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섬

항해일지의 첫 발견

by 유빈

발견하고, 도착하고, 정착하다.

마주하게 될 미래는 밝은 걸까, 낡은 걸까,

나는 아직도 여행하고 있으며, 항해 중이다.


순탄치만은 않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사람은 여전히 만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사람으로의 위로나 위안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버티고 있다. 다가올 내일, 마주한 오늘을,


내 뜻처럼 안될 때가 많았다. 사회는,

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면 나는 화가 난다,

화를 내고, 몰아붙이는 게 답인 줄 알았다.

당당했고, 그게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갑 과 을, 그 사이에 나는 무조건 을이 된다.

갑에게 이길 수 없기에, 앞으로를 위해 , 물러서야 한다.

내 자존심이, 그걸 허락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게 무조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장님이 착각하신 건, 착각한 거고, 넘어가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졌다.

예민한 나에게 거친 말을 마주하게 되면, 신경이 곤두서있던 나도

장미의 가시가 되어, 폭풍을 맞이하게 된다.


자리를 뜨고, 문 밖으로 나갔다.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모자를 쓰지 않았다.

내손은 밀가루가 묻어있지만, 털고 나왔다.

지난 7개월간 나는 무엇을 배웠나,

피자를 만들고, 치킨을 조리하고, 포장을 한다.

그렇게 하면, 돈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돈이 나에게 필요했기도 하지만,

이 일을 그만두고 나도, 괜찮을 거란 보장도 없다.

이제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그만하고 싶을 땐, 그만하라고, 누가 얘기해주지도 않았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 멈추라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가던 길을 잠깐 멈춰보자, 다른 방법이 있겠지,

나 자신을 믿어.


집 앞 핸드드립 카페가 있었다.

개인 카페에 대한 별생각은 없었지만,

엄마가 내 원룸을 보러 오실 때 한번 가보라고 얘기하셨던 곳,

나의 이야기는 피잣집에 일하기 전으로 돌아간다.


"아까 어머님이 아드님 불러주신다고 하셨는데, 커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커피를 좋아해요, "


"한잔 하시겠어요? 제 커피는 맛있답니다."


"네, 한잔 주세요, 그런데, 얼마인가요?"


"한잔에, 6,000원입니다."


속으로 비싸다고 먹지말자는 얘기를 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그 카페 안에서는 마음이 편안했다.

가게 내부는 사장님이 그동안 여행을 다녀오신 후의 기념품이나,

사장님이 좋아하시는 걸로만 꾸며놓은 , 아지트 같았다.


천장에는 우쿨렐레, 벽에는 피아노, 자그마한 미니어처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밖으로 내놓은 원두들의 색은 곱고, 예뻤다.

갓 로스팅을 한 직후에 방문한 터라,

가게 내부는 고소한 원두의 향으로 가득했다.


내가 알기로는 커피의 맛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건, 로스팅이다.

원두를 얼마나 오래 볶았냐에 따라 맛은 다양하게 바뀐다.

나에게도 그랬을까, 나에게도 받을 사랑이 깊었다면,

다양한 감정을 가진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상처로 로스팅된 나는 , 실패한 원두인 걸까,

실패한 원두는, 폐기 처분되는 걸까,

폐기 처분된 원두는 쓸모가 없어지는 걸까,


사장님이 커피를 내리신다.

기계 같은 움직임으로 흔들림 없이 내려가는 저 물들이,

물을 따라 추출되는 커피들이,

봉긋 솟아오른 원두 머핀 이, 멋있었다.


"되게 잘하시는 것 같아요, "


"커피가 제 인생이니까요, "


"한 번씩 놀러 오세요, 맛있으면요, 아마 맛있을 걸요, "


사장님이 맛보기 커피 세 잔을 주셨다. 각각 맛이 전부 다르다고 한다.

처음 마셨던 잔 안엔 고소하지만, 끝맛에 도는 산미가 복잡 미묘했다.

두 번째, 처음부터 끝까지 산미가 돋보였지만, 끝맛은 달다.

세 번째, 이건 씁쓸하고 고소만 맛이 가득했다.


"설마 이게 한 가지의 원두에서 나온 맛은 아니죠?"


"조금씩 섞어봤어요, "


"그럼, 이 가게만의 블렌딩인가요, "


"그런 거죠, 오늘 만들어낸 맛이에요, "


"시음해보셨어요?"


"아니요, 이건 무조건 맛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


"여러 가지 맛이 나요, "


"고소하면서, 씁쓸하면서, 달달하죠?"


"네, "


"맛없으셨나요?"


"아니요, 여태 먹어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어요."


"그럼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네요, "


"다 내리신 필터는 버리시겠네요, "


"이건 방향제로도 사용가능하답니다."


"정말요? 안 믿기는데요, "


"안 믿기시면 한번 집에다 둬보시는 게 어때요, 얼마든지 있으니, 드릴게요, "


"버리시는 줄 알았어요, "


"버리기도 하지만, 모든 건, 쓸모 있답니다."


"모든 건, 쓸모 있군요, "


"자신을 믿는다면요, 자신을 버리는 순간부터 끝난 거예요, "


"잘 마셨습니다, 시간 되면 다시 오겠습니다."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무엇을 느꼈던 걸까,

나오면서도 커피의 맛이 아른거렸다.

그 가게의 분위기와 향기를 다시 느끼고 싶다.

내가 냈던 6,000원은 아까운 게 아니었다.

