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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Nov 06. 2017

영화 <리빙보이인뉴욕>

#사적인 영화 08: 그럴듯한 뉴욕 로맨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1/09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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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보이인뉴욕>의 원제는 사이먼앤가펑클의 노래 제목과 동일한 <The Only Living Boy in Newyork>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제목처럼 뉴욕에 혼자 살고 있는 '소년'일까, 아니면 과거의 명성을 간직한 채 쇠락해 가고 있는 '뉴욕'일까. 영화 초입 내레이션은 뉴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모두가 사랑하는 도시, 최신의 첨단 유행을 달리는 세계적 도시이자 현대 예술을 꽃피운 도시. 지금의 뉴욕은 영혼을 잃었다. 허상만 남은 외로운 도시는 예측 가능한 지루한 삶만이 펼쳐진다. 겉은 화려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외롭고 쓸쓸하다. 도시에서 우리가 바라는 그럴듯한 사랑이란 이런 모습일까.    


이제 내레이션은 곧장 뉴욕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소년 (이라고 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청년) 토마스와 그의 여자 친구 미미, 그리고 토마스 가족을 설명한다. 어느덧 목소리는 주인공의 심리에 마음대로 개입한다.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영화가 혹시 소설의 내용이 아닐까. 당연 내레이션은 작가의 목소리이며, 그 작가는 토마스의 집으로 이사 온 이웃의 제랄드라는 것도 밝혀진다. 토마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랄드가 그려낸 소설, <The Only Living Boy in NewYork>이라는 것도 함께 말이다. 





토마스(칼럼 터너)는 작가 지망생이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을 벗어난 적이 없는, 지금의 뉴욕에서 살고 있는 청년이다. 그는 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미미(키어시 클레몬스)를 목하 짝사랑 중이다. 토마스는 출판사 사장인 아버지 이단(피어스 브로스넌)과 유명 미술가 엄마 주디스(신시아 닉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움 없이 무난히 자란 그에게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다면, 도시와 달리 자신이 무척 평범하다는 것이다. 미미와의 관계는 진척이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상을 이어가는 토마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렸다는 듯이 제랄드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건다. 이웃이라고 소개한 그는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을 찾으라고 거듭 강조한다. 토마스는 그를 괴상한 아저씨라고만 여기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된다. 토마스는 우연히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 사실도 그에게 털어놓는다.  


뉴욕의 로맨스는 변화무쌍하다. 로맨스도 도시를 닮았다. 화려하고 거침없이 팡하고 터지는 불꽃같다. 격렬하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다. 아슬아슬하고 스릴 넘치지만 내 것으로 가질 수가 없어 불안하다. 그 짜릿한 감정을 사랑하는 것인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헷갈린다. 아버지의 불륜을 우연히 본 토마스는 내연녀 조한나(케이트 베킨세일)에게 이상하리만치 집착하고 분노한다. 심지어 미미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는 아버지의 불륜에 화를 내는 것 같지만, 저런 섹시한 여자가 (내가 아닌) 늙은 아버지와 함께라는 것에 화를 내는 것 같다. 그의 열등감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 


간혹, 사랑은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만 움직일 때가 있다. 과연 나라면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어디까지 냉정해질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혹은 정신적 사랑이 우선일까 아니면 육체적 사랑이 우선일까, 본능적인 갈망과 욕망에서 시작되는 사랑을 진짜라고 해야 할까, 가짜라고 해야 할까. 과연 도덕적인 잣대로 사랑을 개인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한나와 육체적 사랑까지 나눈 토마스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바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비밀은 미미를 추동하는 자극이 된다. 





영화는 일견 삼각관계의 막장 드라마로 흘러가는 듯하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 돌연 크게 우회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테마도 흔들린다. 삼각관계는 해프닝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가족의 서사가 대체된다. 오랫동안 숨겨진 비밀이 반전처럼 밝혀지지만, 앞 뒤 스토리가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훈훈한 영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배우의 매력과 눈요기적인 뉴욕 단상과 음악 선곡으로 그럴듯하게 잘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뉴요커라는 허세가 두 눈을 가린다. 적당히 감각적이고 적당히 힙하고 적당히 감동적이고 적당히 로맨스를 버물려 놓았다. 


마크 웹 감독의 전작은 <500일의 썸머>이다. 그 뒤로 톰은 어텀을 만나 성장했을까. 이 영화의 토마스는 조한나를 만나 어떤 방향으로 성장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한때 그가 짝사랑한 미미 또한 예쁘장한 흑인 여성이라는 것 외에 굳이 등장한 이유도 알 수 없다. 사실 그가 중간에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가슴 뜨겁게 조한나를 사랑한 것 같지도 않다. 치기 어린 열정인지 도련님 같은 어리광인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쿨함인지도 헷갈린다. 그럼에도 뉴욕이라는 공간적 매력이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놀라울 뿐이다. 마크 웹 감독이 또 다른 로맨스 영화를 찍는다면, 미국 남자의 어떤 지질한 단면을 꺼내 보여줄지 내심 궁금하다.  



덧: 


토마스를 연기한 칼럼 터너는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너드 같은 매력의 영국 배우였다. 미미도 사랑스럽고, 눈에 익은 등장인물들 때문에 괜스레 반가웠다. (섹시인더시티의 미란다는 특히 더!) 다만 케이트 베킨세일은 예전 미모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연인과 친구들과 보기 좋은 적당한 팝콘무비, 눈도 즐겁고 귀도 즐겁지만 그 이상은 바라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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