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리뷰: 레이먼드 카버, 헤밍웨이, 포크너
작가 김연수는 모든 소설가들의 데뷔작은 검은색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어떤 불이 타오르고 남은 그을림의 흔적. 불꽃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뒤에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다. 다 타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존재. 소설을 쓸 때만 소설가가 될 것이다.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은 이미 한 권의 책으로 소진되었다. 데뷔할 때만 필요한 것이 재능이다.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체력이다.
:
나는 내가 되고자 하는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 단 한 번의 불꽃, 뒤이은 그을음과 어둠, 그리고 평생에 걸친 글쓰기라는 헌신만이 나를 소설가로 만든다는 것을. 그게 바로 소설가의 운명이라는 것을.
파리 리뷰에서 인터뷰한 250명의 소설가 중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36인’을 선정했고 이중 12명을 <작가란 무엇인가> 1권으로 묶어냈다. 작가가 직접 소설가를 인터뷰하였으며, 역자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
천재 작가라는 타고난 작가는 없다. 작가가 되고자 열망했던 사람도 있지만 우연히 혹은 어떤 사소한 계기를 통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한 번에 원고를 쓴 작가는 없다. 수십 번을 고쳐 쓰며 매일 일정한 시간을 책상 앞에서 글자와 씨름했다. 완벽한 작가란 있을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작품을 남기기 위한 치열하고 지난한 시간을 통과했다. 유머러스하면서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성찰, 작가가 된 동기와 이유 과정, 배경, 작품의 의미와 숨겨진 의도. 카버 역시 알코올 의존증이 심했으나 최소한 소설을 쓸 때는 술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글을 쓰는 목적이나 글을 통해 만들어내는 세계가 어떠한지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작가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한정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바탕으로 어떤 무엇보다도 완전히 진실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허구임에 틀림없지만 매우 진실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
아래는 가장 기억에 남은 세명의 작가 인터뷰를 발췌한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미국 작가이며 남성이다. 인터뷰 내용만큼이나 재미있는 부분은 작가의 작업실을 묘사한 부분이다. 레이먼드 카버가 결벽적으로 깨끗하다면 헤밍웨이는 그 반대로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고, 그는 평소 글을 서서 썼다고 한다. 카버가 질문에 최대한 자세하고 길게 답변하는 방면, 헤밍웨이는 간결하면서도 거침없이 그런 질문은 소용없다고 일갈하기도 한다.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은 상이할지라도 인터뷰에 참여한 작가들은 모두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고쳐 쓰는 고통과 괴로움에 번민할지라도 한 단어, 한 문장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있는 모습은 작가이기에 가능한 자세 혹은 고집, 그리고 숙명... 자신을 자기답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과도 같아 보였다.
레이먼드 카버
갤러거에는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방문객 사절’이라 쓴 표지판을 그렸다. 그 표지판의 글씨는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눈썹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방충망 문에 걸려 있었다. 가끔은 전화를 며칠 동안 뽑아 놓고 ‘방문객 사절’ 표지판도 며칠씩 걸어 놓는다.
카버는 2층에 있는 넓은 방에서 작업했다. 긴 참나무 책상 위는 깨끗했다. 한쪽에 L자로 꺾여 있는 부분에 그의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카버의 책상 위에는 작은 장식품이나 행운의 무적이나 장난감 같은 것이라곤 없었다. 그는 수집가도 아니고 기념품에 마음이 끌리는 유형도 아니고 무엇인가를 동경하는 유형도 아니다. 가끔 마닐라지로 된 파일이 참나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는데, 이 파일에는 현재 수정 중인 단편이 들어 있었다. 그의 파일들은 아주 질서 정연했다. 그는 단편의 원고와 그것의 수정 전 원고들을 금방 금방 꺼낼 수 있었다. 서재의 벽은 집의 다른 벽들처럼 흰색이었고 역시 다른 벽들처럼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카버의 책상 위 높은 곳에 위치한 직사각형 창문을 통해서, 마치 교회의 창문에서 빛이 들어오듯이, 빛이 여과되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카버는 몸집이 컸고 간소하게 플란넬 셔츠에 카키색 면바지나 청바지를 입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 속 인물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옷을 입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몸집이 큰 사람 치고는 목소리가 매우 낮고 불분명해서 그의 말을 들으려고 계속 더 가까이 몸을 숙였고, "뭐라고요, 뭐라고요?"라고 짜증 나는 질문을 반복했다.
:
- 술 마시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주시겠어요? 너무나 많은 작가들이 알코올 의존증은 아니라도 술을 엄청나게 마시지요.
작가들이 다른 전문 직종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마시는 것은 아닐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마셔대는지 아시면 아마 놀라실 겁니다. 술에 관련된 신화들이 물론 존재하지만 저는 그 신화 때문에 술을 마시지는 않았어요. 그냥 술을 들이켰을 뿐이에요. 아마도 제가 저 자신과 제 글, 제 아내와 아이들과 관련해서 삶에서 가장 원했던 일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 나서 술을 엄청나게 마시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상한 일이지요. 파산하거나 알코올 의존자가 되거나 바람피우거나 도둑이 되거나 아니면 거짓말쟁이가 될 의도를 갖고 삶을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 글쓰기 습관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언제나 뭔가 이야기를 쓰고 계신가요?
