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개인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 Sep 18. 2017

영화 <어 퍼펙트 데이>

#사적인 영화_05:  주어진 시간은 단 24시간, 우물을 사수하라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995년 발칸 반도, 한 마을의 식수를 책임지고 있는 우물 안에서 의문의 시체가 발견된다. 육중한 바디의 시체를 건져내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던 중, 낡은 로프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다.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로프를 가진 집은 찾기 어렵다. 9월 21일 개봉 예정 <어 퍼펙트 데이>는 마을의 생명수가 오염되기 일보직전, 한시라도 빨리 시체를 끌어올리려는 NGO 국제구호요원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24시간도 부족한 비상사태 속에서 요원들은 로프를 찾아 시체를 건져 올려야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요원들의 긴박함과 다르게 여유롭기만 하다. 오랜 전쟁으로 인하여 시체를 봐도 무감각해진 지 오래다. 심지어 지원을 요청한 UN은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되려 요원들의 수행을 방해한다. 리더 맘브루 (베니치오 델 토로)와 그의 오랜 동료 B (팀 로빈스), 정의감 넘치는 신참 요원 소피(멜라니 티에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통역가 다미르(페자 스투칸)와 함께 팀을 나누어 로프를 찾아 헤맨다. 이와 중에 맘브루의 옛 연인이자 현장 분석가 카티야(올가 쿠릴렌코)가 이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합류하며,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 니콜라까지 보호하게 된다. 개성 강한 인물들이 한 팀을 이루어 좌충우돌, 우물 살리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과연 이들은 24시간 안에 무사히 로프를 찾아 생명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어 퍼펙트 데이>는 제목과 달리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다루고 있다. 그 흔할 것 같은 로프를 구하는 일도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이웃 마을 가게에서 발견한 로프는 오랜 전쟁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공포에 빠진 주민들이 쉽게 내주지 않는다. UN은 도리어 그들의 수행을 방해하고, 개 목줄(?)이라도 필요한 마당에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수도 없이 돌아가고 돌아가는 영화이다. 지뢰로 무장된 땅 위에 고의로 던져 놓은 소의 시체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왼쪽으로 가야 할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일단정지해야 한다. 아이러니로 무장된 영화는 전쟁이라는 참상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 각자가 지닌 욕망과 갈등을 버무리며 하나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을 보편적이지 않게 다른 방식으로 그려냈다. 


오랜 전쟁을 치렀음에도 발칸 반도의 위대한 자연은 현실의 인간사와 다르게 아름답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가는 길 위의 풍경은 압도적이고 자연은 광활하다. 흡사 로드 무비를 연상케 할 만큼 길 위는 이들에게 중요한 수행 작전을 펼쳐낼 또 하나의 공간이자 배경이다. 비포장도로, 미로 같은 사막, 산악 지대 등 이국적인 자연 그대로의 숨결이 묻어난다. 그 앞에서 인간이 저지른 부조리함과 전쟁은 하찮게만 느껴진다. 물론 전쟁의 참상으로 인하여 무너진 건물들과 폐해는 여전히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바로 '유머'이다. 이 힘들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유머라고 했을 만큼,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이 나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요원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유머를 공감한다. 입담은 그치지 않고 힘든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간혹 그 안에 담긴 날카로운 은유와 풍자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지뢰밭은 있을지언정 동네 할머니는 영리하게 소떼를 끌고 다니며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또한, 이 영화에서 액션이 차지하는 부분은 음악으로 대신한 것 같다. 요원 B가 틀어 놓는 펑크락만이 이들 여정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펑크락은 거칠지만 경쾌하고 밝다. 1970-80년대 록 음악은 제한된 시간 안에 미션을 해결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귀를 즐겁게 해준다. 





이 영화 안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어린 니콜라의 이야기였다. 니콜라는 전쟁으로 인하여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고 있다. 축구공을 찾고자 했던 것도 공을 팔아 국경을 넘어 부모를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니콜라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폭격으로 부서진 집 내부의 시간은 멈춰진 지 오래이다. 행복했던 가족은 사진으로만 빛바랜 채 남아 있다. 다만, 소년의 비극 앞에 맘브루가 보여준 작은 휴머니즘은 인류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봤다면 영화는 스피드 하지 않다. 그 대신 허를 찌르는 대사와 인물들의 유머와 개성이 더욱 와 닿는 역설적인 영화이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주민들과 UN 군인, 요원들, 심지어 동물까지도 깊은 생각에 빠져든 것 같은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팬이라면 반갑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다만 카티야를 맡은 올가 쿠릴렌코는 이 영화에서 미모만을 담당한 원칙주의자 여성으로 그려진다. 직업적 임무와는 달리 맘브루와의 연인 관계에만 치중하여 농담을 거는 것 같아 아쉬웠다. 




덧: 



과연 이들은 우물의 시체를 무사히 건지고 식수를 보호할 수 있었을까? 끝까지 부조리한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누구라도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