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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Jan 22. 2018

영화 <원더 휠>

#사적인 영화15:  인생은 아름다운 멸시, 비극으로 반복된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25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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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감독이 오랜만에 고향 뉴욕으로 돌아와 1950년대의 몰락해가는 유원지, 코니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로맨스를 펼쳐냈다.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리며, 지니(케이트 윈슬렛)의 집에서 보이는 코니 아일랜드의 대관람차 이름을 따서 영화  <원더 휠>이 되었다. "나는 코니 아일랜드에 가면 언제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고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기에 극적인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으면 강렬한 분위기를 낼 거라 생각했다."라고 감독은 작품 의도를 밝혔다.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 중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연기했던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잊지 못한다. 한 미국 중산층 부부의 권태와 불안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던 영화로 그녀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원더 휠>은 그와 상반된 지점의 여성을 연기했다.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입버릇처럼 "난 여기와 어울리지 않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야"라는 말을 반복하며 과거의 자신을 추억한다. 또한 그녀는 소음과 일에 지쳐 극도로 날카로워진 신경성 두통을 앓고 있다. "지니는 기이한 방식으로 내 안에서 많은 것을 끄집어 내게 만들었다. 24시간 내내 연극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어딘가 내 안에 배터리가 있어서 계속 충전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내 평생 가장 흥미진진한 촬영이었다"라고 케이트 윈슬렛은 전했다. 



이야기의 화자는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이다. 해변의 안전 요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는 위대한 희곡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이다. 우연히 비 오는 해변가를 서성이는 지니(케이트 윈슬렛)와 만난 믹키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 둘은 곧 사랑에 빠져든다. 지니는 첫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은 큰 불을 내는 나쁜 버릇이 있어 지니를 힘들게 한다. 두 번째 남편 험티는 코니 아일랜드의 회전목마를 관리하는 직원이다. 낚시를 좋아하며 술을 마시면 손찌검하는 버릇이 있다. 연극과 드라마를 좋아하는 지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예상치 못한 손님이 방문한다. 험티의 딸, 캐롤라이나가 마피아 남편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를 위협에서 도망쳐 찾아온다. 지니와 함께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험티의 도움으로 야간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우연히 길에서 믹키를 만나게 되는데, 이 둘 사이에 삼싱치 않은 기류를 느끼며 지니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파스텔톤의 환상적인 색감과 영상. 비비드하고 강렬한 색의 향연 사이에 아이스크림처럼 팡팡 터지는 파스텔의 조화가 눈이 부시다. 거장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원더 휠>에서 대조적인 색채 범위를 극적으로 활용했다. 인물이 속한 시간이나 장소를 돋보이도록, 캐릭터의 감정과 심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촬영하였다. 쇠락해가는 코니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노을의 황홀함, 비 오는 푸른 바다, 빛에도 색이 스며들어 있는 슬픔, 삶의 애환과 비극. 우리는 지니의 얼굴 위로 다채롭게 반짝이며 스쳐 지나가는 빛과 어둠을 통해 대사나 말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녀의 감정과 반응한다. 지니는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처럼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따뜻한 색감으로 표현했다면, 캐롤라이나는 반대로 푸른 하늘색으로 설정했다. 또한, 나락으로 떨어진 과거 여배우의 현실을 민트색 유니폼으로 보여주면서도, 지니가 소장한 드레스와 소품은 우아하면서 품위 있게 활용했다. (어쩌면 윤색된 과거일 수도 있다. 케이트 윈슬렛이 입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간 그녀는 타고난 우아함이 있다.) 물론 나와 같은 관객이 있다면 완벽하게 재현한 빈티지 의상에서도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수지 벤징거 의상 감독은  실제로 수천벌의 빈티지 의상을 구입하고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1950년 대의 뉴욕 코니 아일랜드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집 내부 세트를 제외하고 코니 아일랜드와 뉴욕 현지에서 직접 촬영했다고 한다. 지니가 일하는 루비스 클램 하우스는 실제 코니 아일랜드에 있는 식당이며, 지니와 믹키의 특별한 데이트 장소로 나오는 스태튼 섬 스너크 항에 있는 중국 학자의 정원은 둘의 현실을 잊게 해주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지니의 집은 창밖으로 대관람차가 가깝게 보이고 아래층에서는 손님들이 쏘는 총소리로 귀가 따가운 혼란의 공간이다. 지니와 험티와 아들은 서로 소리 지르기 바쁘며 비루한 현실을 숨기지 않는다. 지니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순간은 오직 믹키와 비밀 데이트를 즐길 때와 아들 앞에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이다. 그녀는 오직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자신의 힘이 아닌, 믹키에 의지하며 도망칠 때만 기다린다.  




<원더 휠>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참상으로 그려지지만, 과연 우리 인생과 크게 다른지 반문해본다. 영화 스토리는 많이 본 듯한, 그리고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피아 남편에게 쫓기는 캐롤라이나와 믹키가 서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질투에 사로잡혀 해서는 안될 행동을 지니는 저지른다. 지니의 가장 멋진 연기는 믹키 앞에서 거짓말을 할 때이다. 그녀를 찾은 믹키 앞에서 흰 드레스를 입고 살짝 술에 취해 쏟아내는 대사와 행동은 인생 연기 그 자체였다. 믹키는 비극적인 희곡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역설적으로 그는 작품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통해 참된 비극을 완성한다. 술에서 깬 지니는 다시 유니폼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한다. 그녀의 연기는 끝났고, 현실은 반복된다. 그 순간 케이트 윈슬렛의 처연한 눈빛은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는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배우에게 온전히 빚 지고 있다. 


 


덧1. 케이트 윈슬렛이 과연 이 영화로 수상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개인적으로 <블루 재스민>이 더 좋았지만, 우연히 출연 배우 이름 모두가 케이트라는 것. <블루 재스민>은 상류 계급의 생활을 훔쳐보며 대리만족을 했다면 <원더 휠>은 어디에도 감정 이입하고 싶지 않은 괴로움의 날 것이 있었다. 



덧2.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지만, 곳곳에서 그와 함께 작업하기를 보이콧하는 배우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입양딸의 인터뷰가 올라온 기사를 보며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우디 앨런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그의 사생활에 경악을 금치 못한 적도 있었다. 과연 작가와 작품을 도덕적 관점에서 동일해서 볼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오랜 고민을 다시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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