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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Jun 26. 2023

손주 사랑에 집착하는 까닭

할아버지의 육아 일기

    딸이 준 생일 선물이 오랜만에 도착했다. 지난해 65번째 생일에는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행운의 복권이다. 뜻밖의 선물에 놀라 설레며 긁어보니, '예비 할아버지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는 문구가 나왔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다리던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 딸이었다. 그런 딸이 아이를 가졌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는가. 즐거운 마음으로 축하하며 환영했던 선물이었다. 그 생일 선물의 주인공이었던 초록이가 드디어 세상에 태어났다.


    혼인도 출산도 힘들어진 세상이다. 노인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도 손주가 생길 확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 사회에서 할아버지 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없는 셈이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처럼 축복받은 사람이나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손주가 태어난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기도 눈치를 봐야 한다.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포기한 자녀를 둔 부모들이 주변에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손주가 생겨 즐거운 마음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라니!


    로또 당첨이 어디 쉬운 일인가. 불임과 난임으로 모험하는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많은가. 출산을 앞둔 태아가 거꾸로 섰다 바로 섰다를 반복한다는 말을 듣고 겁을 먹고 긴장을 해야 했다. 산모와 아이가 무사하길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정일이 되어 대학병원에 입원은 했어도 걱정은 태산이었다. 12시간 진통을 참아내며 자연분만을 기다리던 산모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아이와 산모를 위해 끝내 수술을 선택했다. 속은 타들어갔다. 수술이 무사하길 침묵으로 기다렸다.


    수술이 끝났다. 상처와 통증으로 고비를 넘긴 산모를 제외하면 성공적이었다. 산모도 아이도 무사한 것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탄생의 축복에 상처와 아픔은 필연이기 마련이다. 산달이 다가오면 아직도 몸이 아프다는 아내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에 으스대는 것처럼 삼 남매를 낳은 엄마라고 지금도 자화자찬하는 아내다. 인정받아 마땅한 엄마에 대한 처우가 아닐까 한다. 모두가 엄마 덕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손주를 낳은 딸이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까닭이다. 그런 딸에게 고마움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퇴원한 딸이 산후조리원에 갔다. 수술 후유증 치유까지 도와주는 시설이라니 안심은 됐다. 하지만 출산 비용이 만만찮은 현실이다. 2주 동안 조리원 비를 시어르신이 내주셨다 한다. 거액을 쾌척하신 사돈께 감사함을 전한다. 저출산 사회를 고민하기 전에 출산 정책부터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산모에게 냉수로 샤워시키고 샌드위치를 주는 스웨덴이지만 출산율은 높다. 출산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해석할 일은 아닌 듯하다. 고비용 저출산 한국 사회 정책 현실을 꼼꼼히 짚어 봐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부터 산후 가정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산후 가정에 돌봄 요원이 방문하여 세탁과 청소는 물론 음식까지 챙겨주는 서비스다. 기한이나 비용에 따라 차등이 있다 한다. 딸이 신청한 서비스는 10일간 표준에 해당되었다. 돌봄 요원에 방해될까 방문을 미루다 마지막 날 딸의 집을 찾았다. 손주와 첫 대면이 그렇게 떨릴 줄 몰랐다. 9년 전 스톡홀름에서 첫 손자를 낳았을 때나 3년 후 손녀를 봤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손자와 극적인 상봉 장면이 왜 그리 두근거리던지.


    나이를 더 먹은 만큼 손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커진 것 같다. 더 깊은 사랑의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게다가 '손주를 낳으면 육아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세월이 흘러 손주에 대한 애절함도 절실해진 것 같지만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크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갓 태어나 기특한  손자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감회와 걱정이 교차하며 지나쳤다. 지난번 손자 손녀 육아에 비해 육아 용품이 다양해지고 편해진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도 마음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첫 손자를 포대기에 엎고 활보하던 때가 생각난다. 뜻하지 않는 일로 대학생활을 잠시 접고 육아를 체험하던 시절이다. 상상 속에 그리던 귀한 첫 손주가 태어났으니 손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냥 즐겁고 행복하던 때였다. 할아버지 육아는 아빠 육아와는 차원이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자식 사랑에 진 빚을 손주 사랑에 갚는 느낌이 든다. 아낌없이 주고 싶은 소중한 손주들이다. 덧없는 인생을 살면서 느낀 회한의 감정을 혈육의 정에서 찾으려는 것은 아닐까. 손주에 대한 내리사랑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육아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도 없다. 김매는 일보다 어렵다는 육아가 아닌가. 따져보면 지극 정성의 전천후 노동이면서 한계 인내력과 인성을 시험하는 극한 직업이 육아라 할 수 있다. 심신을 바쳐 헌신을 다해도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일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자칫 한 눈 팔기라도 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일이 육아인 것이다. 그럼에도 손주를 돌보는 일에 적극적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적지 않다. 손주를 보기가 힘들다 하면서 손주 사랑에 남다른 애착을 지닌 사람들이다.


   손주 육아에서 삶의 가치와 보람이 새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잠재의식에 있던 종족 보존의 본능적인 욕구를 손주한테 찾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손주 사랑이 후반 인생의 활력처럼 느껴진다. 손주가 성장하는 모습에서 생동감이 느껴지고 사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오늘도 손자를 보러 세종에 다녀왔다. 지난주 눈도 맞추지 못하던 녀석이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안아주고 달래줘서 고맙다는 아이의 인사법이다. 그보다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참으로 뿌듯하고 벅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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