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그들의 사랑,
얼마 전 방영됐던, "폭싹 속았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가 흔히 “확 씨 아저씨”라 부르던 인물이 떠올랐다.
알고 보면 그의 성은 ‘부 씨’였다.
그는 늘 화를 냈다.
말끝마다 버럭, 확, 그리고 “~씨!”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확 씨”라고 불렀다.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그랬다.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했으며, 화부터 냈고,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눈빛 하나 다정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위해 살아간 사람들이었다.
그 시대의 사랑은 그렇게 버럭거리며 피어났던 것이다.
그들은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랑을 받아본 적도, 어루만져진 기억도 없이 오직 “강해야 한다”는 말만 배우며 살아왔다.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약함은 죄였고, 감정은 사치였다.
그건 밀림에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에서도 생존의 법칙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산이라도 배를 채우고 나서야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늘 배고픈 시대를 살았다.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손길은 사치품처럼 멀리 있었다.
그리고 지금, 배고픈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나갔지만 이제는 ‘배 아픈 시대’가 되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것을 주려 애쓰다 보니 또다시 마음은 가난해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아버지들,
그들 또한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더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희생은 언제나 기대를 낳는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누군가는 알아주길.” 그런 마음.
그 희생을 알아주는 말 한마디가 내일을 바꾸진 않아도 오늘의 무게는 조금 덜어준다.
“누구 덕에 쌀밥 먹고사는데!” 확 씨의 대사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의 반어일지도 모른다.
‘확 씨’는 화를 낸 것이 아니라,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서툴고 삐뚤게 뱉어낸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갑자기 짜증을 내고,
큰소리로 말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무뚝뚝한 게 아니라, 그저 서툴 뿐이다.
사랑이란,
사실 그냥 순수한 감정 같지만 그 깊이는 다르다 노력하고 배워야만 하는 수업 같은 감정이다.
받아본 사람이, 주는 법을 안다.
그러니 오늘, 내 곁의 ‘확 씨’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당신이 화를 낼 때, 나는 오히려 당신이 외로워 보여요. 그 말, 사랑이라는 거 알아요.”
사랑은 꼭 “사랑해”라는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가 없다고 했던 것처럼 행동을 통해서 볼수도 있고 느낄 수 있다.
버럭 속에도, 확 하고 터지는 말속에도 서툰 마음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알아보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 세대의 몫이고 진정한 사랑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을 담고 있다고 한다.
사랑 표현을 몰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사랑은 사랑대로 받지 못했던 지금 현대의 아버지들 확~씨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결정이고 헌신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어도, 가족을 위해 평생 일한 것이 곧 그들의
‘사랑의 방식’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