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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Dec 16. 2017

영화 <강철비>

#사적인영화 11: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안에서 뻔한 결말과 감동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2/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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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은 자신의 웹툰 '강철비'를 영화로 옮겨왔다. 강철비라는 제목은 얼핏 들으면 동화스럽고 귀여운 느낌이 드는데 알고 보면 Steel Rain, 실제 있는 클러스터형 로켓 탄두의 별칭이라고 한다. "이런 무시무시한 무기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이유는 남과 북을 둘러싼 현재의 전체적인 정황이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무서운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중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인터뷰에서 감독이 직접  밝혔다





<강철비>는 최정예 요원 엄철우(정우성)가 쿠데타를 막기 위해 반란 주모자를 암살하려는 지령을 받아 잠복하는 가운데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온다. 그 사이 북한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남한은 계엄령을 내린다. 북한 1호가 남한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는 우연한 기회에 엄철우와 북한 1호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는데, 과연 이들이 남북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포스터만 봐도 정우성은 북한에서 내려온 정예요원이고 곽도원은 남한의 엘리트 요원의 면모를 보여준다. 정우성은 조국에 대한 신념이 가득한 냉철한 요원, 엄철우역으로 딸과 아내를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의 면모도 지녔다. 반면의 곽도원은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3개 국어에 능통한 능글맞은 이혼남, 곽철우이다. 두 사람은 동명이인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인물이다. 곽철우의 아내가 의사인 병원에 엄철우가 북한 1호를 데리고 오면서 두 사람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 속에 두 인물의 케미스트리가 통했는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물음표로 남는다. 이름이 같고, 함께 움직이면서 작전을 수행하고, 같이 잔치 국수를 먹고 지드래곤의 음악을 듣는다고 해서 정서적인 친밀감이 형성되는가.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과정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북한에서도 지드래곤을 아는구나 정도뿐이고 노래는 영화 속에 녹아들기보다 튄다. 엄철우는 영화 내내 심각하고, 곽철우는 시종 거들먹 거리며 하나마나한 대사를 내뱉는다. 그 사이에서 신뢰감이 형성되고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 찾기 어렵다.  


영화는 핵이라는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긴박하게 흘러가기보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늘어진다.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한 북한 핵실험 시나리오는 기시감이 들 정도이며, 제작진 모두가 주제 의식을 갖고 고민하며 촬영에 임했을 법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영화 속 인물들만 심각하게 느껴지며,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른 세상 이야기로 다가온다. 물론, 현실감 있는 검증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흔적들이 느껴진다. 정우성은 평양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려 했고, 맨몸 액션을 비롯하여 자동차 추격신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선보였다. 막대한 분량의 CG 구현도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대사들이 많고 쭉쭉 뻗어가는 이야기의 흐름보다 그 안에서 정치싸움과 머리싸움을 하며 지지부진하게 이끌어간다. 


또한,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강철비>에서도 축소된다. 가장 이상했던 장면은 북한 1호를 맞이하는 개성공단에서 진분홍색 재킷을 입은 여공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미사일이 터지면서 곳곳에 여공 시체들이 뒹구는 장면이다. 비장함과 분노와 안타까움의 정조를 자아내려고 했던 것 같지만 왜 하필 여자여야 했을까 의문이다. 그밖에 여성의 역할은 기능적인 면에서 그치고 만다. 정우성의 아내는 지고지순한 북한 여자(박선영), 곽도원의 아내는 잘 나가는 성형외과의 독한 의사(김지호). 그나마 협조적인 여성은 미국 CIA 금발 머리의 여성. 전형적이고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평면적인 역할은 아쉬울 뿐이다.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도발적이면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남북관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영화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온전히 재미 면에서 살펴본다면 아쉬움이 크다. 배우들의 열연에 비하면 서로의 합이 어색하고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려는 면이 긴장감을 떨어트리며, 뻔한 줄거리는 지루하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안에서 예상 가능한 감동과 마무리로 매듭지으려는 모습이 감흥 없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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