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재난

정당해 보이는 듯한 자기 파괴 – 기억을 마취하는 사회에 대하여

by 루치올라

사람은 때때로,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세계를 산다.

견디기 위해 필요한 건, 때로 대화도 치료도 아닌

잠시 모든 것을 멈추게 해 줄, 한 잔의 술일지도 모른다.

현실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마음의 고통은 그저 ‘예민함’으로 취급되는 세상에서

많은 이들이 말없이, 술을 통해 하루를 넘긴다.

그건 방탕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고, 어쩌면 마지막 남은 위로다.



하지만, 그 위로가 너무 잦아질 때,

그 반복이 점점 더 무감각해질 때,

그제야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술이 나를 구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조금씩 나를 파괴하고 있었구나.

처음엔 달콤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괜찮은 위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악마의 유혹이었다.

괴로움 대신 무감각을 주었고,

치유 대신 망각을 선물했으며,

살게 해 준 척하면서, 서서히 나를 망가뜨렸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지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2022년, 암으로 사망한 사람은 8만 3천여 명.

같은 해, 알코올성 간질환 진단자 수는 12만 9천여 명.

알코올 사용장애 유병률은 12.2%에 달하고,

남성은 18.1%, 여성은 6.4%에 이른다.

음주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간경변, 간암, 자살, 우울증, 가정폭력…

그 뒤에 놓인 수많은 고통은

한 사람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까지, 조용히 무너져 간다.

술은 언제나, 주변까지 끌고 들어가는 고통을 동반한다.

이 사회는 그런 마취된 절망에 침묵한 얼굴이다.

비행기 사고나 교통사고는 일회성 재난이지만, 음주는 만성적 사회적 재난이다.



그리고 이 재난은, 아무도 급히 대피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위로인 양.

"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해 살고, 꿈속에서 죽는다는 말.

예전엔 단지 비유처럼 들렸던 이 네 글자가,

지금은 너무나 정확한 현실 묘사처럼 읽힌다.

술은 현실도피의 알리바이가 되고, 침묵한 절망의 언어가 된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를 천천히, 그러나 마치 정당하기라도 한 듯 파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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