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여정의 끝이자 시작점.
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끝에 도달한 곳은 그 모든 것의 시작인 섬,
난 이곳에서부터, 빠져 살아왔던 거야,
원하지 않았던 감정을 원하게 되었고,
홀로 무너져가는 날 보며 미쳐가선,
날 잃어보곤, 다시 찾았지,
발견한 섬은 이스터 섬이 아니었어,
본래 내 마음 한 곳을 단단히 지키던
내가 알고 있던 이름 있는 섬이었던 거지,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살아왔던 거야,
이곳의 평화로움을,
몰랐던 거지, 심해 깊숙한 곳에 터 잡아
살아오고 괴물이 되었던 나니까,
두 번째로 시작한 일은 괜찮았다.
처음 했던 피자가게 알바는 정신이 없었다면,
두 번째로 시작한 바다지킴이 생활은 정신보단
몸이 힘들었다. 다행히 체격이 좋은 편이라
무거운 자루들을 두 개씩 들고 이동할 수 있었다.
우리 들이 하는 일들은 이러하다.
바다지킴이 들은 바다에 떠다니는, 버려진 쓰레기들을
수거한다. 수거 자루에 재활용을 제외한 쓰레기들을 담는다.
그리곤, 수거조가 트럭을 타며 이동하고 , 지정된 곳에 자루들이 모인 곳으로 간다.
자루들을 적재하고, 출근지로 가 자루들을 정리한다.
나는 그곳에 수거조로 3명에서 활동을 하였고,
점심 전에 2번 , 이후엔 3~4번 반복하고 퇴근하였다.
더워도 했고, 비가 와도 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다.
여름엔 정말 죽상인 대원분들이 많으셨다.
너무 더우니까, 미친 듯이 더우니까,
그런데도 바다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니까,
땀 도나고, 지치는 거다.
나는 그래도 젊으니까,
더워서 쉬는 건 원하지 않았다.
더우면 더운 대로 더 했다.
그렇게 땀 흘려 번돈이 내게 의미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앞치마와 모자 대신 장화와 조끼 지만,
바뀐 내 처지가 더 좋으면 된 거 아닐까,
전과 달리 좋은 점이라면, 주말에 내 시간이 생겼다는 것,
혼자 살기에 충분한 월급으로 돈걱정을 덜었다는 것,
둘 다, 내가 정말 원하던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조원분들은 상냥하고 친절하셨다.
무서운 사람도 있었지만, 알고 보면 좋은 분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이런 일을 하시네요?"
"멋있잖아요, 그리고 저한텐 반말 쓰셔도 돼요 이모들, "
"조원분들은 내가 어린데도 이런 일을 하는 거에 대해 아무 생각 없어하는 걸 신기해하셨는지, "
"처음에 많은 관심을 받아서 당황했었다."
"너무 굳어있지 마, "
"네, "
조장 님이 한 말씀하셨다.
생각해 보면 조장님은 내게 사회적인 부분에서
많은 배움이 되어주셨다.
이기적인 마음은 드러나선 안되고,
싸움보단 대화가 중요한 거라고,
그렇게 내게 좋은 말씀을 많이 남겨주셨다.
어느 정도 눈치가 생기기 시작했고,
혼나기도 혼났지만, 거기에 집중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생각해 왔다.
월급을 받았다.
돈이 남았다.
신기했다. 딱 안 떨어지고 여유가 생긴 게,
이제 핸드드립 커피도 자주 먹겠네,
식비를 조금 더 늘려도 되겠다.
그리고, 이제 전화해 봐야지,
내가 일에 적응한 지 두세 달이 되던 즈음에
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아들, 잘 지내고 있어?"
"새로 시작한 거니까, 적응단계지 뭐, "
"아픈덴 없고? 괜찮아?"
엄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나 먼저 생각하는구나,
그 아픈덴 없냐는 말을 전화할 때마다 들으니,
아파도 아픈 척을 해야 할 정도야,
"당연하지, 괜찮아, 쌩쌩해, "
"잘 지낸다고 하니 엄마가 기분이 좋네, "
"하하, "
"엄마, "
"응, "
"이번 주 주말에 바빠?"
