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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Dec 26. 2018

영화 <그린 북>

#사적인영화33: 세상은 품위와 용기를 통해 바꿔 나갈 수 있다고.  

*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9.01.09 개봉 예정) 




영화 <그린 북(Green Book)> 은 한 흑인과 한 백인이 함께 길을 떠나는 로드 무비이며 실화이다. 여기서 '그린북'은 인종 차별이 남아 있던 그 시절, 흑인이 여행할 때 갈 수 있는 숙소와 음식점을 정리한 일종의 여행 가이드북이다. 그 자체만으로 차별의 상징이다. 그런데 영화 포스터만 보면 흑인과 백인의 사회적 위치가 바뀐 것 같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불량해 보이는 백인이고, 뒷좌석에 꼿꼿이 앉아 있는 사람은 흑인이다. 지금은 이게 뭐가 이상한가 싶겠지만 그 시대로 돌아가면 무척 낯선 풍경임을 영화를 보는 내내 목격할 수 있다. 어떻게 흑인이 뒷좌석에 앉아 있을 수 있는가라는 날 선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영화는 인종 차별이 심했던 그 시절, 1962년으로 돌아가 미국의 뉴욕 북부의 브롱스에서 시작된다. 



원칙보다 반칙을 일삼는 떠버리 '토니'(비고 모텐슨)는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러던 중 '닥터 셜리'(마허샬라 알리)라 불리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운전기사 면접을 본다. 닥터 셜리는 인종 차별이 북부보다 심한 남부 지역으로 공연 투어를 펼칠 예정인데 운전기사 겸 자신을 지켜줄 보디가드가 필요하다. 그는 토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토니의 아내 '돌로레스'(린다 카델리니)의 허락을 받아 그를 고용한다. 닥터 셜리는 백악관에도 초대받는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예술가이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 왔다. 이처럼 서로가 다른 인생, 다른 성품을 지닌 두 인물이 과연 무사히 콘서트 투어를 끝마칠 수 있을까. 






영화에서 '그린북'은 필요에 의해 잠시 들춰보는 정도로 잠깐 등장한다. 애초 토니에게 그린북이라는 가이드라인은 불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누구의 명령에 따르기보다 자유롭고 자신의 판단력과 본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비록 가진 것은 주먹과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입담으로 살아온 이탈리아 이민자이지만, 사랑하는 아내 돌로레스와 두 아들, 시끄러운 친척들과 함께 지내온 사내이다. 그와 반대로 닥터 셜리는 성탑 안에 홀로 살며 타고난 재능과 본인의 노력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성공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클래식을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지당하고 흑인이라면 피아노에 담배꽁초를 올려놓고 재즈를 연주할 것이라는 편견에 갇혀 살아왔다. 그것이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벌어진다. 닥터 셜리는 참고 있던 분노를 밖으로 표출한다. 자신은 흑인의 세계에도 백인의 세계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며, 심지어 남자답지 못하다는 고충을 토로한다. 그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한 개인의 고독과 외로움은 이해받지 못한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성정의 그를 이해하고 받아줄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닥터 셜리는 품위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을 지녔다. 백인보다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고 바른 몸가짐과 행동을 지녔으며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까칠한 그가 그럼에도 자신의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을 땐 무척 매력적이다. 거리의 사내인 토니마저도 그의 연주가 수준급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자처한다. 심지어 예술가는 원래 복잡한 존재라며 그의 성적 취향 또한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거친 욕설을 입에 달고 수시로 담배를 피우며 몰래 물건도 슬쩍하는 그이지만 누구 못지않게 마음은 열려 있다. 편견 없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상대의 실력과 노력을 먼저 인정한다. (그렇다고 자신의 집에 일하러 온 흑인 노동자들이 사용한 컵을 몰래 버리는 행위가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어떤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 가까워지기보다 가랑비 옷 젖듯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 나간다. 긴 투어 여정 사이 겪은 여러 사건들을 함께 통과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아내에게 보내는 토니의 편지를 닥터 마셜이 도와주기도 하고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후라이드 치킨을 토니 때문에 두 손가락에 기름을 묻혀가며 먹는다. 닥터 마셜이 모진 모욕에도 남부 투어를 계획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꾸고 싶은 세상을 위하여 용기를 내고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토니는 닥터 마셜에게 외롭다면 먼저 상대에게 다가갈 용기도 필요한 법이라고 진심으로 조언한다. 무거운 소재를 어렵지 않게 다가서는 이 영화는 결구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 서로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다시 태어날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비고 모텐슨이 연기한 토니의 단순 무식한 연기도 좋았지만, 닥터 셜리를 연기한 마허샬리 알리의 연기는 정말 우아했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똑바른 자세로 걷는 모습, 바르면서도 순간의 빈틈을 보일 때의 허술함도 인간적이었다. 실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놀라웠는데, 이 세상 클래식은 왜 거의 백인이 차지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흑인과 백인이 각자 위치가 바뀐 영화를 또 본 적이 있었던가 과거를 해 집어 봐도 딱 떠오르지 않았다. (스스로 놓친 걸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욱 좋았고 더욱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고정된 역할에서 벗어난 인물을 통해 신선한 충격과 따뜻한 위안을 동시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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