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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Oct 17. 2017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

#사적인 영화_06: 나는 완전한 오늘을 살아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0/19일 개봉 예정)


영화 오프닝부터 친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본 이베어의 노래 <퍼스>였다. 영화를 통해 이 노래가 히스 레저의 고향을 추억하며 만든 노래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들의 뮤직 비디오를 찍은 감독 맷 아마토가 히스 레저와 함께 레이블 '더 매시스'를 세운 고향 친구였다. 본 이베어의 뮤직 비디오를 찍던 도중 히스 레저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밴드는 슬픔을 함께 하며 추모곡을 만들었다. 노래는 더욱 특별해졌다.


히스 레저 또한 그런 배우였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연기를 하는 배우,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이 이상 소름 끼치게 재현해 낼 배우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조차 뛰어넘었다. 

  

*


다큐멘터리 <아이엠히스레저>는 그가 직접 찍은 영상과 사진을 공개하며, 함께 작업한 배우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담았다. 그의 고향은 서호주의 퍼스(Perth) 다. 그곳의 자연은 아름답고 깨끗하며, 한가로운 곳이다. (사후, 히스 레저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전형적인 호주 남자답게 어린 시절부터 밝은 태양처럼 중심에 서서 두각을 나타냈다. 체스를 잘 뒀고, 모든 예술 장르를 사랑했고, 세상 밖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였다.


여기에 그가 사랑하는, 그를 사랑하는 오랜 고향 친구들과 가족의 인터뷰도 담아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구성과 연출이 새롭다기보다는 배우로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들의 대답은 솔직하고 담백했다. 그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즐거워 보였고, 이야기들은 따뜻했다. 그가 얼마나 충만한 하루를 살았고, 배우로서 강한 자부심을 느꼈는지, 그리고 가족과 형제,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한 사람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LA 자신의 저택으로 수많은 지인들은 물론 예술가들을 초대했다. 언제든 놀러 와서 여기 쉬었다 가라고, 문을 열어두웠다.



*


처음으로 히스 레저를 본 영화는 <기사 윌리엄>이었다. 꽃미남 같은 이목구비는 아니었지만, 꽤 인상적인 등장이었다. 전면으로 그의 얼굴이 영화 홍보 수단으로 적극 활용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히스 레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명성을 얻었지만, 할리우드 상업 시스템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호주의 대 자연 속에서 자라, 늘 친구와 함께 지냈다. 심지어 연기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될 때는 영화 촬영장마다 죽마고우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진짜 연기(keep it real)를 원했고, 배우가 되고 싶었고 동시에 자유를 꿈꿨다. 아마도 이때부터 그의 시선은 달라졌으리라. 흥행 배우로 멈추지 않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영화와 감독을 찾았다. <몬스터 볼> <브로큰백 마운틴> <아임 낫 데어> <다크 나이트> 등, 다양한 영화마다 그의 인장을 깊게 새기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


나오미 와츠가 말했듯이, 배우로서 좋은 요소를 지닌 사람이었다. 좋은 목소리, 남성성과 육체미. 어디에도 없는 개성을 지닌 배우, 장난스러운 허세와 끼 많은 사람, 재주가 많고 음악을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다정했을 사람, 천상 배우일 수밖에 없는 사람, 만약 죽지 않았다면 그가 만든 영화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나이 28세,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히스 레저. 그는 자신의 수명이 언제인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없어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말했다.  



I completely live in the now, not in the past, not in the future.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그의 연기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했다. 이안 감독은 신이 질투할 재능을 가진 배우라고 평했다. 언젠가 누가 내 인생을 10년 후쯤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히스 레저는 아주 따분한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뼛속 깊이 예술가였고, 품위가 무엇인지 아는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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