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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Mar 13. 2018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사적인 영화17: 이토록 밝은 아이의 웃음, 선명한 기적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재빨리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지인이라면 더욱 빨리 알아챘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숨은 의미를 발견한 나 같은 자도 있을 것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1965년 디즈니가 테마파크 '디즈니 월드'를 건설하기 위하여 플로리다주의 올랜드 지역 부동산을 매입한 계획을 뜻한다. 1971년 '매직 킹덤'으로 최초 개장한 이후, 현재까지도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 그 주변은 2008년 경기 침체 이후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지 못한 노숙자들의 거주지로 쓰인 모텔들이 즐비하다. 주 단위로 투숙하는 소위 숨은 홈리스(Hidden Homeless)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 모텔촌이다. 


영화 주인공 여섯 살 무니와 친구들은 이 모텔촌에서 싱글맘, 싱글대디와 함께 모여 살고 있다. 영화는 철저히 아이의 시각과 일상으로 이어진다. 아이다운 결말은 당혹과 동시에 마음 저릿하게 만든다. 알록달록하게 덧칠한 페인트 색은 초라하고 비루한 현실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장치이다. 동화처럼 꾸며 놓은 가짜 낙원이지만 무니의 웃음은 진짜 살아 있다.   



션 베이커 감독의 <탠저린>을 보고 난 뒤, 이번 영화 개봉도 줄곧 기다렸다. <탠저린>은 LA를 배경으로 아이폰5S 3대로 만든 기막힌 완성도와 최고의 오락 액션(?) 영화였다. 그 빠른 속도와 추진력, 거침없이 끌고 가는 긴박한 전개에 혀를 내둘렀다. 출감한 지 얼마 안 된 흑인 트랜스젠더 신디는 포주인 남자 친구가 백인 여자와 바람피운 것을 알고 분노를 금치 못한다. 신디는 폭주 기관차처럼 LA의 거리를 누비며 그 연놈을 찾아 헤맨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LA의 어두운 뒷골목 거리의 속내를 엿보게 된다.  성소수자, 성매매자, 아랍 이주민, 동성애자 등등, 화려한 할리우드의 도시 LA의 거리는 미처 몰랐던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켜켜이 쌓여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과감 없이 경쾌하게 보여준 <탠저린>은 싸구려 동정은 베풀지 않는다. 단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렌즈를 통해 투명하게 비출 뿐이다. 흥미진진하게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곳에 '사람'이 서있다. 그저 하루 먹고 살아가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 울고 웃고 화내고 분노하는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 션 베이커 감독은 똑바로 응시하기 어려운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보여준다. 가볍지 않은 현실을 무겁지 않게 그려내며 판단은 우리의 몫으로 슬며시 밀어 넣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또한 그러하다. 영화 스토리는 한 줄 요약으로 충분하다. 모텔 매직캐슬에서 살고 있는 6살 어린 여자아이 무니(브루클린 프린스)가 매일 친구들과 놀이로 하루를 채워나가는 이야기이다. 새로 들어온 차에 멀리 침 뱉기,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동전 구걸하여 소프트 아이스크림 사기, 번갈아가며 한 번씩 돌아가며 핥아먹기, 욕하기, 알몸 훔쳐보기, 빈 집 탐험하기, 물건 부수기, 불장난 하기... (끝내 집은 홀랑 타버린다.) 무니와 친구들은 매일매일 무얼 하며 놀까, 신나고 즐겁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서든 사고를 일으킨다. 시끄럽게 모텔 여기저기를 소란스럽게 누빈다. 매직캐슬 매니저 바비(윌렘 데포)도 진땀 빼며 두 손 두발 다 든다. 아이들은 그의 경고를 듣지 않는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안다.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사람은 바비가 유일하다. 그들의 사정을 알고 일말의 선의를 베풀려고 노력하는 사람 또한 힘없는 바비뿐이다.  


무니의 집은 엄마(브리아 비나이트)가 있는 객실이다. 장기 투숙객이 아닌 척해야 하고 쫓기듯 이방 저 방으로 옮겨 다녀야 하지만, 여기가 아니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일주일치 방세를 낼 수 없는 엄마 핼리는 향수로 호객행위를 하고, 제대로 된 식사를 만들 수 없어 공짜 와플을 얻는다. 온몸에 타투를 하고 피어싱을 한 핼리는 누가 봐도 십 대 미혼모이다. 그녀는 일자리도 구할 수 없고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사고 친 애인은 이미 도망갔고 헬리는 무니를 낳아 매직캐슬까지 흘러왔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니는 그저 환하게 웃으며 엄마와 손잡고 걷기만 해도 까르르 웃고 까분다.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하기에 무니가 혼자 욕조에서 장난감 인형과 놀며 씻는 동안 핼리는 남자를 받는다. 



영화를 보며 내내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핼리와 무니처럼 살고 싶지 않을 거라고. 디즈니 월드 가는 것이 소원인 브라질에서 신혼여행 온 신부는 여기서 자고 싶지 않다고 울상을 짓는다. 무니는 말한다. "난 어른 얼굴만 봐도 언제 울 건지 알 수 있어." 울어야 할 사람은 신부가 아니다. 핼리와 무니는 울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못 배워서, 혹은 가난해서, 운이 없어서, 불결하다 라는 수식어는 붙이지 않는다. 핼리와 무니는 구걸도 하고 훔치기도 하지만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 힘을 모아 한 푼이라도 벌고 그 한 푼조차 먹고살기 위하여 내던진다. 현실은 불행할지 모른다. 정작 그들은 누구보다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 매춘을 들킨 핼리는 법의 제재를 받는다. 무니는 엄마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친다. 핼리는 너희가 뭔데 감히 엄마와 딸을 갈라놓으려 하냐며 엿이나 먹으라고 소리 지른다. 


누구나 꿈꾸는 디즈니월드, 그 밖의 세계는 모험으로 가득하다. 드넓은 세상, 그 안에서 무니는 보고 듣고 배운다. 석양의 붉은빛, 흠뻑 내리는 비, 쓰러져도 다시 자라는 나무, 풀밭 위의 소떼, 엄마와 친구들, 매니저 바비, 와플과 소프트 아이스크림. 아이의 하루는 길고 길다. 어른의 시간은 나이의 두배 이상의 속도로 지나가지만, 아이의 시계는 느리고 천천히 흐른다. 무니의 세상은 매일 흥미롭고 새롭다. 쉴 새 없이 떠들고 뛰어다니며 주저 없이 많이 먹고 또 먹을 수 있다. 이 아이의 웃음은 기적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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