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그날의 사슴을 떠올린다
우리는 사슴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이제 막 조성된 서울숲에서 사슴을 볼 수 있다니,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떠오른 건 일본 나라의 사슴공원이었다. 아직 가 본 적은 없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 패키지여행으로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 나라에 가면 반드시 가야 할 명소라는 것 정도. 그런 비슷한 사슴공원을 서울에도 만들고 싶었을까. 너무나 빤하고 안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한 겨울 오후, 햇살이 쨍쨍하게 내리비치던 날이었다. 대기마저 얼어버릴 만큼, 영하의 몹시도 투명하고 춥던 하루였다. 왜 하필 사슴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우리는 조금은 남다른, 일상적이지 않은 뭔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일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나 약간은 특별한, 그러면서 색다른, 그런 모험 비슷한 걸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간혹 우리는 그랬다. 영화 ‘파주’를 같이 보고 나서 파주를 직접 찾아간다던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카페나 술집을 찾아간다던가, 우연적이면서 필연적인 어떤 연결 고리를 찾아 떠나곤 했다. 하지만 사슴은 어떤 연결점도 없었다. 이제는 누구의 입에서 비롯됐는지조차 기억이 없다.
그날 우리는 서울숲역에서 만났다. 나는 두꺼운 패딩 점퍼를 발끝까지 끌어내려 입은 반면, 그는 평소처럼 단출했다. 추위에 약한 나는 털모자에 털장갑까지 끼고 있었는데, 그는 가벼운 목도리 하나만 두른 채였다. 춥지 않냐고 묻자 이렇게 추울 줄 몰랐다며 그가 웃었다. 그의 입에서 가습기의 증기처럼 하얀 숨결이 뿜어졌다. 왜 하필 이렇게 추운 날을 골랐을까. 사슴이 뭐라고, 우리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울숲을 헤매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서울숲은 넓고 황량했다. 표지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아 우리는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걷고 또 걸었다. 정말 사슴이 있긴 한 건가. 우리는 확신 없이 정처 없이 걸었다. 이러다 사슴은 고사하고 감기에 걸려 고생만 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무렵,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따라간 길은 역시나, 였다.
그곳에 사슴이 있었다. 비록 철조망 안이었지만, 진짜 사슴이었다. 진짜 사슴이네. 나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도 똑같이 말했다. 알고 온 거 아니야?라고 묻자, 설마 했지,라고 그가 싱겁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진짜 있었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거리낌 없이 철조망에 다가가 한 사슴에게 먹이 비슷한 뭔가를 내밀었다. 그러나 사슴은 미동 없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멀거니 그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손짓하고 소리를 내어 불러도 사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 뒤에 멀찍이 서서 사슴을 바라봤다. 우리에 갇힌 사슴들은 대개가 작았다. 다 새끼들인가. 글쎄, 모르겠네. 우리는 띄엄띄엄 대화를 나누며 사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슴은 작고 연약해 보였으나, 미동 없이 우리 한 명 한 명을 지긋이 바라봤다. 아주 그윽한 시선으로. 웃음기 전혀 없는 무표정으로, 인간이라는 동물을 관찰하려는 듯이, 대려 우리가 철조망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얼마 후 나는 그와 헤어졌고, 아주 추운 겨울날이면, 나는 그날의 사슴을 떠올린다. 차갑고 건조하지만, 한데 가득 물기 어린 그 크고 둥근 눈망울을, 우리를 관망하던 그 사슴의 텅 빈 눈동자를.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게 꼼짝없이 바라보던 그 시선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