6,000원으로 인생을 배우고 간 것 같았다.

받은 게 있다면, 갚아야겠지,

재방문으로, 보답하고 싶다.

돈만 있다면,


이후로도 월급을 받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가게에 놀러 가거나,

커피를 마시러 왔다.

매번 내려주시는 다양한 원두들의 맛과 풍미를 느껴보고, 경험했다.

사장님과 깊어지는 사이를 느낄 때마다 즐거웠고, 배움이 되었다.

아지트 같은 이곳은 내게 안식처가 되어주었고,

정착할 돛대가 되어, 고정되었다.


오랜만에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커피는 그렇게 나를 달래주었고,

사장님의 말씀은 나를 강하게 하였다.

그 공간이, 모든 대화가, 감사했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신 사장님이

나는 고마웠다.


"이제 뭘 해야 할까요, "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야지, "


"저는 멈춰 있는 느낌인데요, "


"그 순간도 소중한 법이야, "


"..."


멈춘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걷거나 뛰는 건 내 선택이니까,

쉬는 것도, 배움이자, 소중한 것이란 걸.


그렇게 한 달을 쉬었다.

그간 못 봤던 친구들도 보고,

근무복을 벗고, 예쁜 옷을 입고,

가게의 풍경보단, 바다를 보았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그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추억을 준 사람이, 추억이 되질 않길 바라왔다.

영원하길 바라왔다.

그리고, 확신이 선건,

영원한 건 없어도, 평생이라는 건 있을 것 같단 생각.


"어떤 일로 오셨나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궁금해서 왔어요."


"코로나 때문에, 알바가 많이 없으시죠, "


"네, "


"경쟁이 있긴 한데, 한번 신청해 보시겠어요?"


"무슨 일인가요?"


"바다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적재하는 일이에요."


"멋있네요, "


"바다지킴이, 신청해 드릴까요?"


"네, "


"시험과 면접 순서로 합격하는 사람들만 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꼭 붙으시길 바라요!"


"네, 꼭 붙을게요, "


충분히 휴식했으니, 다시 , 나아갈 차례,

어쩌면 내게 두 번째 일이 될 수 있는 기회,

말라가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일이 될 수 있게,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살아야지,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바다에 존재하는 쓰레기들의 종류는 어떻고,

쓰레기들을 분류하는 방법, 바다 쓰레기들은 어떻게 활용되는지,

최근 뉴스나 사례들을 처치하면 금방 나왔다.


시험장에 사람은 많았다.

내가 검정고시를 봤을 때 느낌이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같이 열심히 해봐요, 학생, "


"네, 합격하시길 바라요, "


다 끝마치고, 시험 점수 순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결과는 이틀뒤 도착했고, 문자를 본 나는

면접으로 가라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일주일 뒤 면접을 보러 아침에 이동을 했다.

그때 내 옆자리 앉았던 아주머니도 합격하신 것 같다.


"또 보네요"


"축하드려요, 이제 면접만 남으셨네요, "


"긴장돼서 청심환이라도 먹을까 봐요, "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세요, "


면접장은 1:3으로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하는 식이였다.


나를 보는 면접관님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이 일은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바다지킴이라는 이 일 자체가 멋있어서 지원하였습니다."


"나이가 상당히 젊으시네요, "


"네, "


"여기로 지원하게 된 이유를 말해주시겠어요?"


"바다는 제 고향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바다를 보며 새겨진 추억은

맑았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깨끗한 바다가 오염되는 모습을 보기 싫습니다. 직종명 그대로

바다를 지키는 청년이 되고 싶습니다."


"더러운 바다쓰레기들을 수거하면 꽤나 힘들 거예요, 괜찮겠어요?"


"더러워지는 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떻게, 잘하실 거죠?"


".."


"추진한 지 몇 년 안 되었지만,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할 수 있어요?"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맡겨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을 끝낸 나는 문 앞에 아주머니가 서계신 모습을 보았다.


"조금 오래 걸리던데, 괜찮았어요?"


"잘 끝내고 왔어요,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만 마세요 이모, "


"다음분"


"네"


아주머니도, 합격하시길 바라요,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면접결과는 이틀 후에 공개되었던 것 같다.

내게 온 메시지는 합격 통보와 출근하게 될 주소였다.

합격, 한 거였다. 그렇다고 기쁘진 않았다.


출근하기 전날 나는 무너진 생활패턴을 복구하려 밤을 새웠고,

목적지까지 홀로 걸어보았다.

차가 많이 다니고, 위험한 길이였다.

집에서 1시간 거리였고,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삼아 걸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전 보다 더 좋은 일자리를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만날 사람들의 지혜를 배우고 싶었다.

삶을, 바람직하게 보내고 싶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지긋지긋한 심해 속에서 여기까지 몇 년이 흘렀을까,

이젠 제법 괜찮은 종이배가 되었지 않았는가,

머지않아 바라본 배가 곧 내가 될 수 있게,

멋있는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항해할 수 있게,

내게,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에게,

나를, 포기하지 않고 품어준 가족들에게,

내 손을 잡아 바른 길로 이끌어준 친구들에게,


빚을 지게 된 거니까,


이제, 하나하나 갚게 될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줘,


더 이상 나는 괴물 같은 심해어가 아니야,

물어뜯을 일도, 그 속에 존재할 일도 없어.

나는 ,


내 이름은, "유빈"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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