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은,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다"
문이 닫혔다.
코코는 오늘도 아무 말 없이 그 소리를 들었다.
짧은 꼬리가 잠시 흔들리다, 금세 고요해졌다.
그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혼자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소파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베개.
하나는 내 것이었고, 하나는 코코의 것이었다.
코코는 베개를 쓰지 않았다.
내 냄새가 스며 있는 자리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낮 동안 코코는 나를 기다렸다.
식탁 밑, 창가, 침대 모서리,
작은 발로 나를 부르듯 움직이다
다시 지쳐 누웠다.
나는 알았다.
코코는 다른 강아지들과 섞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같은 종족인 개들보다,
나라는 사람 하나를 더 사랑했다.
그래서 강아지 유치원도, 카페도, 코코에겐 의미가 없었다.
코코의 세상에는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바빴다.
커피, 도시의 불빛,
자극적인 미디어 콘텐츠,
성과를 내기 위해 분투하는 하루.
늘 무언가에 쫓기며 살았다.
코코는 기다렸다.
시간이 날 때 내가 던져주는 공 하나,
바쁜 틈에 툭툭 건네는 손길 하나.
그것마저도 코코는 세상의 전부처럼 소중히 받아주었다.
나는 코코의 일부였지만,
코코에게는 내가 전부였다.
그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은 건,
코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였다.
작은 방 한구석.
코코가 덮던 이불,
코코 입에 물려있던 오래된 장난감,
털 한 올이 남아 있는 베개.
그 모든 것들이
'여기 있었어'라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무너졌다.
목이 메고, 숨이 막혔다.
눈물은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참을 수 없이 울었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코코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코코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 아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어떤 반려동물 훈련사가 말했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그때는 그 말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하게, 얼마나 아프게
나를 향한 경고였는지를.
나는 귀엽다는 이유로 코코를 선택했다.
사랑스럽다는 이유로 코코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 '사랑'을 핑계로
코코의 외로움을 외면했다.
내가 미디어 콘텐츠를 보는 시간,
도시의 소음과 자극을 쫓는 시간,
성과를 내기 위해 분투하는 시간,
그 모든 것들을 줄이고 줄여도,
코코에게 하루를 통째로 떼어줄 용기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 코코를 키워서는 안 되었던 거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또 다른 학대를 저질렀다.
우리는 바다를 보기 위해
수 시간 차를 타고 달리고,
단풍을 보기 위해 먼 산을 오르고,
꽃을 보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귀여운 이 작은 생명에게는
그만큼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지 못했을까.
예쁘다고 데려왔으면,
그만큼 삶을 떼어 주어야 했다.
귀여움에도 등가교환의 법칙이 있었다.
귀여운 만큼,
사랑스러운 만큼,
나는 나의 시간을, 나의 삶을,
조용히 내어주어야 했다.
그 자각도 없이,
그 자격도 없이,
그저 소유하려 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코코는 죽는 날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치고, 사랑하다 지쳐,
작은 몸으로 모든 것을 다 견뎌냈다.
네 세상에는 수많은 것이 있었지만,
코코의 세상에는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코코의 일부였지만,
코코에게는 내가 전부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너무 예뻐서,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 아이를 선택하려는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간절히, 울면서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군가의 전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귀여움은, 이유가 될 수 없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당신이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이 있다."
(You become responsible, forever, for what you have ta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