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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Mar 15. 2023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에게


   오늘도 여느 날처럼 아침을 먹고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폈다. 그런데 아침에 먹고 나온 감자탕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나흘 동안 먹은 감자탕이었다. 한번 끓여 4일 동안 거르지 않고 먹었으니 물릴 만도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그 반대였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아내 말이 아쉽게 들릴 정도로 뒷 맛을 남기는 맛이었다. 만든 아내의 기분을 맞추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맛이 있었다. 뼈다귀에 구수한 된장을 풀고 신김치를 듬뿍 넣어 끓인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내가 먹어 본 최고의 감자탕이었다. 


   감자가 들어간다고 감자탕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돼지 등뼈 척수를 감자라 하여 감자탕이란다. 아내가 감자탕 요리 비법이라도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모양이다. 아내가 감자탕을 둘이 먹으려고 끓인 것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위와 아들이 주말에 들리면 혹시라도 같이 먹을 생각으로 준비한 감자탕이었다. 곰솥 한가득 감자를 넣어 잡내를 제거한 후 푸짐한 재료를 넣어 우려낸 감자탕이었던 것이다. 그런 아내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있기에 역대 최고의 진하고 구수한 감자탕이 탄생된 것이다. 


   감자탕을 먹는 내내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평소 이야깃거리라고 해야 주로 아이들 이야기지만 함께 못한 아쉬움을 서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가족 사랑으로 아는 부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사실 먹는 즐거움을 함께 나눌 때처럼 가족들이 흐뭇해하는 순간도 없다. 그런 순간을 나눌 기회가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니 허전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얼큰한 국물만 먹어도 땀을 뻘뻘 흘리는 아들 녀석이 먹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엄마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게다가 요즘 가족들이 긴장 상태라 할 수 있다. 아들 녀석은 임용 시험을 준비하느냐 바쁘고 딸은 출산을 2달 앞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을 참견하는 재미로 살다시피 하던 엄마가 요즘은 "별일 없지?"라는 말 한마디에 속마음을 숨기고 만다. 시시콜콜 잔소리조차 신경 쓰이지 않게 조심하는 모습이다. 자식 걱정을 자식 사랑으로 여기던 아내가 더 조마조마한 가 보다. 가정에서 아내는 늘 그랬다. 가족의 안위와 행복이 자기보다 우선으로 생각했다. 남편이나 아이들 삶을 먼저 챙기는 편이었다. 가족을 위해 가족 애착형 엄마로서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아이를 낳아 길러 본 엄마 마음은 똑같지 않을까. 마음 한편에 언제나 아이 편향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자녀가 성장을 해도 성공을 비는 마음으로 바뀔 뿐 애착에는 변함이 없다. 자식 사랑에 늘 목말라하면서 사는 게 엄마의 인생으로 안고 산다. 자식과 티격태격 다투고 화내며 원수처럼 굴다가도 돌아서면 그만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자식에 대한 무한 책임 사슬을 풀지 못한 한을 가족에게 위안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인생에서 참 사랑을 실천한 위대한 존재가 엄마인 것은 분명하다.


   얼마 후면 딸이 엄마가 된다. 비로소 엄마의 소중한 역할을 경험하게 된다. 어른의 호의를 권리처럼 알고 살다가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엄마의 손길에 달린 아이를 위해 살아야 한다. 두려움과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불어난 몸에 뒤뚱거리는 딸 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인다. 엄마가 되려고 고통을 견뎌내는 딸이 대견하고 안쓰럽다. 인격체로서 참사랑의 실체를 현실로 깨닫게 될 것이니 자랑스럽기도 하다. 딸아! 엄마가 되기 위해 용기로 진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참된 사랑의 소중한 가치를 누릴 수 있단다. 


   아들은 요즘 평소 즐기던 운동도 포기하고 PC방 출입도 그만두었다. 모의시험 성적이 최상위던 선배가 1차에서 떨어졌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잔뜩 긴장한 모양이다. 7개월 남은 시험이 벌써부터 긴장되고 불안한 모습이 염려스럽다. 아들아! 힘내거라. 최선을 다해 시험에 합격하면 다행이고 기쁜 일이다. 그러나 시험에 불합격된다고 네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아니다. 좌절된 욕망으로 사는 게 삶이다. 실패하면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재도전 기회로 삼으면 된다.


   예비 산모나 취준생만 불안을 느끼는 게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아픈 통증은 누구나 안고 살아가야 한다. 불편과 불만을 이겨내며 사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필요하듯이 좌절과 고통을 견뎌내는 지혜를 길러야 하는 까닭이다. 자신의 인생 목표와 방향을 정해놓은 삶이면 훌륭한 삶이고, 하루하루 일상의 위험과 위협에서 벗어나 노력하는 삶이 잘 사는 인생이다. 가족과 나의 생존을 위해 내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그랬던 것 같다. 괴롭고 두려웠던 순간들조차 그 속에 기쁨과 보람, 행복이 함께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회에서 소외되어 외로움을 느끼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어 나를 지켜주었다. 삶의 성패와 상관없이 항상 내 편이고 기댈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든든한 안식처가 아니었나 싶다. 언제나 기대고 의지할 안식처를 스스로 무너뜨리면 안 되는 이유다. 물이나 공기가 오염되면 서로의 생존이 불가능한 것처럼 가정 불안은 불행의 원인이다. 서로의 삶을 부정하여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고 만다. 등대가 사라진 바다에서 표류하는 고독한 인생이 스스로 자처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며 먹던 감자탕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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