"아니? 뭐 없는데, 왜?"
"이번 주말에 나와, "
"왜?"
"일단 나와봐, 와서 말해줄게, "
"알았어~"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레스토랑이란 걸 가보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
"누가 밥값으로 10만 원 이상을 써, "
내가 나한테 마음속으로 했던 말인데,
이젠 거기서 좀 멀어지고 싶다.
좀 비싼 거 먹으면 어때,
그게 누구랑 먹는 건데,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거니까,
그 사람의 시간을 돈으로 산거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싸게 느껴지는 거야.
"저기 예약하려고 전화드렸는데요, "
"아 네, 안녕하세요~"
메뉴를 정하는데 한세월이 걸릴 것 같았다.
"런치 메뉴 세트랑요, 사이드로.."
기다리던 주말이 빨리 오길 바라며..!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일에 임했다.
"아들, 엄마 나왔어."
"응, 같이 밥 먹으러 갈려고, 나오라 했던 거야, "
레스토랑에 오니 내가 예약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앉아서 먹기만 하면 끝,
"두 명에서.. 많으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저 혼자서도 먹을 수 있어요."
"아하하, 알겠습니다. 즐거운 식사되세요"
보기와 달리 난 엄청 잘 먹는다.
내가 생각해도 난 대식가 같다.
한 번씩 배고프면 치킨 두 마리는 거뜬했고,
계란볶음밥이 먹고 싶어 밥솥채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식비가 감당이 안되니 , 참고 있던 거지..
"이게 다해서 얼만데?"
"~ 정도?.."
" 너무 비싼 거 아니가?"
"그냥 생각하지 말고 먹자~"
음식은 맛있었다.
특히 파스타가 맛있었는데,
엄마가 매운 걸 좋아하기에 매운맛으로 시켜놨다.
엄마가 잘 먹는 걸 보니 기뻤다.
이제 이 가격은 우습게 넘기고 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보다 더비 싼 것도 함께 나눠먹어도 남을 돈을 가지고 싶었다.
엄마의 웃음은 내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니까,
레스토랑의 1층은 같은 이름으로 된 카페가 있었다.
영수증을 들고 가면 할인해 준다고 하니, 밥과 디저트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엄마와 같이 내려가 디저트를 담고, 음료를 시켰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앉아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엄마, "
"응, "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모질게 굴기만 했던 것 같아."
"괜찮아, "
"그렇게 얘기해 줘도, 가슴에 영원히 남네, 미안한 게, "
"엄마 따라 여려서 그래 유빈이가, "
"우울하다고 화내서 미안해, "
"짜증 난다고 엄마 밀쳐서 미안해, "
"엄마한테 몹쓸 말들을 내뱉은 거 미안해, "
"엄마 힘들게 해서 미안해, "
"미안해..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괜찮아, 우리 아들, 멋있게 자라주어서 엄마는 고마워, "
"사랑해, 엄마, "
"나도 사랑해, "
엄마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늦기 전에 마음의 문을 걸어 잠겄던 자물쇠를
내 마음 한구석에 두었던 열쇠로 열었다.
내게서 닫힌 문이 아니었고,
엄마에게서 닫힌 문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조심히 노크를 하였고, 열린 문틈 속으로 바라본다.
이내 우리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안았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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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빈이는 뭐가 되고 싶어?"
"모르겠어, 하고 싶은 게 많아, "
"이것저것 다하고 싶어?"
"응~, 엄마랑 아빠가 깜짝 놀랄만한 꿈을 가지고 싶어, "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도 하고, 요리사도 되고, 소방차도 될래"
"그래? 우리 유빈이, 하고자 하면, 모든 될 거야, "
"맞아, 난 다될 거야~"
"그래, 이제 자야지?"
"알겠어, 엄마, 굿 나이트 뽀뽀"
난 뭐든지 될 수 있어.
