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된 엿장수」

무라(無라)

by 루치올라

無라. 도지 삽니다


인간은 평생을 ‘나’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이름을 얻고, 직함을 걸고, 권위를 두르고,

명패 하나에 자신의 존재를 이식한다.

그러나 진짜 철학은 말한다.


“그 모든 것, 나라고 여긴 것은 사실 ‘없음’이어야 한다.”


무라(無라).

이 단 한 글자 안에는 온 인류 문명의 껍질을 벗겨낸 한 사람의 침묵의 서사가 담겨 있다.

그는 조선 최초의 엘리트 판사였다.

그가 내린 판결한 줄로 독립운동가 한 사람이 죽었다.

그날 이후, 그는 법복을 벗었다.

그리고 법보다 무거운 양심의 소리에 이끌려,

엿판 하나를 지고 참회의 순례길에 나섰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않았다.

이름도, 지위도,

어떤 말도 모두 내려놓고,

스스로를 완전히 해체하는 수행에 들어갔다.

그를 바라보던 노승이 물었다.

“행색은 엿장수인데, 마음은 아니지요?”

그 한마디에 그는 무너졌고,

그 자리에서 출가를 서원했다.

그가 바로 법정 스님의 스승, 효봉 선사다.

‘무(無)’의 화두 하나만 들고 다녔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무라 스님’이라 불렀다.

그는 아무것도 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존재가 되는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無를 역 행하는 자도 있다.

119에 전화를 걸어 “도지삽니다”를 외치며 관등성명을 요구한 어느 정치인.

긴급조차 권위 아래에 두고, “내가 누군지 몰라?”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에게 ‘나’란, 오직 도지사라는 명패 하나였다.

이것은 비단 한 정치인의 무지가 아니다.

이것은 오늘날 권위의 타락이며,

직함과 이름표를 자기 자신이라 믿는 어리석은 자들의 착각이다.

인문이 사라진 자리에 명패가 놓이고,

자아를 성찰하기보다 권위를 먼저 꺼낸다.

그리하여 결국,

자기 이름에만 집착하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자들이 공공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며, 사회 전체의 품격과 질서를 허문다.

효봉 선사는 엿판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는 "나"라고 하는 자기를 지우는

길 위에서, 참회와 침묵 속에서 새롭게 피어났다.

도지사는 권위 속에서 죽었다.

명패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조차 돌아보지 못한 채,

‘도지사’라는 명패 아래에서 소멸되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

철학은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그 질문 앞에서, 직함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진짜 이름은, 벗었을 때도 남는 것이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리석은 왕, 병든 백성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