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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Mar 04. 2023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군사 독재 시절이 생각나는 검찰 통치 시대 


   6~70년대 한국 사회는 군사 정권이 지배하던 때였다. 독선이 통하는 반민주 사회였다. 군사 무력을 정당한 통치 수단으로 이용한 16년 박정희 정권과 8년 전두환 정권이 그랬다. 생계가 불안한 시민들은 국가 폭력에 저항할 아무런 힘이 없었다. 먹고살기 힘든데 평등이나 인권 의식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재자에 맞서 싸우는 시민보다 권력에 순응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반민주 사회는 가부장제도가 뒷받침해 준다. 가장의 절대적 권위에 가족들은 도전은 엄두도 못 내고 복종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었다.


   80년대 거센 민주 항쟁 바람에 독재 정권이 사라졌다. 민주화 사회가 정착되나 싶었는데 국가 폭력이  고개 든 요즘 당혹스럽다. 군사 통치가 검찰 통치로 새롭게 바뀌어 등장한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해 국가 요직에 검사 출신이 대거 자리를 차지한 것이 그 증거이다. 헌법이 보장한 국가 폭력이 통치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하지 못할 게 없는 막강한 공권력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독재 정치다. 총칼 통치에 국민이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사법의 흉기에 시민들의 자유는 침해당하고 평등이나 인권은 침묵하기 마련이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민주 사회 질서가 위축되고 후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도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더 의아하다. 윤석열 정부가  검찰 통치 서막을 알리는 요란한 신호에도 함성 소리는 울리지 않는다. 검찰을 동원해 노골적인 정적 제거와 국회 탄압이 진행되고 있어도 방송과 언론은 시민들의 귀에 입을 단속하기에 바쁘다. 집권 세력 편에 선 자본과 언론이 한 배를 타고 있음을 말해주는 바다. 공격과 탄압으로 이미 고통을 통감한 MBC가 있질 않은가.


   이렇게 될 줄 까맣게 모르고 지지했던 유권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 뽑진 않았지만 민주 사회를 갈망하는 시민들은 또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할까. 부수고 없애는 일은 쉬워도 다시 세우려면 힘든 법이다. 검찰 독재에 공범자를 자초한 언론과 자본 세력이 새겨야 할 대목이 아닐까. 독재 권력에 세뇌되어 국 폭력의 방패막 역할을 해왔던 기성세대들이 가슴 깊이 새겨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주화 사회 이전의 참혹했던 시절로 상기해 봤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아가진 못해도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군사 독재에서 벗어난 지 30년 밖에 안 됐다. 25년 동안이나 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느라 수많은 민주 시민이 피와 눈물을 흘렸다. 민주화 항쟁에 희생된 애국 열사들의 열망이 헛되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이다. 검찰 독재가 휘두른 폭력에 민주 시민 사회가 파탄 나지 않을까 두려운 심정이다. 검찰 독재란 유권자를 대변하는 국회가 사법부 눈치를 살피느라 제구실을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검찰공권력으로 장악한 권력에 저항 못하고  아부로 기생하며 꼭두각시가 되는 사회를 말한다. 한국 사회 위기와 불안으로 긴장해야 하는 이유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처럼 법 앞에 평등은 이상에 불과하다. 양심이 증인이라면 누구나 유죄라는 말처럼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소유욕을 채우는 삶 자체가 죄의 본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법과 원칙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자의식 속에 욕망의 죄를 감추거나 억제하며 사는 격이다. 검찰의 캐비닛 속에는 성공과 성취뿐 아니라 비리와 비위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사법 독재가 마녀 사냥에 나선 다면 처벌과 비난에서 자유로울 사람조차 살아남지 못한다. 독재자의 무소불위 위력이다.


   정당한 국가 권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국가를 방위하고 국민의 안위를 지키는 군사권이나, 갈등과 충돌로 인한 사회 질서를 보존하는 사법권은 절대 필요하다. 국가 폭력을 권력 유지에 악용하는 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두려운 것이다. 자유 평등의 민주 질서가 붕괴되고 사회 분열과 혼란으로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 국정 리더가 검찰력을 동원해 의회 민주 정치를 부정하고 정적 제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위기로 느껴지는 것이다.


   다수의 지지와 신뢰가 정치의 바탕이자 목표다. 집권 1년이 안 돼 기대가 실망으로 변해 타도를 외치는 시민이 늘고 있다.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면 경악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안중에 들지 않는 리더의 모습을 보면서 가증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언론과 검찰을 민심을 잠재우는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은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무고한 가족들에게 화풀이하며 고함을 지르는 못난 가장 모습을 보는 것처럼 불쌍하고 처절한 마음마저 든다.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처럼 기대가 실망으로 변한 차이일 뿐이다. 절망으로 변한 희망을 포기하면 그만이다. 무능한 독재자나 가장에게 무기력하게 매도당하는 기분이 내키지 않더라도 참아내면 그만이다. 잘못된 선택도 선택은 선택이기 때문에 타협과 이해로 풀지 않고 공격을 일삼더라도 가장 역할은 철회할 수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슬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군사 독재자들의 말로가 그랬듯이 칼을 흔들었던 독재자가 칼로 단죄받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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