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바삭해진 나를 주문해 주기를
나는 종종 후라이드 치킨이 된다. 그리고 그를 기다린다. 바삭해진 나를 주문해 주길 바라며.
그와 사귀기로 한 날, 나는 물었다. 뭐 좋아해? 그는 한참 머리를 갸웃하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글쎄, 잘 모르겠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라고 말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남자.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 앞에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 남자. 나는 그런 그가 좋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모르니까, 내가 숨은 그를 발견했다고 자부했다. 그럼, 별명 같은 거 있어?라고 물었을 때, 그는 스티븐 호킹이라고 했다. 스티븐 호킹? 나는 바로 공통점을 떠올릴 수 없었다. 스티브 호킹 좋아해? 아니, 전혀. 고등학교 때 별명이라고 했다. 이유가 뭔데? 그냥, 닮았대. 어디가 하나도 안 닮았어!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탓에 그의 눈은 바늘구멍처럼 작아져 영심이를 짝사랑하는 왕경태 같긴 했다. 그 반 친구가 무심코 스티븐 호킹 닮았다고 했다가 그대로 별명이 됐다고, 기분 안나빠?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심상하게 말했다. 안 닮은 거 아니까. 그리고 스티븐 호킹은 천재잖아. 그는 배시시 웃었다.
며칠이 지나 그는 나에게 물었다. 혹시 치킨 좋아해? 치킨? 치킨은 왜? 좋아하는 거 찾았거든. 치킨 좋아해? 응, 나 매주 먹어. 사실 매일 먹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번으로 참고 있어. 나는 어정쩡하게 웃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렬히 치킨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쪽에 가까웠다. 그는 말했다. 나 너와 치킨 먹고 싶어. 후라이드 치킨. 나는 난처했지만, 마음과 달리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치킨이 왜 좋아? 맛있고 푸짐해. 뭐랄까, 먹고 나면 배부르고 여기가 꽉 채워지면서 기분이 좋아져. 그는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치킨 한 마리 먹고 나면 별 거 아닌 것 같아. 나는 후라이드 치킨을 뜯으며, 그런 마법이 있는지는 몰랐네, 우물거렸다. 그는 계속 말했다. 옛날엔 치킨을 통닭이라고 불렀잖아. 어릴 때 아빠가 월급 타는 날은 술에 취해서 꼭 통닭 한 마리 사들고 오셨거든. 그리고 나와 형을 깨우셨어. 통닭 냄새 맡으며 일어나면, 엄마는 왜 자는 애들을 깨우냐고 뭐라 하셨지만 우리가 먹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으셨어. 통닭은 우리 집의 연례행사였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는 말끝을 흐리며 뜯긴 닭다리를 바라봤다.
그는 양념치킨은 치킨답지 못하다고 했다. 치킨은 후라이드지. 치킨의 자존심은 후라이드라고. 그는 번들거리는 손으로 날개를 잡아 들어 올렸다. 나는 퍽퍽한 닭가슴살을 뜯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킨의 생명은 바삭한 튀김이라고 했다. 바삭바삭한 소리가 맛있는 거야. 우리는 바삭바삭한 치킨을 찾아 여러 브랜드를 전전했다. 이렇게 치킨집이 많은지 몰랐다. 저기도 치킨, 여기도 치킨, 한 집 걸러 치킨집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거의 매일, 그의 집에서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번들거리는 사랑을 나누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그였고 먼저 질린 사람은 나였다. 우리 언제까지 치킨만 먹어? 다른 거 먹으면 안 돼? 그는 내 표정과 말투에 상처받은 듯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원한 건 없었다. 아무리 바삭한 치킨도 하루만 지나면 눅눅해져 맛이 없어졌다. 바삭했던 우리의 사랑은 언제부터 눅눅해진 걸까. 그는 치킨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치킨만 먹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헤어진 뒤로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치킨 냄새만 맡아도 그가 먼저 떠올랐다. 그는 지금 무슨 치킨을 먹고 있을까.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후라이드 치킨 따위 거들떠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나는 어느새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종종 후라이드 치킨이 된다. 그리고 그를 기다린다. 바삭해진 나를 주문해 주기를. 그리고 맛있게 먹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