심해어도 되었다가 길을 잃어도 보고,
가끔은 고래가 되어 아름다운 바닷속 춤사위를 펼쳐도 보고,
갈매기가 되어 하늘을 날기도 하였지,
이번엔 어디일까, 또 어떤 곳일까,
난, 이 평화가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오랫동안, 잔잔한 바다는 유지될 거야,
이제 더 이상 심해로 내려가진 않을 테니까,
나를 위해 시든 엄마라는 꽃에게,
웃음꽃을 피우는 해가 되어,
봄엔 벚꽃을 타며 날아다니고,
여름엔 수국이 되어,
가을엔 낙엽이 되어,
겨울엔, 흰 눈이 되어,
그렇게, 내 곁에 존재한다고 생각할게요 아빠,
나는 바람이야,
어디든 갈 수 있어,
함께, 같이 가자.
나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안녕하세요. 작가 유빈입니다.
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심해 브런치북을 완결하였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설 같은 내용 속 등장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제 자신이었습니다.
소설과 에세이 속 관계가 모호해, 이걸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것 자체를 제 일기장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장르와 주제를 생각하기엔, 시작도 갑작스러웠으니까요,
연재하는 매 순간이 즐거웠습니다. 실제로 쓰면서 마음이 정말 안 좋아지기도 하였습니다.
과거의 저를 만난다는 게, 두려운 것보단,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다양한 작가분들과 공유한다는 것도 제법 용기가 필요한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브런치 스토리를 중학교 때부터 알게 되었었는데,
그 당시에 저장돼 있던 글을 보았을 때, 제 글의 수준이 생각보단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군휴가로 밖에 나와있었을 때 우연히 새벽 산책을 걷다 글을 쓰게 되었는데,
잘 쓰인 것 같아 신청해 본 작가신청이 합격을 받게 되어 이렇게 여러 작가님들이 제 글을 봐주시고
또 다양한 반응을 해주셔서 참 행복해요.
3번의 작가신청, 두 번의 탈락 끝에 성공한 작가 생활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을 뛰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심해의 마지막 이야기는 3년 전 저의 마지막 모습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지금은 2025년인데요, 그 사이 공백 기간을 글로 쓰기에는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내용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엄마와는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가진 게 사랑과 행복뿐인 삶도, 나쁘지 만은 않아 보입니다.
형과도 서로의 나쁜 감정을 걷어내고, 여러 번 연락할 만큼 친근한 형제 사이가 되었습니다.
연락도 자주 해요, (제가 정말 안 하는 성격이에요.. 하하)
공백기간엔 군대도 포함되어서 인천해역방어사령부로 입영하게 되었습니다.
(경남 지역인데, 경기권이라니, 보자마자 충격 엄청 먹었습니다.)
정말, 한두 번 휴가 나오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집까지 7시간 걸리니까요.
이동하는 데만 하루를 쓸 정도니 , 휴가를 자주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현재는 전역한 지 두 달이 되어가네요, 아직도 군생활이 좋았나 봅니다.
계속 계속 생각이 나네요!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제게 군대는 정말 인연을 만들기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선후임으로 지내면서도, 끝엔 형, 친구, 동생으로 지내는 게 정겨웠기도 하고요.
아직도 생각난다는 건 그 속에 사람들이 제게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 안에 만난 동생들은 하나같이 귀여운 녀석들 뿐이었습니다.
형인 제가, 후임 동생들 밥은 매일 사주고 싶더라고요ㅎㅎ,
(많이 얻어먹었니 얘들아..? ㅎㅎ)
부산에 사는 친구 한 명도 사귀었는데,
후임이지만, 하루빨리 나와 술 한잔하고 싶은 친구입니다.
선임들 중 형들도 있었는데,
지금도 연락할 만큼 사이가 가까워져서 행복해요.
제가 형이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형들을 보면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나 봐요.
나이가 저보다 높은 분들은, 그 사이 배울 점들이 있는 사람들이라 판단하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군생활동안 좋은 인연들을 만난 것 같아요.
제 곁에 남았다는 건 , 제 사람이 되어준 거죠!
벌써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1년째 흐르고 있네요.
