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영화32: 간단한 부탁 하나로 비롯된 막장 스릴러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2/12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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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A Simple Favor)는 북미 박스오피스 역주행 흥행 1위를 세웠다. <스파이> <고스트 버스터즈>를 연출한 폴 페이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한마디로 재밌다. 파격적인 소재와 반전의 반전이라는 미덕도 숨어 있지만, 관객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으며 한 발 앞서 달려 나간다. 확실히 이 영화는 관객보다 똑똑하고 영민하다. 두 시간 내내 관객들을 쥐었다 폈다 하며 요리해나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더욱이 정신없이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 속에 주인공들의 숨은 욕망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일찍이 여성을 섬세하게 다루는 코미디에 능한 폴 페이크 감독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역량을 발휘한다. 두 여주인공을 맡은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안나 켄드릭의 연기 합과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얼굴을 알린 헨리 골딩까지 가세하여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막장 스릴러 코미디가 완성됐다.
영화는 간단한 부탁에서 시작된다. 초등학생 아들내미들 학교에서 학부모로 만난 두 여자의 이야기가 먼저다. 카리스마 넘치는 커리어우먼,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모델 포스를 지닌 여자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요리 블로거이자 싱글맘으로 학교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인 평범한 주부 스테파니(안나 켄드릭)는 우연히 학교에서 만나 술을 마시며 친해진다. 섹시한 소설가 남편과 커다란 저택에 살고 있는 에밀리는 스테파니가 꿈꾸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집, 남편, 그리고 잘 나가는 커리어까지.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는 스테파니에게 자기 아들을 픽업해달라는 간단한 부탁을 남기고 실종된다. 얼마 뒤 호수에서 사체로 발견된 에밀리... 그런데 그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 똑같은 외모의 에밀리가 스테파니를 협박하기 시작하는데.......
주인공은 대부분 현대 여성이 지닌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자식에게 좋은 부모이고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커리어우먼, 남편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내의 역할까지. 학교에서도 두 부류의 학부모로 나뉜다. 일하는 여자와 집안일하는 여자. 스테파니는 어느 쪽에도 머물지 못하는 (본인만 모르는) 아웃사이더이다. 눈치 없이 학교 내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으며 민폐 아닌 민폐 캐릭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여자로 입방아에 오른다. 그녀는 홀로 아들을 키우며 요리 블로그를 하고 매달 월세 걱정을 하는 평범한 주부다. 작은 실수도 바로 사과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심한 여자이다. 그런 스테파니에게 에밀리는 로망과 다름없다. 항상 당당하고 상사한테 강하게 나갈 수 있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아름다운 외모와 거침없는 행동은 선망의 대상으로 손색없다.
영화는 말한다. 처음부터 착한 사람은 없다고. 두 여성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털어놓으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스테파니는 배다른 오빠와의 건전하지 못한 관계를 맺어 마음 깊숙이 죄의식을 갖고 있다. 순진한 겉모습과 달리 스테파니의 내면은 욕망으로 꿈틀거린다. 위를 향해 올라가고 싶다는 성공을 향한 열망을 지녔다. 그런 그녀의 욕망을 건드리는 사람이 스테파니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마음이며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문제는 그들의 우정 또한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스테파니에게는 더 큰 비밀이 숨어 있었다. 직접 발로 뛰며 실마리를 찾아내는 스테파니의 활약은 영화의 가장 큰 재미있다. 이 영화는 뚜렷한 악인이 없다. 모두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친구의 남편도 멋지다면 뺏을 수 있고, 돈을 위해서라면 보험 사기도 친다. 그들을 추동하는 것은 물질에 기반을 둔다. 그들은 전속력을 다해 자신의 욕망대로 움직인다. 돈을 위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권력을 갖기 위해서 심지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오락적 쾌감은 전혀 줄지 않았다. 심지어 남자 주인공은 잘생긴 동양계 미국인이다. 백인 남성이 맡은 비중은 아주 작다. (그라나 후반부 한 컷 정도 주어진다.) 여자가 봐도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위험한 카리스마를 지닌 치명적 매력녀로 등장한다. 안나 캔들릭은 벌써부터 연기가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스타일리시한 패션, 인테리어, 요리를 구경하는 재미는 흔히 유튜브로 일반인을 비롯하여 연예인의 사생활을 구경하는 관음적 취미를 재현한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는 공식대로 이 영화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교훈도 심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