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네 텃밭

자연을 배우고 자라는 손자 이야기

by 최길성

어린 시절 농촌에 살았다. 청년 시절부터 농촌을 떠나면서 흙과도 멀어졌다. 화분에 조차 물 한번 주지 않는 각박한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농촌의 삶 속에는 자연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버겁게만 느껴졌던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남아있어서가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면 고향의 흙냄새를 그리워하고, 자연의 너그러운 품에 안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여유도 즐길 수 있고, 건강에 좋은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삶이 내겐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걸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포기했다.


농촌 생활을 떠올리면 텃밭을 가꾸는 한적한 전원생활이 연상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쌓여 있던 두엄 더미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 두엄 더미는 없어졌다. 거름 냄새를 거의 맡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 농사가 유기농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생테계가 그만큼 무너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작물은 가축의 배설물로 만든 거름이 없으면 안 된다. 토양의 곰팡이나 박테리아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두엄 냄새를 맡아했고 해충과 싸워야 했던 까닭이다.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면서 흙냄새를 싫어하고 멀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거스르면 수난을 당한다. 물난리를 겪지 않으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살아야 한다.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을 본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 개발을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못살게 굴고 있다. 순수한 양심을 거짓으로 더럽히듯 소중한 자연을 욕망의 도구로 함부로 대했던 게 사실이다.


이기적 욕망이 자연을 훼손하고 파괴해 온 걸 반성해야 한다. 자신이 먹는 물에 스스로 살충제를 뿌려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자연에 늘 감사한 마음 가짐으로 살면 어떨까. 손자가 다니는 '친구랑 어린이집'을 가보고 놀라고 감동을 받았던 까닭이기도 하다. 터전이라 부르는 그곳은 천연 자연 놀이터라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이 직접 토끼와 닭에 먹이를 주고, 텃밭에 잎채소나 열매 식물을 키우는 곳이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동식물과 함께 공동체 생활하는 모습이 놀이고 학습이었다.


흙장난으로 뒹구는 아이들은 꼬질꼬질하고 그을러 있다. 그럼에도 신나고 즐거워하는 표정이 정겨웠다. 부모들이 우선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인지 학습에 극성을 떠는 대신 자연 공동생활의 기회를 준다는 게 우선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남다른 부모들의 의지와 각성에 감히 감동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덕분에 손자도 터전에 다니면서 조금 달라졌다. 동물이나 식물에 관심이 많고 자연 친화력도 생겼다. 흙장난을 하는 공동체 생활에서 자연에 애착도 소중함도 배운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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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펭귄이나 판다를 좋아하던 녀석이다. 어느 날부터 강아지나 새를 보면 반가워 눈을 떼지 않는 습관이 있다. 얼마 전 동물원에 다녀온 후로는 사자에 꽂혀있다. 그중 밀림의 왕 아빠 사자를 무척 좋아한다. 사자 이야기 책만 읽어달라 하고 사자송만 들으려 한다. 그런 녀석이 며칠 째 터전에 못 나가고 있다. 열이 나고 기침이 나서다. 아이는 아프면서 성장하는 줄 알지만 막상 손자가 아플 땐 예외가 된다. 심란해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해열제를 먹고 열은 내렸어도 콧물이 멈추지 않는다.


따라버지 집에 가고 싶다고 집에 온 녀석이 기운이 없다. 먹는 것도 노는 것도 신통치 않다. 즐겨 먹고 좋아하던 과일마저 싫다고 거절한다. 뭐든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부드럽고 달큼한 쌀유과를 줬다. 몸 컨디션이 얼마나 안 좋은지 한번 베어 물고 내던진다. 그런 여석이 반석천에 데려가면 좋아하고, 텃밭에 데려가면 좋아한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곳에 돌멩이를 던지는 놀이에 재미를 느낀다. 텃밭에 자라는 식물에 물을 뿌리고 만지는 놀이에 신이 나있다.


텃밭을 함께 가꾸게 된 배경이다. 터전에서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꾸는 모습을 함께 해주고 싶어서다. 생전 흙을 만져본 일 없는 엄마 아빠다. 단지 내 텃밭에 아이와 고추와 가지, 당근과 딸기를 키운다. 구청이 운영하는 초록이네 텃밭도 시작했다. 주인 없는 텃밭이 아까워 나도 서툰 농부가 되고 말았다. 옥수수 18 포기와 고구마 순 35가지를 심었다. 7월쯤이 되면 손주들이 찰 옥수수를 맛있게 먹을 상상을 하면서 땀을 흘렸다. 두 돌 맞아 성장통을 앓는 녀석을 데리고 오늘도 물을 주고 왔다.


요즘 녀석이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배우고 있다. 열심히 배우고 싶을 땐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귀도 쫑긋 세운다. 말 배우는 재미에 한창이다. 말에서 ㅅ이나 ㅎ발음은 아직 어려워한다. 수박은 '부박'으로, 할아버지는 '따라버지'라 한다. 억양을 분명하고 절도 있게 하는 특징이 있다. ㅁ이나 ㅂ 발음을 얼버무리는 특징도 있다. 스스로 터득한 특이한 발성법이다. 녀석은 기분이 좋을 때 혼자 노래도 한다. 흥얼거리는 노랫말은 엄마 아빠만 알아들을 수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가장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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