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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Nov 22. 2017

영화 <빛나는>

#사적인 영화 09:  그리고 빛은 여전히 아름답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1/23일 개봉 예정)



어느덧 가와세 나오미 감독 작품은 거의 다 봤지만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클리셰처럼 보이는 장면도 몰입하게 된다. 예상 밖의 이야기로 허를 찌른다. 인물도 대사도 날 것 그대로 리얼하다. 또렷한 응시와 두려움과 떨림, 눈물, 가장 인간다운 슬픔. 사랑하는 이의 부재. 숲과 바람, 나무 그리고 빛은 여전히 아름답다. 요동치는 뜨거운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영화 <빛나는> 올해의 베스트로 삼고 싶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는 감독이 먼저 보인다. 그의 인장이 깊게 새겨있다. 그의 영화는 자연과 인간의 뗄 수 없는 인과 관계를 다룬다. 자연에는 신과 정령이 깃들어 있다. 그 앞에서 인간은 한낱 피조물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숲 속에서 길을 잃거나 몰아치는 바다의 파도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도망치기보다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무서우면서도 신비롭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지만, 결국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운명이 닿아 있다. 인간은 나약하면서도 강인하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작품은 <수자쿠>(1997)였다. 그동안 부모와 헤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상실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내밀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상실감을 극복하는 치유였다. 그렇게 20년 동안 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영화를 찍었다. 그의 작품은 기이한 힘이 있다. 마력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 정적인 고요만으로도 귀 기울이게 만들고, 소리 없는 움직임은 더 크게 눈을 뜨게 한다.  신작 <빛나는>는 역시 이전 작업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한 단계 진화했다. 감정의 결은 풍부해지고 사유의 지평은 넓어졌다. 주인공의 성장과 함께 감독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술이 곧 삶이다"라는 감독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번 <빛나는>는 다시 나라를 배경으로 찍었다. 산과 바다로 카메라를 들이댔던 감독의 시선이 사람 속으로 이동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시력을 잃어가는 포토그래퍼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와 영화 음성 해설 작가 미사코(미사키 아야메)의 이야기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영화 해설을 만들어야 하는 미사코는 평소에도 일상적 풍경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연습을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치 그녀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미사코가 독자를 위해서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언어와 단문으로 최적의 단어를 선택하여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역가 같았다. 영화라는 세계와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과 연결해주고 있었다.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녹음에 들어가기 전, 시각 장애인들과 함께 테스트 겸 시사회를 진행하며 의견을 듣고 수정할 부분을 체크한다. 장면 해석을 둘러싼 의견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다. 상상력을 방해한다, 영화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감독의 해석과 다양한 감상과 이해 사이에서 미사코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더욱이 나카모리와의 반목은 더욱 결정적인 계기를 던진다. 고민은 단순하지 않다. 잘 설명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사유와 철학이 필요한 순간과 맞닿뜨린다.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실존적 인간에 대한 물음표이다. 미사코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되었다. 그리고 시력을 완전히 잃은 나카모리의 아픔마저 곁에서 지켜본다. 상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어느덧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한 해답은 영화 라스트신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녀의 문장 속 한 단어로 인하여 우리는 벅차오른다. 






영화의 원제는 <빛(光)>이다. 유달리 빛이 아름답다. 얼굴 위로 프리즘처럼 반사되어 흩뿌려지는 빛,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온몸을 환하게 비춰주는 빛. 포토그래퍼인 나카모리가 시력을 잃어갈수록 카메라에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  어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럼에도 빛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인간적이면서 감동적이다. 존재의 비애감. 자기 심장보다 더 소중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고집과 아집을 던질 수 있는 그 용기가 눈물겹다. 영화의 카메라는 집요하게 미사코의 두 눈을 클로즈업한다. 아름다운 두 눈은 절대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똑바로 응시하고 바라본다. 자신의 생각은 또박또박 언어로 전달한다. 그녀의 언어를 통해 나카모리는 아름다운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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