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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Mar 23. 2023

대나무 같은 인생

대나무의 나눔과 비움의 생


    유년 시절 살던 집 주변에 대나무가 즐비했다. 마당을 둘러싼 대나무 숲이 울타리고 놀이터나 마찬가지다. 그런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대나무가 죽는 것은 보지 못했다. 대나무에 꽃이 핀 것을 본 적이 없다. 튼튼한 뿌리를 자랑하는 대나무도 죽는다. 꽃이 피고 나면 다음 해 죽는다. 대나무 꽃이 대나무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씨앗으로 다음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체는 많다. 그럼에도 죽을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그 열매로 세상을 이어가는 대나무의 생은 경탄스럽다. 


    나무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생명체다. 꽃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열매로 다른 생명체에게 사랑을 나누어 준다. 산소를 내뿜어 인간 세상을 살기 좋게 해 주니 무엇보다 고마운 존재다. 자신의 생명을 불살라 온기로 채워주기도 하고 목재로써 아름다운 가구나 도구로 변신하기도 한다. 살아 있을 때도 나이가 들어 생명을 다해도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생명체가 나무다. 나무가운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면서 특이한 나무가 대나무다. 우리와 친하면서 닮은 나무가 대나무가 아닐까 한다. 


   예부터 대나무는 예부터 활과 창을 만드는 무기로 쓰일 정도로 유용성이 특출한 나무다. 퉁소나 피리와 같은 관악기를 만들 때나 고급 장식용 가구를 만들 때도 대나무를 이용한다. 독성이 없고 인체에 무해한 재질의 특성은 돗자리나 부채, 젓가락과 숟가락, 이쑤시개까지 다양한 생활 도구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는 유일한 나무로 나무가 아니다. 벼과에 속하는 일 년생 풀에 불과하다. 나이테도 없이 해마다 생명을 연장하여 수십 년을 살 수 있는 특이한 나무가 대나무다. 


   고전이나 신화에서 영생불멸의 신을 상징하는 나무가 대나무이기도 하다. 사군자처럼 군자 칭송을 받을 만큼 인생과 닮은 나무가 대나무가 아닌가 싶다. 생명체로써 인생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생존을 위해 뿌리를 중시하고 뿌리에 기대며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 서로 모여 의지하면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생명력을 다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지키는 애절한 마음이 닮아 있다.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꽃을 피우고 그 열매로 가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고결한 본성 또한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불의나 부정에 타협하지 않고 정의로운 사람을 우러러보듯이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다. 죽음에 직면해 꽃을 피우기 전까지 언제나 푸른 대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다. 가뭄이나 냉해로 병들지 않으면 80~100년 동안 시들지 않고 성장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지혜로운 인생이라 할 수 없는 인간에게 나이테 없이 나눔과 비움의 지혜로 살아가는 대나무에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걱정과 욕망을 쫒는 존재로 사는 인간에게 스승과 같은 존재가 대나무가 아닌가 싶다.


   평균 수명으로 산다 해도 내 인생은 15년가량 남은 셈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적당히 운동도 했을 때 그러하다. 대나무도 가뭄이나 냉해는 견디지 못하고 꽃을 피워야만 한다. 사고나 위험으로 위협받는 인생도 다를 바 없다. 살아 있으니 생존을 축복으로 여기며 사는 덧없는 인생이다. 살아 있는 한 성장을 위해 활력 넘치는 대나무처럼 살면 그만이다. 가족 사랑을 나누며 오손도손 살다가 지치고 병들면 후회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대나무처럼 말이다. 텅 빈 마음으로 사는 대나무처럼 멋진 인생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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