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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Nov 14. 2018

영화 <퍼스트 맨>

#사적인 영화30: 달을 향해 쏘아 올린 한 남자의 연서(戀書)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969년 7월, 인류는 처음으로 달 착륙에 성공한다. 인류 최대의 역사적 사건, 나는 교과서의 한 구절로 외웠을 뿐이다. 세계인의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킨 달 착륙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의 사건이므로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해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분명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가 막히게 일상이 변했다거나 로켓을 타고 달을 왕복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우리가 목격한 달은 그저 황량한 회색 모래사막, 구멍 뚫린 거대한 원석일 뿐. 혹자는 달 탐사를 가리켜 비용 대비 소득 없는 쇼에 불과하다는 직언을 날렸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곳에 달이 있기에 인류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됐다고 연설했다. 영화 <퍼스트 맨>은 달 착륙을 위해 미국이 기울인 노력과 과정,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죽어 나갔는지 담담히 보여준다. 하지만 나의 신경은 온통 한 우주 비행사에게로 향했다. 달 표면에 발자국을 처음 새긴 남자, 닐 암스트롱. 그가 이 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가가 관건이었다. <퍼스트 맨>은 새로운 경이가 아닌, 그가 죽은 어린 딸을 향해 쏘아 올린 연서(戀書) 같았다. 






닐 암스트롱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다. 그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다. 그저 냉전 체재 속에서 비싼 세금을 거둬 들어 깡통처럼 허술해 보이는 우주선을 타고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 외에는 모른다. 이 영화가 얼마나 사실과 근접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슬프면서 아련한 감정이다. 도를 넘으면 과할 수 있는 지점을 그는 영민하게 건드리고 물러선다. 침묵 사이로 흘러드는 재즈 선율은 쓸쓸하고 향수를 자극한다. 닐 암스트롱과 그의 아내, 쟈넷이 함께 왈츠를 추는 장면은 아름답다. 동시에 그림자의 실루엣이 교차할 때면 어쩔 수 없는 외로움도 몰려온다. 암스트롱이 하늘의 떠 있는 달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된다. 소아암으로 죽은 그의 어린 딸의 영혼.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떠들썩한 전작과 달리 <퍼스트 맨>은 고요하다. 암스트롱이 달에 진입할 때 여기는 '고요의 바다'라고 했듯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침착하다. 암스트롱은 일상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썩 잘 어울린다. 그는 대부분 침묵을 맞춤옷처럼 편안하게 입는 역할을 맡아왔고, 굳게 다문 얇은 입술은 고집스럽게 강인하다. (심지어 자신을 위로하려는 친구에게조차 내가 지금 수다 떨 기분으로 여기 혼자 있는 걸로 보이냐고 일침을 가한다. 그것도 무표정하게.) 


영화에서 그는 딱 한번 우는데 그것도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일 때였다. 소아암을 앓고 있던 딸의 치료를 위해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노트를 한데 접어 놓고, 그는 흐느껴 운다. 이제까지 참아왔던 눈물이 입술을 비집고 흐느낌으로 터져 나올 때, 그 아픔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어 마음은 갈갈이 찢어진다. 라이언 고슬링이 눈물을 흘리다니, 당연하지만 그것이 라이언 고슬링이기에 아픔은 배가된다. 그다음은 위태롭고 성급하게 흘러간다. 그는 나사로 직장을 옮기고 곧바로 아기를 가진다. 그가 선택한 것은 딸을 향한 애도보다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비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딸을 잃은 아픔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달라붙는다. 가까이에서 동료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보면, 딸을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뒤 돌아보지 않는다. 차라리 살아 돌아올 수 없는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간다. 





그는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며 동시에 평범한 한 남자이다. 영화는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은 생략된다. 영화 내내 그는 딸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불문율처럼 그는 자기 가슴 안에 딸을 묻었고, 달에 도착해서야 고요의 바다 위로 죽은 딸의 팔찌를 밀어 넣는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지난한 아픔과 슬픔을 그곳에 남겨 놓고 귀환한다. 그리고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아내 자넷을 향해 그동안의 미안함과 사랑을 손끝에 담아 전한다. 그가 돌아갈 곳은 가족의 품이다. 인류를 대표하는 영웅이 아닌, 보통의 한 남자로서. 






덧: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아내 자넷을 연기한 클레어 포이 또한 눈여겨 볼수 밖에 없었다. 두 눈에 둥근 지구를 박아 넣은 것처럼 오묘한 초록빛의 커다란 눈망울이 신비로웠다. 온 몸에 가득 뿌려 놓은 주근깨조차 매혹적인 배우였다. 그녀의 클래식한 매력이 다른 영화에서는 어떻게 빛 날지 못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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