글을 쓸 때는 매일매일 씁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기분이 좋지요. 하루가 다음날과 바로 연결됩니다. 때로는 그날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지요. (...) 인내를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거든요. 그걸 오래전에 배워야 했지요. 인내 말입니다. 제가 별자리를 믿는다면, 제 별자리는 거북 자리일 거예요. 저는 발작적으로 일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책상 앞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럴 때는 참 행복하답니다. 아시겠지만, 일하는 시간의 많은 부분은 수정하고 다시 쓰는 시간이지요. 집 안 어딘가에 놓아둔 이야기를 가져다가 다시 수정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지요. (...) 어떤 이야기의 초고를 쓰는 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아요. 대개 한 번에 앉아서 쭉 쓰지요. 하지만 그 이야기의 각기 다른 다양한 수정본을 만드는 건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 위대한 작가들의 초고를 보는 건 아주 배울 점이 많고 마음에 용기를 주는 일이지요. 예를 들어 수정하기를 아주 좋아했던 작가인 톨스토이의 교정쇄 사진이 생각납니다. 물론 톨스토이가 수정을 좋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수정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그는 마지막 교정쇄에서도 수정을 거듭했답니다. , 전쟁과 평화는 여덟 번이나 수정했고, 마지막 교정쇄에서도 여전히 수정했어요. 이런 걸 보면 저처럼 초고가 엉망인 작가들이 용기를 낼 수밖에 없지요.
- 당신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이 작품이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모르겠네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 깊은 의미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 매번 내 삶이 이런 경험들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고, 내 삶이 이런 경험들에 영향을 받고 바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 기억나네요. 제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곧 제 삶이 결국에는 전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어쨌든 눈에 띄든 아니든, 제가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지 않았답니다. 그때 예술은 제가 시간이 있을 때, 제가 그렇게 할 여유가 있을 때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 단지 그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술은 사치이고 그것은 저 자신이나 제 삶을 바꾸지 않을 거라는 거죠. 예술이 어떤 일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어렵게 깨달았답니다. (...) 특정한 삶을 사는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쓰면 어떤 분야의 삶을 전보다 약간 더 이해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 자신에 관한 한 예술의 역할은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 훌륭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거나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거나 혹은 정치체재 자체를 바꾸거나 고래나 레드우드 나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은 못합니다. (...)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뭔가 지속적이고 오래가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을 읽는 데서 오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지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헤밍웨이
처음에 무질서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 방을 잘 살펴보면, 이 방의 주인이 기본적으로 깔끔한 성품을 갖고 있지만 물건, 특히 추억이 담긴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된다. 책꽂이 위에는 온갖 종류의 기념품이 놓여 있다. 나무 구슬로 만든 기린, 무쇠로 만든 조그마한 거북, 작은 모형 기관차, 두 대의 지프차와 베네치아의 곤돌라, 등에 태엽이 달린 장난감 곰, 심벌즈를 들고 있는 원숭이 인형, 소형 기타, 짚으로 둥글게 만든 식탁용 깔개 위에 삐딱하게 놓여 있는 주석으로 만든 미 해군 복엽 비행기 모델. 이런 것들은 대개 어린 소년의 옷장 뒤편에 놓인 신발 상자에서나 볼 수 있는 잡동사니이다. 그가 수집한 기념품들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헤밍웨이의 침실에 보관되어 있는 버펄로 뿔 세 개의 가치는 그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얻는 과정 중 수풀 속에서 고생을 많이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이 다 잘 끝났다는 점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들을 쳐다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
-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지적 훈련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글쓰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집을 나가서 목을 매야 합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목매는 밧줄에서 끌어내려져야 하고, 죽을 각오로 남은 삶 동안 최선을 다해 쓰도록 스스로 강요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최소한 목매는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겠지요.
-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끊임없이 무언가 쓸 만한 것을 찾는 관찰자가 되시는군요.
맞습니다.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없으며 관찰한 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을 거예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가 관찰하는 것 모두가 그가 알고 있거나 본 것들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자산이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항상 빙산의 원칙에 근거하여 글을 쓰려고 애씁니다. 빙산은 전체의 8분의 7이 물속에 잠겨 있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안 쓰고 빼버린다고 해도, 그것은 빙산의 보이지 않는 잠겨 있는 부분이 되어 빙산을 더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작가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여 안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에는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 창조적인 작가로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왜 사실 그 자체보다는 사실의 재현을 선택하셨나요?
왜 그런 것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나요?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알고 있거나 알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 당신은 그것을 살아 있게 할 수 있고, 만일 당신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면 그것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이유이고 우리가 아는 한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모든 이유가 있다면, 그런 이유는 어떤 것일까요.
포크너
- 좋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따라야 할 좋은 방법이 있나요?
