<명당>은 지루하지 않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단아하면서 화려한 의상과 스타일은 공을 많이 들였고 세트의 디테일과 팔도 배경은 절정을 이룬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안정감 있으며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열연, 코미디부터 액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적절하게 섞어냈다. 특히, 사람을 죽이는 땅이 아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명당을 찾아 떠나는 박재상의 의연한 결기는 나라가 망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되새겼다. 그러나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하여 캐릭터가 평면적이며, 예상 가능한 스토리는 새롭지 않다. 여전히 아쉬운 지점은 사극에서 여성 배우의 역할은 기생, 현모양처로만 한정된다는 점이다. 명당을 둘러싼 암투 또한 남성 위주의 싸움으로 그린 것이 영화의 한계로 작용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된 '명당'이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을 훈훈하게 끝내려는 작의적인 부분도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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