더 이상 꿈에 나오질 않으시고, 편안히 바다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빈자리에 대한 그리움 또한 저의 엄마에게도 있다고 생각해,
이젠 그 곁을 제가 채워주며 지내고 있어요. 엄마도 절 제일 좋아하고요.
아빠를 잊은 것보단, 가슴에 품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끔 심해 연재를 시작할 때 주제가 암울하다 보니,
이렇게 밝은 느낌의 가벼운 글들은 없었는데,
마지막 화에 쓰게 되어 제 마음도 홀가분하네요!
그렇게 전역 후.. 동기들과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해외여행은 현장학습을 제외하곤 첫 번째인데,
정말 좋았던 기억뿐인 것 같습니다.
동기들과 이렇게 끈끈한 사이가 될 거라고
생각 못했었는데, 마지막 여행을 함께하니
아직까지고 생각나고, 보고 싶은 동기들입니다..!
엄마와 저는 오랫동안 못 본 그리움을 풀고 있던 와중..
저는 또다시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경기권에 있다 보니, 이 지역에서 살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저를 자극했고, 생각이 있으면, 실천을 곧바로 하는 성격이라,
조심스럽게 가족과 얘기를 해보았습니다.
제게 있어 세 번째 자취가 되어주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지낼
지역으로 경남에서 벗어난 인천에서 생활하는 게 어떻게 생각하냐,
형은 제가 위에 올라가 여러 고생을 하고,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며
제 생각을 적극 추천해 주었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였는데, 엄마는 그저 제게 위험하지 않을까? 란 걱정 하나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군대 갔다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가냐면서, 저를 붙잡았죠,
내내 말이 없으시다가, 긍정으로 생각하고 얘기는 좋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자취를 하기 위해 , 필요한 물품과 가구, 월세, 보증금은 제가 해결할 몫이었죠,
형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자취의 첫 시작에 보탬이 되어주었어요.
이제 저는 뭘 해야 할까요?
사실, 제 꿈은 배우 에요. 여러 가지 연기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여건이 안되어
그동안 못해왔던 그 꿈을 향해, 다시금 다가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공부가 동반되겠죠.
여러 가지 언어를 독학해서, 먼저 , 직업을 가져볼 예정입니다.
자취하면서, 한 번씩 책을 보고 있지만. 아직까진 어렵네요,
뭐, 이제 시작하기도 했고, 지금부터니까요! 저의 두 번째 삶은!
결국 마지막날 터져버렸네요,
인천으로 출발하기 전 가족과 점심을 먹었었는데,
나 없어도 잘 지내라는 제 말에 엄마가 고개를 숙이고 울어버리셨습니다.
괜히 했나 봐요, 저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네요.
버스에 타면서 절대 기다리지 말고 가라고 했었는데,
창문으로 엄마가 제 좌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났을까요, 고개 숙이고 오열했지 뭐예요.
아직까지 저는 엄마가 보기엔 아이 같나 봅니다.
주변에서 인천으로 왜 가냐는 질문이 엄청 많았어요,
무언가 일이 있어 간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 없이 간 거죠.
있는 그대로를 얘기한다고 이상할 게 전혀 없었어요.
"나 그냥 가고 싶어서! 경기권 좋아 보이잖아~"
너무 생각 없어 보이게 말했나??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지만,
그래도, 솔직한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은 알바를 구인하고 있어요, 별반 다를 거 없죠!
하고자 하는 게 있으니, 그 길을 향해 갈 일만 남았어요.
여러분들도,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제일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잖아요.
어느 날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허락을 구해 티브이를 봤을 테고,
이불로 아지트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을 테고,
체육시간, 창고에 들어가 공을 꺼냈던 기억 이 있을 거예요.
그 시간들은 유한하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우리들의 시간들도 그런 게 아닐까요?
그래서,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요.
모든 순간의 마지막을 기억하길 바라요.
그리고, 제 글 또한 다른 심해로 빠진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손이 되었길 바랍니다.
추후 다른 활동 계획은, 연재 중인 수면 아래의 말들과 매거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활동 당시에 작가님들의 위로와 공감 덕분에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받아봐서 행복했습니다.
연재작 심해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유빈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