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개인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 Jul 08. 2018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사적인 영화 23: 젊은 예술가의 숨겨진 초상, 시작을 위한 성장통


*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7/5일 개봉)


:


한동안 더 스미스(The Smiths)의 노래만 듣던 시기가 있었다. 주류에서 벗어난 너드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들의 노래는 종종 성장 영화 OST에 수록되곤 했다. <500일의 썸머>의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는 유독 자주 귀에 꽂혔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듣게 된 더 스미스는 일상의 배경 음악이 되었다. 한참 뒤에야 80년대(1982년~1987년)에 활동한 영국 밴드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말이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England Is Mine)>은 영국 맨체스터 출신 밴드 '더 스미스'의 리드 보컬,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의 이야기다.  다만 전성기가 아닌 '시작'에 관한 영화다. 밴드를 하기까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수없이 방황한 청춘에 관한 독백,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무수한 좌절과 방황을 내면에서 일삼았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 무명의 천재...... 사실, 어느 누가 자신을 천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나 오스카 와일드 정도나 가능할까?) 영화의 모리세이는 갈등한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내가 이 세상을 뒤집을 단 한 명의 사람이다,라고 믿고 싶은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 세상이 얼마나 바보 같단 말인가. 엄청나게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는 동시에 오만하기까지 하다.




인생은 그 따분함으로 볼 때 피할 만하다 
노동과 집안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모
저녁 밥상에선 싸움이 일고
뉴스에는 미아 사건이 나오고 
그렇게 서서히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다른 음반을 고르고 약 뚜껑을 열어 종말을 기다리는 게 나을까? 
불을 끄고 이불속에 누워  
늘 원했던 세계에 닿을 때까지 잠드는 게 나을까? 
거긴 지금 이 세상보다 나을까?


회오리치듯 빠르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바라보며 스티븐(잭 로던)은 읊조린다. 인생의 따분함과 노동의 진부함, 부모처럼 되고 싶지 않은 반항, 끝없이 가라앉을 것 같은 우울,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분노, 그리고 슬픔.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 앞에 선 청년의 비대한 자의식, 세상을 모두 홀로 짊어진 듯한 진지함은 더스미스의 리드보컬 모리세이의 숨겨진 오픈 트랙과 같다. 그는 라이브 공연장에서도 쉬지 않고 기록하는 문학청년 같은 면모도 지녔다. 여자 친구는 그런 그의 모습을 답답해하며 행동하지 않은 그를 책망한다. 자신 때문인 듯 부모는 갈라섰고, 그런 어머니를 돕기 위해 스티븐은 세무사로 취직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한편,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여성 아티스트 린더(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를 우연히 만나면서 음악을 향한 갈망은 더욱 거세지는데,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티븐 모리세이의 밴드 이전의 평범한 한 시기를 조명한다. 그는 심각하게 내성적이며, 심각하게 우유부단하다. 전형적인 인성 과다형 인물. 겉은 순응적이며 조용하고 얌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한다. 방에 갇혀 수많은 레코드로 음악을 듣고 독자 투고를 위한 글을 쓰기 위해 타자를 친다. (심지어 회사를 가서도 편한 것만 하려고 한다.) 수북이 쌓인 책들은 자의식 과잉의 지적 허영을 채워준다.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은 그가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오직 연필뿐이다. 그의 사유와 생각은 오직 노트 안에서만 살아 움직인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알아봐 주기만을 기다린다. 한심하게 사무실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서류 정리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을 알아봐 줄 거라 믿으며 왜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가를 고민한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기회는 알아서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모험심과 도전이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며 그래서 더욱 자신을 괴롭힌다.      


그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인물은 바로 어머니, 엘리자베스이다. 그녀는 그를 끝까지 감싸고 든다. 스티븐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녀가 사준 레코드 때문이다. 그녀가 사준 음반, 그녀가 사준 책, 그녀가 사준 타자기, 그녀가 사준....... 그녀가 만든 둥지 안에서 스티븐은 안락하다. 그건 그에게 약인 동시에 치명적인 독이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그의 영혼은 애초에 망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마련해준 새장 때문에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 자신이 돼라며 용기를 심어준 사람이 어머니이지만 그렇게 만든 사람도 그녀라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사람이 성장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막바지 절벽 앞에 섰을 때, 흔히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스티븐은 그제야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는지 모른다. 오랜 준비와 방황의 끝에서 그는 가까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층 더 단단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마주 보고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누구의 종용도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 밖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브리티시 록밴드를 대표하는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블러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동시에 현재도 맨체스터를 대표하는 밴드로 이름을 새긴 더스미스. 작사를 맡은 스티븐 모리세이는 '브릿팝의 셰익스피어'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섬세하고 시적인 가사, 철학과 사유가 담긴 내밀한 가사는 지금도 청춘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마크 길 감독은 "모리세이가 만든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일을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리세이와 조니 마, 그리고 밴드 멤버들이 만든 음악이 내 삶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더 스미스’의 앨범은 ‘스티븐’의 '기록'과 같다. 나는 그를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매료되었다. 그에 대해 깊게 파헤칠수록 우리 모두를 만든 원동력은 결국 같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는지, 무엇이 그를 살아있게 도와줬는지 말이다. 그건 바로 책과 음악이며, 무엇보다 주변의 강한 여성들 덕분이었다.   

- 감독, 마크 길 인터뷰 중에서  


실제 같은 동네에서 자랐던 감독은 온전히 80년대의 맨체스터 공기를 담는데 신중을 가했다. 레트로 감성뿐만 아니라 전반에 깔린 세련된 복고풍의 멜로디는 나른한 감성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배우 잭 로던은 당시의 무드를 아우르며, 깨지기 쉬운 연약한 모리세이를 리얼하게 연기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