99퍼센트의 재능, 99퍼센트의 훈련, 99퍼센트의 작업. 소설가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결코 만족하면 안 됩니다. 이미 쓴 소설은 결코 자신의 꿈이나 가능성만큼 훌륭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꿈을 꾸어야 하고,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동시대 작가나 선배 작가들보다 더 낫기 위해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보다 더 나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예술가는 악마가 몰아 대는 그런 피조물이지요. 악마가 왜 그를 선택했는지 그는 모릅니다. 소설가는 대개 너무 바빠서 왜 그런지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소설을 마치기 위해 아무에게서나 훔쳐오고, 빌려오고, 구걸하고, 빼앗아온다는 점에서 도덕과는 완전히 관계없지요.
- 작가는 완전히 무자비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작가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그의 예술에 한정됩니다. 그가 만일 좋은 작가라면 완전히 무자비할 것입니다. 그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게 하기에 그는 꿈에서 벗어나야만 합니다. 그럴 때까지 평화는 없는 셈입니다. 책을 마치기 위해, 명예, 자존심, 체면, 안전, 행복, 이 모든 것을 잊어야 합니다. 어떤 작가가 어머니로부터 무엇인가를 빼앗아야 한다면 망설이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작가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어떤 것일까요?
예술은 환경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예술은 어디에서 창조되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제안받았던 가장 좋은 직업은 유곽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지요. 제 의견으론 그곳이 예술가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입니다. 그 일은 예술가에게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주어 두려움과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지붕이 있고, 간단한 계산을 좀 하고 매달 한 번씩 지역 경찰서에 가서 돈 좀 집어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지요. 그곳은 하루 중 일하기에 제일 좋은 아침 시간에 조용하겠지요. 저녁에는 사회적인 삶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번잡할 테니, 원하기만 한다면 지루해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그 일이 그에게 그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줄 테고, 장부는 포주가 관리할 테니 그로선 달리 할 일이 없겠지요. 그리고 모두 여자밖에 없을 테니 그를 존경하고 ‘영감님’이라고 높여 부르겠지요. 이웃의 밀주업자들도 모두 ‘영감님’이라고 부를 겁니다. 그리고 그는 경찰관과 친구가 되겠지요.
예술가가 필요로 하는 유일한 환경은 평화, 고독, 너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즐거움뿐입니다. 나쁜 환경이란 혈압이 올라가는 상황, 즉 좌절하고 분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상황이겠지요. 제 경험으로는, 제 직업에 필요한 것은 종이, 담배, 음식과 약간의 위스키뿐입니다.
- 작가에게 경제적인 자유가 필요한가요?
아니요, 작가는 경제적인 자유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연필과 약간의 종이입니다. 돈을 지워 받아서 좋은 글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작가는 재단에 후원금을 신청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인가를 쓰느라고 너무 바쁘지요. 그가 일류 작가가 아니라면 그는 시간이 없다거나 경제적인 자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속이지요. 좋은 예술은 도둑놈이나 밀주 양조자나 경마장의 마부로부터도 나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경이나 가난을 얼마나 잘 견디어낼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을 정말로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인한지 알아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것도 좋은 작가를 망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작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죽음뿐입니다. 좋은 작가는 성공이나 부자가 되는 걸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성공은 여성적이고 여자들하고 비슷합니다. 성공 앞에서 굽실거린다면 성공이 짓밟을 것입니다. 성공을 다루는 방법은 성공을 경멸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공이 굽실거릴 것입니다.
- 당신은 얼마만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쓰시나요?
무어라고 말씀드릴 수 없네요. 세어보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얼마나 많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경험, 관찰, 상상력이라는 세 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 중의 두 가지, 또는 한 가지가 다른 것의 결여를 보충해줄 수 있습니다. 제게 이야기는 대개 한 가지 생각이나 기억이나 정신적인 그림에서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왜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다음에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게 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발전시키는 것이지요. 작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방식으로, 그럴듯한 감동적인 상황에서 그럴듯한 사람들을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환경을 자신의 수단의 하나로 분명히 사용해야 합니다. (...) 즉, 음악이 더 훌륭하고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으나, 제가 듣는 것보다 읽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말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저는 소리보다 정적을 더 좋아하는데, 말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정적 가운데서 만들어집니다. 즉, 산문의 천둥과 음악은 정적 가운데서 발생합니다.
- 혹시 영감을 포함시킬 수 있으신지요?
저는 영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감이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저는 영감에 대해 들어는 보았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 소설의 미래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소설을 계속해서 읽는 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설을 쓸 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림이 많은 잡지와 만화책이 사람들의 읽는 능력을 마침내 고갈시킨다면, 문학은 진실로 네안데르탈인의 동굴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글이 될 것입니다.
- 예술가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움직임에 대해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모든 예술가의 목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삶이라는 움직임을 잡아서 다시 고정시켜, 수백 년 후에 이방인이 그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이 삶이기 때문에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불멸은 언제나 살아 움직여서 불멸인 어떤 것을 뒤에 남겨놓은 것뿐입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술가들이 언젠가는 통과하게 될 최후이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이라는 망각의 벽에 “킬로이가 여기 왔었다.”라고 적어놓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