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로해 주고 지켜온 시
'삶'하면 먼저 떠오르는 시가 푸시킨 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말이 먼저 생각난다. 어릴 적부터 벽에 걸린 액자나 담벼락 낙서에 흔히 적혀 있던 글이다. 삶이 척박했던 시절이다. 푸시킨은 몰라도 그의 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철부지부터 노래처럼 따라 부른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서양시가 아닐까. 지금도 푸시킨은 우리 삶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사는 걸 왜 힘들어하고, 그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문을 외우는 것만 같다.
죽음이 두려워 종교에 의존하듯, 삶이 두려운 인생을 달래는 시다. 자기 뜻대로 살 수 없는 인생이다. 아픔과 상처를 필연적으로 겪는 까닭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원망이나 후회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삶에 보람도 쓸모도 없는 것처럼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두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시가 아닐까. 시를 음미하면 마음이 진정되고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덧없는 인생을 위안해주는 고마운 시다. 연약한 삶에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특효약 같은 시가 아닐까 한다.
어둡고 가난했던 6,70년대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신화를 굳게 믿던 시절이다. 중학교 사회 선생님이 칠판에 적은 '피 땀 눈물'이라는 세 단어가 아직도 생생하다. 생존에서 체념과 인내를 강조하던 때였다. 권위주의 지배 하에서 자유나 평등의 사고보다 희생과 노력을 가르치고 배운 셈이다. 가난과 어둠 속을 벗어나기 유일한 희망이고 수단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참고 순응하는 생존 질서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시절이었기에 푸시킨 시가 말하는 삶의 시가 더 가슴 깊이 와닿던 것이 아니었을까.
청춘 시절엔 시가 생존 수단이었다면, 미래가 현실이 된 현재는 외로움을 달래는 면역이라 하겠다. 생활신조처럼 여기던 시가 추억의 시로 변한 기분이다. 다정한 친구가 애잔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기운이 없고 힘은 없어 보이지만 불안도 걱정도 덜어낸 느낌이다. 시가 마치 오랜 경전처럼 은은한 향내가 풍기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살고 있다는 사실이 축복이고 행운임을 일깨워주는 시라서 즐겨 소환하게 된다. 의미도 가치로 잊고 이끌리듯 살아가는 자신에게 자아를 챙기라는 충언으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 시절 신화는 현실로 변했다. 암울했던 시절이 풍요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덧없는 인생에는 변함이 없다. 욕망이 손쉽게 해소할 순 있어도, 불안은 여전하다. 삶을 대체로 나아졌지만 불만과 걱정은 더해졌다. 연애나 결혼, 출산이나 노동 등 본능마저 포기하는 현실이 아닌가. 미래를 향한 의지와 노력에 매달려 살아온 탓이기도 하다. 자유나 평등의 소중한 가치를 외면해 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견디면 기쁨이 온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시가 철 지난 유행가처럼 들리는 까닭이 아닐까.
인생은 항해와도 같다. 순항을 원하지만 바다가 불허한다. 삶은 거친 풍랑을 피할 순 없다. 숱한 수난과 시련을 겪고 살아야 하는 까닭이다. 파도를 넘거나 잠잠해지길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삶 속에 늘 슬픔과 불안, 괴로움과 고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삶에 대처하는 최상책은 마음속 바다를 품는 것이 아닐까. 거친 파도나 풍랑도 두려워하지 않는 커다란 마음가짐으로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더 이상 바랄 것 없고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잘 사는 길이 아닐까 한다.
누구나 미지에서 왔다 미지로 떠난다. 아침에 태어나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아침이슬처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르는 가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예외 없는 공평한 존재다. 억울할 것 없는 공정한 삶이고 인생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에 애착과 의미를 찾고자 애쓰는 까닭이라 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행복했는지 삶을 실감하려 살아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멈출지 모르는 여정 중에 있기 때문이다. 하찮고 허전한 삶을 달래기 위해 시를 좋아하는 까닭이 아닐까.
38세의 짧은 인생을 마감한 푸시킨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넘었지만 시는 아직도 삶을 위로한다. 언제까지 삶 곁을 지킬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간 것들이 훗날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 푸시킨은 오늘도 삶에게 말한다. 욕망을 추구하느라 지지고 볶는 소리가 잘 사는 삶이고, 아웅다웅 부딪치고 사는 것이 소중히 아껴 잘 사는 인생이라고, 서로 살아있음을 크게 소리를 내어 웃고 울며 사는 모습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