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파괴의 아이러니, 무너지는 방식으로 버티는 삶
옛날 옛적,
모든 것을 다 허용해 주는 왕이 있었다.
사고 싶으면 사도 되고,
먹고 싶으면 먹고,
미운 사람은 미워해도 괜찮고,
화를 내고 싶으면 내도 되는,
그 어떤 절제도, 그 어떤 통제도 없는 나라였다.
그 왕은 통제하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진짜 너니까.”
사람들은 그 왕을 열렬히 따랐다.
“이보다 더 좋은 왕이 있을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게 해 주니까.
그가 다스리는 왕국은 매일 축제 같았고, 사람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말했다.
“우리 왕은 해방의 왕이다. 우릴 억누르지 않아.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 줘!”
모두가 즐거워했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곧 다가올 불행을 눈치채지 못한 채.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즐거움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처음엔 사소했다.
속이 더부룩하고, 잠이 잘 안 오고, 자꾸 피곤하고,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그러다 점점 심각해졌다.
머리는 무겁고, 심장은 뛰고, 위장은 아프고,
몸 이곳저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왕국 곳곳에서 시위가 터져 나왔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방임이다!” “우린 점점 망가지고 있다!” “이 나라엔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자 왕은 더 강하게 외쳤다.
“조용히 하라! 진통제를 주고, 더 큰 즐거움을 주어라!”
왕은 고통의 소리를 무시했고,
그저 달콤한 중독을 던져주며 입을 막았다.
사람들은 진통제에 의지하며 계속 살았다.
그러나 더 이상 속을 수 없었다.
몸이, 마음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가지 진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불행한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에, 그 통제력을 아주 작은 만족으로 대체했다.
해결되지 않는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에 마음을 쏟는다.
그것이 마치, 삶 전체를 내가 쥐고 있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작은 통제가 준 작은 위안은,
그저 위안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유일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작은 만족이 삶을 회복시키는 길이 아니라,
서서히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건 다정하고 조용한 파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은 더 이상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백성은 더 이상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 어리석은 왕은, 우리의 뇌 였다.
욕망을 진리로 착각하고,
쾌락을 자유로 믿어버린 우리 내면의 지배자.
그리고 병들어간 백성은,
그의 명령을 따르던 우리의 신체 기관들이었다.
간, 위, 심장, 폐, 장기 하나하나가
그 잘못된 명령에 조용히 고통받고 있었던 것이다.
왕은 멈추지 않았다.
더 큰 자극을, 더 짜릿한 보상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백성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고,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드러난 진실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통제받지 않는 자유 속에서
스스로를 서서히 파괴하고 있었다.
그것은 격렬한 전쟁이 아닌,
조용한 자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