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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pr 17. 2018

영화 <몬태나>

#사적인 영화19: 아메리카 굿맨의 눈물 사용법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4월 19일 개봉 예정)



월스트리트 저널은 <몬스터>(Hostiles)를 가리켜 '긴 여정을 통해 인간성을 재발견하는 아름다운 영화'라고 평했다. 감독 스콧 쿠퍼는 친구 크리스찬 베일을 위한 각본을 썼으며, 크리스찬 베일 역시 '조셉' 캐릭터에 뼈와 살을 붙이고 피와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에 동참했다. 




조셉 블로커 대위(크리스찬 베일)는 미국 연방군에 충성을 바친 존경받는 전설로 통한다. 그러나 오랜 전투로 인한 트라우마를 뼛속 깊이 간직한 군인이다.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가족 같은 동료들을 잃은 조셉은 분노와 증오를 동력 삼아 피의 복수를 자행한다. 그에게 인디언은 원수이자 야만족이다. 한편, 오래 감금된 일생의 적 옐로우호크(웨스 스투디)가 암에 걸리고, 미국 연방은 고향 몬태나에서 죽고 싶다는 그의 청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전역을 앞둔 조셉에게 그의 호송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명령 불복종을 행사한 조셉도 어쩔 수 없이 천 마일이라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우연히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를 구출하며 거친 황야의 무법자들과의 위태로운 싸움을 벌인다.  


로잘리는 야만적인 인디언 부족 코만치족에 의해 잔인하게 가족을 한꺼번에 잃고 홀로 남겨졌다. 남편을 비롯한 두 딸과 갓난아이의 시체 곁을 떠나지 못하고 넋을 잃은 로잘리는 조셉의 호의 아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한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본 부대원들 모두 숙연해지며 옐로우호크의 가족도 그녀를 돌봐준다. 로잘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부장적 울타리를 잃은 여성이다. 인디언족에 의한 피해자이자 약자이며 보호받아야 할 명예로운 대상이다. 냉혹한 군인 조셉 또한 로잘리한테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존대의 호칭을 사용하며 깍듯하게  대한다. 그녀의 상처가 아물도록 성의껏 도와주며 적의 공격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상대로 보호한다. 참혹한 경험을 겪은 강한 여성으로서 각성의 변화를 기대했던 로잘리는 영화 말미에 가서야 (겨우) 총을 겨누는 씬을 연출한다.   



흥미로운 장면은 로잘리와 옐로우호크의 딸이 백인 모피 상인에게 납치됐을 때이다. 그들은 인디언이라는 이유만으로 로잘리 대신 옐로우호크의 딸을 흠씬 폭행한다. (같은 인종이라는 이유로 로잘리은 손대지 않는다.) 우리편의 여자를 납치하고 사고 파는 물건처럼 다룬 상인들은 부대원 남성에 의해 그에 합당한 죗값을 받는다. 감히 우리 여자들을 건드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한편, 부대원 사이의 인종 및 남녀 서열은 정해져 있다. 텐트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도 백인 여성이 우선한다. (밖에서 아픈 여성을 재울 수 없다.) 인디언족 여성은 백인 여성의 금발을 손수 땋아주고 돌봐주는 시녀 역할을 자처한다. 로잘리 역시 인디언족의 수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물론 없다. 인종간 권력관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땅은 원래 인디언들의 땅이었다고 식사 시간 내내 떠들던 장교의 부인도 사실은 백인 입장에서 호혜를 베풀 뿐이다.) 


영화 내내 조셉 대위를 가리켜 모두가 한 입으로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정하지 않으며 얼굴은 자부심으로 꽉 차 있다. 인디언족을 잔인하게 도륙한 죄로 사형수가 된 인물이 있는 반면, 반대로 조셉은 전쟁 영웅이자 전설로 대우받는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이 미국 남자는 적에게는 인정을 베풀지 않지만, 그의 동료 앞에서는 눈물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눈물 사용법은 남성 연대 앞에서는 허용되며 명예와 자긍심의 증표이다. 조셉은 수많은 전투에서 자신의 팔다리와 같은 동료들을 잃었다. 이번 여정에서도 오래도록 곁을 보좌해온 하사관이 부상을 얻어 함께 하지 못하자 그의 침대 곁에서 망설임 없이 눈물을 떨군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그가 울다니. 또한, 그의 친구 토마스가 도망치는 사형수를 끝까지 쫓아 죽음을 맞이하자 그의 무덤을 지키며 울음으로 설움을 달랜다. 이토록 뜨거운 남성 연대의 우정은 이성의 사랑도 뛰어넘는다. 오래도록 영원할 사랑이다. 


눈을 뗄 수 없는 인물 중, 사형수를 쫓는 조셉의 친구 토마스가 있다. 영화 초반부터 그는 자신이 우울증이 있음을 토로한다.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왔다고 고백하며 점점 죽음에 익숙해진 자신이 인간인가 아닌가로 고뇌한다. 장마가 쏟아지는 야밤에 옐로우호크를 찾아가 구원을 바라며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그는 반성하는 영혼이자 죄를 시인하는 몸짓을 보여준다. 


어느 순간 영화는 선과 악이 모호해지고 적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점으로 이어간다. 몬태나에 도착한 남은 인디언 가족도 백인의 총구 앞에 모두 살해당한다. 그들의 고향은 백인 사유지로 변모된 지 오래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어린 인디언 소년은 로잘리의 손을 잡고 기차를 기다린다. 부족의 옷이 아닌 양복을 입고, 조셉이 건네주는 시저 왕에 관한 책을 손에 든다. 그는 곧 부족의 언어를 잊어버릴 테고 영어를 받아쓰는 명예 백인이 되거나, 백인을 보좌하거나, 운이 없으면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끌려갈지 모른다. 그가 의지할 사람은 로잘리뿐이지만 서부 개척 시대의 지배 계층은 백인이다. 




타카야나기 마사노부 촬영 감독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뉴멕시코와 콜로라도에서 촬영을 진행한 <몬태나>는 강렬한 빛의 대조를 사용하여 인물 여정의 중요한 빛과 그림자를 선연하면서 아름답게 포착했다. 크리스찬 베일의 감정의 변동 없는 진짜 군인 같은 연기와 로자먼드 파이크의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연기는 실감 나지만 둘이 함께한 연기 호흡은 어딘가 어색했다. 의상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지만 마지막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양복과 드레스는 꽉 끼어 숨 막혀 보였다. 




덧: 설마 했는데 인물 소개를 보고 역시 했다. 티모시 샬라메가 이등병 프랑스인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극 중에서 자기처럼 신참이 왜 이 여정에 뽑혔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속으로 나는 답했다. "예쁘니까요." 오래가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티모시 샬라메는 그렇게 소리 없이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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