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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Oct 04. 2018

영화 <에브리데이>

#사적인영화29: 매일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0/11일 개봉 예정)



영화 <에브리데이>는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가는 A가 우연히 리아넌의 남자 친구 저스틴이 되어 하루 데이트를 하게 되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여기서 주인공은 A가 아닌 리아넌이지만, A의 시선으로 그녀의 감정과 일상을 관객과 공유한다. 자신에게 하루 동안 몸을 빌려준 당사자의 인생에 끼어들 수 없는 A는 그럼에도 매일 리아넌을 만나러 간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리아넌이 알려준 셈이다. 대신 그(녀)는 리아넌이 자신을 인정하고 가족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국내에는 미국 틴에이져 버전의 <뷰티 인사이드>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실제 원작도 동명의 베스트셀러 청소년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에브리데이>는 한 편의 성장 소설을 읽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청소년 시기의 한 단면을 꺼내 보여준다. 흔히 중이병이라고 표현하는 시기에는 유독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시한폭탄 같은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타락하거나 방황하거나 혹은 자기도 모른 채 시간의 힘으로, 어느 사이엔가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어른으로 나아가게 된다. 간혹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가장 좋았다는 걸 알 수 있듯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 채 어른으로 훌쩍 커 버린 걸 깨달을 때의 허탈함도 있겠지만.


우리는 A와 리아넌을 통해 시간과 추억,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리아넌은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A를 연민한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차곡차곡 쌓이는 추억도 없이 매일 다른 사람으로 하루를 바꿔 산다는 것을 불행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A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고, 다양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며 구김 없이 웃는다.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일은 짜릿한 경험이다. A는 그렇게 수없는 사람들의 몸을 통해 매일을 다르게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의 세상은 흑백 이분법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성별도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있지 않다. 그는 남자도 될 수 있고 여자도 될 수 있고,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으며 여자와도 사랑할 수 있다. 도덕과 비도덕으로 나뉘어 있지 않을뿐더러 어떤 편견도 그를 가둘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다. 그는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새로운 인류이며, A에게는 현재만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리아넌이 말한 대로 가끔은 외로울 수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는 결국 혼자라는 명제를 깔고 있다. 비록 추억을 쌓을 수는 없어도 그는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의 얼굴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24시간은 온전한 하루이지만 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짧은 시간이다. A는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시간 동안 힘을 내고 있다. 최대한 즐겁고 행복하게. 



하루만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분은 어떨까. 가끔은 스스로가 의문일 때가 있다. 나는 왜 이런 이름으로, 이런 얼굴로,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때로는 자신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선택할 수 없는 A는 우연히 사랑하는 리아넌의 몸으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럼으로써 멀어졌던 아빠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해고 이후 얼굴만 그리는 아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세상도 없다. 이해와 배려의 시작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리아넌은 아빠를 이해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며, 나쁜 남자 친구로부터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매일 다른 얼굴을 하는 A와의 사랑을 통해 그녀도 한 뼘 더 넓어진 세상으로 나아간다. 






마이클 수지 감독은 영화 각본을 읽자마자, “고전적인 ‘불운한 연인의 이야기’의 맥락에서 아름다운 질문과 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다를지 모르고, 타인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다를지 모른다. 이 영화의 각본이 나에게 왔을 때, 외면을 넘어서 내면을 보는 일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을 해석하는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원작자 데이비드 리바이던은 “어느 날 일을 하다가 <에브리데이>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매일 다른 몸으로 깨어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그 질문에 마음이 끌려 글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쓰면서 신체나 외적으로 정의된 정체성이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을 정의하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책을 썼다.”라고 말했다. ‘A’라는 이름을 쓰며 매일 다른 몸으로 깨어나는 존재를 다룬 원작은 내면이란 무엇인가라는 대답을 찾기 위해 수 없이 외적 자아를 바꾸고 실험하는 10대 시절을 배경으로 각자의 대답을 이끌고자 했다.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10대 시절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영화는 24시간 몸이 바뀐다는 참신한 설정과 함께 선택한 방식은 프레쉬한 배우의 선택이다. 출연 배우 대다수가 신선한 얼굴을 지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라이징 스타이다. 여주인공 리아넌은 <매혹당한 사람들>의 막내를 맡았던 앵거리 라이스이다. 부드러운 강단을 갖춘 인물을 연기하며 무엇보다 예쁜 얼굴로 다양한 의상을 자신에게 맞는 옷처럼 잘 소화해냈다. (목에 걸린 R의 이니셜이 새겨진 동전 목걸이도 눈이 간다) 그 밖의 A에게 몸을 빌려준 배우들은 무려 15명이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배우는 <우리들의 20세기>에 나왔던, 최근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의 길버트를 맡은 루카스 제이든 주먼이다.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사제로 등장한 그가 리 아넌을 만나기 위해 몰래 사촌으로 위장하여 파티장에 들어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에 흥겨움을 더한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자 악마에게 속았다며 능청을 떠는 모습도 코믹하다.) 






앞으로 대세가 될 배우들의 면모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젠 이런 체형의 남성 배우가 인기를 얻을 거라 생각하고 보니 흥미로웠다. 한마디로 이젠 여자도 슬림한 남자를 선호한다는 것. 키가 크고 마르고 어깨가 넓지 않은 슬림한 체형의 남성 배우를 바라보는 심정은 세대교체의 간접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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