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겁을 먹고 엄두를 못 내는 청춘을 위해

by 최길성

월요일 아침이면 보령에 간다. 주말에 집에 온 아들이 출근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출근을 도와주기에 앞서 바람을 쐬러 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휴게소에 들러 군것질을 먹는 재미와 숙소 앞 카페의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지 못한 낯선 여행의 추억도 쌓았다. 특히 천북 청보리밭은 잊을 수가 없다. 청춘 시절에 느꼈던 황홀한 풀 내음이 너무 좋아서다. 다음엔 대나무 섬으로 유명하다는 죽도에도 꼭 가고 싶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백수가 과분한 횡재를 얻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87Km 거리를 운전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잠도 푸~욱 자 둬야 하고 긴장도 해야 한다. 카페나 드나드는 백수라 하지만 하루를 포기해야 한다. 시간을 묶는 것은 무척 싫어한다. 일상의 자유를 억제하고 지배하니 짜증 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으로 스스로 다짐했던 일이다. 동행을 원치 않을 때까지 갈 생각이었다. 아직은 아들이 출근길 동행을 원하는 눈치다. 은근히 월요일 아침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멈출 날이 오겠지만 그때까진 아들과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아들은 내년이면 서른 살이다. 30년 가까이 동행한 인생 동지다. 30년 전에 비해 현실은 몰라보게 변해있다. 서로에게 아주 다른 삶을 강요함을 알 수 있다. 그 나이에 3살 아이를 키웠다. 그 딸은 커서 그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그 나이가 든 아들은 아직 결혼은 꿈도 안 꾼다. 아니, 못 꾸게 만든 현실이다. 삶은 풍요로워졌어도 격차는 그 이상으로 더 벌어졌다는 증거다. 결혼이나 출산조차 포기할 만큼 엄혹한 현실이 그렇다. 풍요와 안락을 누리는 만큼 강박해진 삶을 강요하고 있다.


보령으로 발령받아 첫인사를 갔다 온 날이다.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오피스텔에 옮겨 주고 오는 길이다. 아들을 외딴섬에 홀로 남겨놓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훈련소에 입소할 때도 그렇지 않았다. 매사 긍정적인 데다 활발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기대에 부풀어 설레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임용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할 것 같다'라고 실망으로 좌절하는 아들이었다. 부적응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기분이 더 상할까 말도 더할 수 없었다. 시간이 약으로 쓰일 거라는 생각밖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에서 아들과 출근길 동행을 시작하게 됐다. 낯설고 거부감에서 시작된 객지 생활에 안정을 바라는 마음에서다. 학창 시절이나 군시절 동료들과 친밀하게 지내던 녀석이다. 평소 관계와 정을 소중히 여기는 걸 보면 어려움이 없을 거라 믿는다. 특유의 어촌 정서가 마음에 거슬려도 소통을 잘해나가리라 믿는다. 불편한 선입견도 시간이 지나면 식기 마련이다. 낯설고 외진 곳에 혈혈단신 남겨졌다는 좌절감도, 자신의 존재를 짓누르던 강박감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없어지기 마련이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동안 여유가 생겼다. 취미생활 동료도 카풀 친구도 생겼다. 교내외 생활에 꽤나 익숙해져 신입의 테도 벗어난 모양새다. 덕분에 요즘은 마음 편히 출근길을 동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엔 별 관심이 없던 아들이 180도 달라진 게 가장 반가운 일이다. 이번 대선이 저출산 문제를 해소할 후보가 나와 당선되면 좋겠다는 아들이다. 차만 타면 잠을 자는 버릇이 대선에 신바람 난 모습이 정말 놀랍고 기뻐할 일이다. 내가 월요일 아침을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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