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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an 07. 2018

영화 <다키스트 아워>

#사적인 영화 13: 윈스턴 처칠의 가장 어두웠고 뜨거웠던 시간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8년 1월 17일 개봉 예정)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며 두 영화가 떠올랐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콜린 퍼스 주연의 <킹스 스피치>였다. 이 두 영화의 공통분모와도 같은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에 관한, 당시 덩케르크 작전을 수행하던 긴박함과 조지 6세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극복하고 끝까지 히틀러에게 굴복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어둡지만 선명하게 그려냈다. (여기서 조지 6세는 <킹스 스피츠>처럼 심하게 말을 더듬지는 않는다) 이미 <덩케르크>를 관람함 관객이라면 어렵지 않게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로 접한 정보는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그래서 무비판적으로 왜곡된 영화를 받아들일 경우 그 부작용 또한 크다) 


오랜만에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 감독의 신작이자 또 다른 시대물이다. 윈스턴 처칠 역은 배우 게리 올드만이 맡아 제75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영화는 제23회 크리스틱 초이스 주요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전으로 손꼽히는 덩케르크 작전을 배경으로 처칠 수상이 보여준 결연한 의지와 카리스마는 게리 올드만의 열연으로 더욱 빛을 발했다. 수상의 몸가짐, 걸음걸이, 알코올 중독, 시가를 입에 물고 있는 장면까지 어디에도 게리 올드만은 보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수상의 말투와 생각으로 움직이는 역사적 인물만이 모든 배경을 장악했다. 게리 올드만의, 게리 올드만에 의한, 게리 올드만을 위한 영화였다. 철저한 고증 역시 훌륭하게 영화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남아 있지 않은 1940년 대 다우닝가 10번지는 제작진의 무한한 상상력으로 완성했으며, 조지 왕조 시대의 건물을 간신히 찾아내어 수상의 평소 모습과 생활 패턴을 반영하여 내부를 완성하고 리얼리티를 창조했다고 한다. 특히, 미국 대통령과의 비밀 통화를 나눴던 처칠 워룸은 영화의 핵심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감독 특유의 치밀한 섬세함은 핀의 컬러와 메모까지 똑같이 재탄생시켰으니 그 당시 공기로 호흡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 목소리조차 그 당시 녹음된 실제 자료가 아닐까 싶은 의혹을 남길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당시 상황을 빛과 그림자로 그려낸 점이다. 처칠의 방은 암막 커튼으로 종일 어둡고 그는 낮잠을 즐기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빛은 찌를 듯이 눈 부시다. 어둠은 빛을 막을 수 없고 당시의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정의의 불꽃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영화는 이러한 어둠과 빛을 종종 활용하며 당시의 어둡고 긴박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처칠 수상의 다양한 인간적 면모를 그려냈다. 수상은 다혈질로 여비서 앞에서도 알몸으로 활보하는 괴팍한 인물이다. 자신의 정당에서조차 지지받지 못하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이자 배척받는 인물이다. 조지 6세조차 꺼려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고 신념을 굳히지 않는 달변가이자 문장가로 묘사되었다. 다시 수상의 자리로 돌아와 가족과의 축하 자리에서도 그는 가족보다 나라를 걱정하는 인물로 소개된다. 수시로 술을 마시고 시가를 피워대며 소리를 빽빽 질러대며 빠르게 활보하는 처칠을 보고 있으면 절로 불안해진다. 그만큼 나이를 먹어도 에너지와 파이팅이 넘치는 정력가이자 불의에 굴복하기보다  죽기 전까지 싸움을 불사하는 인물이다. 물론 그도 인간이기에 완벽하지 않다. 작전 실패로 수많은 젊은 목숨을 바쳐야 했고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며 진실을 숨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고 묻고 들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는다. 


그러나 수상을 가까이 집중해서 그리는 바람에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가 정밀하지 못하거나 평면적이었던 것은 아쉽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의회 연설 장면은 감정의 고조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미 너무나 반복적으로 신념, 승리, 희생, 생존, 투쟁, 정의를 반복했고 가장 힘을 받아야 할 장면에서 탄력을 받지 못한다. 쓸데없이 영화가 길었던 것도 한 몫했다. 더 효과적으로 압축적으로 보여줬다면 덜 지루했을 것이다. 여성 캐릭터의 활약 또한 구색 맞추기 용으로 마련되어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그 당시 여성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된다. 그러나 타이피스트 여비서인 레이튼과 처칠의 아내 클레멘타인 처칠은 수상의 감정적 응석을 받아주고 북돋아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클레멘타인 처칠은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가정 안에서 그를 아이처럼 다독여주는 역할에만 한정된다. 여비서와의 우정 또한 공감되기보다 필요한 부분인지 의심스럽다. 






<다키스트 아워>는 시종 진지하다. 웃을 수 있는 포인트도 적을뿐더러 처칠의 괴팍한 행동만으로는 숨구멍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러나 팩트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고증 앞에서 절로 숙연해진다. 덩케르크로 향하는 수만 개의 민박 어선들을 보면 가슴 뜨거워지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확고한 신념은 숭고하다. 전쟁은 수많은 생명들을 앗아갔고 가족의 실종과 부재를 남겼으며 이는 현재 진행 중이다. 처칠이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일상은 전쟁이 없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 또한 아무것도 아닌 이 같은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던가. 인간을 인간답게 규정해주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과연 어떤 신념으로 살아야 하는가. 비단 과거의 역사만의 문제라 할 수 없다. 연속해서 <1987>를 보며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하는 신념은 무엇이고, 그 가치는 무엇인지, 진실과 용기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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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여비서 레이튼 역의 배우가 누구인가 한참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베이비 드라이버>의 데보라 역의 릴리 제임스라는 것을 알았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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