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도서관에 나타난 건 곰이었다
도서관에 나타난 건 곰이었다. 가슴에 반달이 새겨진 흔하다면 흔한 곰이었다. 곰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둔하고 느릴 줄만 알았는데 보기보다 샤프하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곰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도서관이니 당연히 책을 빌리러 온 줄 알았는데 서가에 딱히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파묻고 시험공부에 온 신경을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곰에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곰이 무엇 때문에 도서관에 왔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폰을 보는 척하며 몰래 곰의 움직임을 쫓았다. 멀리 있던 곰이 점점 나와 가까워졌다. 나는 얼른 책으로 눈을 돌리고 모른 척을 했다. 이내 곰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곰은 내 앞의 빈 의자를 당기더니 끙 소리를 내며 앉았다. 의자는 곰이 앉기에 편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슬쩍 고개를 들어 보니 곰은 그 자세 그대로 자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하던 공부나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신경을 껐더니 어느새 곰은 가고 없었다. 말이라도 붙여볼 걸 그랬나, 그제야 후회가 밀려왔지만 곰과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생각하니 난감해졌다.
도서관 문이 닫히기 전에 나는 가방을 챙겨 나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하릴없이 아이폰을 꺼내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을 때 나는 놀랐다. 언제 찍었는지 모를 곰 사진이 있었다. 내가 언제 찍었지. 나는 유심히 사진 속의 곰을 들여다봤다. 가슴에 반달이 새겨진, 어디서나 볼법한 특징 없는 곰이었다. 마치 수현처럼. 곰이 앉아있는 모습마저 수현과 똑 닮아서 어쩌면 저 곰이 수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와 수현은 학교 근처 자취방에 새들어 함께 살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수현이 떠났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반년 동안 세간살이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서로의 물건이 뒤섞여 누구의 것인지 불분명한 게 많았다. 갑작스러운 결정 탓에 수현은 제대로 짐을 꾸릴 시간이 없었다. 수현은 급할 때면 집에 들러 필요한 걸 가져가곤 했다. 주로 내가 없는 시간을 틈 타 우리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알바가 끝나고 밤늦게 집으로 향할 때면 수현이 오늘은 뭘 가져갔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예상대로 금방 가져간 것도 있었지만, 예상 밖에 가져가지 않은 것도 있었다. 가령, 면도기 같은 것. 수염이 빨리 자랄 텐데 그대로였다. 면도기를 새로 샀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헤어드라이어기도 그대로였다. 그건 수현의 아르바이트비로 산 건데 가성비가 좋다는 샤오미였다. 하지만 수현보다는 내가 더 많이 썼을 거다. 내가 수현보다 머리가 길었고 머리 말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으니까. 헤어드라이어기가 그대로일 때마다 나는 안도했다.
나는 하루에 한 장씩 핸드폰 속의 수현의 사진을 지워나갔다. 희한하게 처음 본 것 같은 사진들이 꼭 있었다. 여긴 어디지,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럴 때면 너무나 답답해서 수현에게 불쑥 연락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째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사진 속에 다정하게 웃고 장난을 치고 있는데도 그랬다. 사진첩을 뒤적이다 나는 다시 곰을 봤다. 곰은 왜 도서관에 왔을까. 혹시 나를 찾으러 왔을까. 그러다 문득, 수현은 왜 떠났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끝까지 묻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아는 것이 훨씬 두렵고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