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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그대 있는 곳으로, 돌아가

회귀

by 유빈

조금만 빌려줄 수 있습니까,

멈춰버린 당신의 시간을 붙잡고 싶습니다.

여전히 당신의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미워했고, 사랑했고, 미안했습니다.

태워져 버린 그대의 옷들이

아지랑이가 되어, 재가되어, 바람이 되어,

먼 여행을 떠나는 당신의 손을

붙잡질 못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갔습니다.

긴 시간 그리워했고,

아파했고,

슬퍼했고,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떨어지는 눈물, 내리는 비와 함께,

날아간 그에게 닿길 바라며 담배 연기에 태워

보냈던, 내 마음을 알아주실까요,


우리 되돌아가볼 순 없는 걸까요,

회귀할 수 없습니까, 없는 겁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안아보고 싶습니다.


결국 제자리에 돌아와도,

깊이 베인 그의 향기마저 흐려집니다.

난 오늘도 당신의 노트를 바라봅니다.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아 ,

조심스럽게,

매번 같은 단락을 펼쳐봅니다.

벌써 11년이 흘렀네요,

보고 싶습니다. 산처럼 넓었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정상에 오른 듯 그의 등에 업혀

나는 오늘도 선잠을 잡니다.


조금만, 우리가 머무른 곳으로,


조금만, 그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되돌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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