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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an 29. 2019

영화 <증인>

#사적인영화34: 서로가 마음을 여는 순간,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9.02.13 개봉 예정) 





영화 <증인>은 변호사 '순호'(정우성)와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의 이야기이다. 우연히 지우가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순호가 상대측 변호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신념은 뒤로 한 채 현실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민변 출신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는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수 있는 제안으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만 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지우를 어떻게든 증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순호는 갖은 노력을 다하는데,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지우에게 공감할수록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서로가 마음을 여는 순간,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진한 감명이 가슴을 묵직하게 울린다.  




영화 <증인>은 나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으로 가득한 세상이 아닌, 이 현실이라는 땅에 무겁게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웃의 이야기와 근접하다.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주제와 캐릭터가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영화를 준비했다."라고 말한 이한 감독은 메시지에 주력했음을 밝혔다. 그의 전작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에서도 감독은 다문화 가정, 학교 폭력 등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관계의 상처를 온정으로 다루고 투박하지 않게 섬세하게 연출하여 마음을 건드려 왔다. 이번 영화 또한 변호사와 목격자로 만난 순호와 지우를 통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편견 없이 부딪혀 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묘한 감동을 선사한다. 


"원 없이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했다. 계산하지 않고 느껴지는 그대로를 표현했다."라며 전작과 다른 연기를 보여준 정우성 배우의 코멘트, 그래서였을까. 김향기 배우와의 케미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지우의 대사를 반향 하듯 꾸밈없이 지어내는 정우성 배우의 표정은 인상적이었다. 억지로 가장하지 않고, 스며들듯 차오르는 눈물이 고인 채로 미소 짓는 얼굴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관객들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보살펴줄 수 있는 영화인 동시에 스스로도 치유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순호라는 캐릭터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배우가 연기를 뛰어넘는 인성을 갖춘다면 이런 버전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수한 힘을 지니고 있는 ‘지우’라는 인물 그 자체를 보여주려 노력했다. 순간의 감정과 상황에 충실한, 있는 그대로의 지우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밝힌 김향기 배우는 이 영화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연기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자폐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실감 있는 생활 연기를 비롯하여 천연덕스럽게 반응하는 연기는 웃음은 물론 감동을 자아내는데, 스스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자폐아들도 자신이 남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자폐아이기 때문에 나중에 커서 변호사가 되기는 어려울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 "일반 학교에서는 정상인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엄마가 슬퍼할 거예요. 그러니 말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대사에서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물론 영화 속에서 지우라는 자폐아는 보통 일반적인 자폐아와는 다르다고 명시한다. 지능이 높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 등등) 




첫 만남부터 법정에 서기까지, 지우와 친해지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는 순호와 지우의 모습은 관객들의 얼어붙은 마음도 눈 녹듯 녹게 만든다. 여기에 연기력을 갖춘 조연들의 출연, 이규형 배우, 송윤아 배우, 장영남 배우, 박근형 배우, 엄혜란 배우의 연기 앙상블은 드라마를 더욱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한편 선뜻하게 만든다. (특히, 수인(송윤아)을 향한 순호의 짝사랑이 결말에 이르러 결심을 맺는 것 같자, 내 옆자리의 관객이 한마디 툭 던져 미소 짓게 만들었다. "20년 걸렸네." 사랑한다면, 혹은 마음을 품게 하는 상대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고백하길 바란다. 안 그러면 백 년이 걸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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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시퀀스까지 다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두 시간 동안 담아내어 중후분 이후 다소 루즈해지고, 반전의 반전, 혹은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사건 해결 등이 긴장감을 떨어트리기도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증인>을 통해 두 사람의 얼굴의 표정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볼 수 있어 시간 가는지 모르고 집중할 수 있었다. 자폐라는 '병'이 아닌,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일관성 있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영화에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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