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스스로를 의심해야 하는가.
나는 온라인에서 상담방송을 시작할 때,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담을 받으려는 이들은 10대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2017년 정도만 해도 진로 등 고민 상담은 10대가 많았고, 간혹 20대 대학생들이 방송에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코로나 발생이 후 조금 상황이 바뀌었다.
오히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이 방송에 들어와 자신의 상황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눈여겨볼 지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나이만 늘어났을 뿐 상담 내용은, 예전의 10대 20대 초반이 이야기하던 이야기와 동일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충분히 과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데도 '나는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생각과 함께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방송에 자주 들어오던 20대 남자가 있었다(편의상 A 씨로 하겠다). A는 항상 유쾌하고, 센스가 있었고 20대에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던 그런 청년이었다.
그렇게 유쾌하던 A가 어느 날 자신도 상담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내용은 이랬다.
'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게 맞을까요? 계속 이렇게 끈기 없이 살까 봐 두려워요'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일을 하면 정착을 하지 않고 계속 그만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적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의 과거 가정사까지 이야기하며, 이런 것들이 본인에게 영향을 미친것 같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몇 가지 물음을 던졌다.
나 : 일을 계속 그만두었다는데, 그럼 일을 그만둔 뒤 사회생활을 포기한 적 있나요?
A : 아니요. 퇴사 후 바로 직업을 구해서 쉰 적은 없습니다
나 : 일을 하시면서 동료들과 크게 문제가 있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A : 특별히 그런 적은 없습니다
나 : 일을 쉰 적도 없고, 그렇다고 직장에서 사람들과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지요? 지극히 정상적이고, 오히려 굉장히 성실하고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 같은데요? 본인의 호불호가 명확하고
대화를 지속할수록, A의 삶에 대해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장점만 보였을 뿐, 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마치 창과 방패 같았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 나는 장점을 A는 단점을 말하면서 말이다.
나 :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 게 뭐가 문제지요?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삶을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A : 세상 사는 게, 싫어도 버티고 끈기 있게 해야 하잖아요. 저는 너무 끈기가 없는 것 아닐까요?
나 : 왜 끈기가 없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것 보니 삶이 끈기 그 자체인 것 같은데.
A : 하지만 저는 제 또래 중에 이렇게 많이 직장을 옮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나 : 저 역시 A 씨처럼 본인에게 잘 맞는 게 무엇인지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보통 좌절을 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요.
이런 식의 대화가 이루어졌고, A가 결정타를 날렸다.
A : 사실 제가 대형면허도 따 두었어요. 나중에 최후의 보루로 버스기사를 할 생각으로요.
나 : 아니, 그 나이에 그렇게 준비를 많이 했어요? 대단한데... 그럼 더 걱정할 게 없겠는데??
A : 아니 뭐, 면허야 누구나 다 딸 수 있지요.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게, 저는 버스기사가 최후의 보루인데, 그것마저 그만두게 될까 봐 두려워요.
나 : 걱정할 것 없어요. 오히려 버스기사를 하셨으면 잘하셨을 거예요. 본인이 관심이 있어 자격을 취득했으니, 그리고 만약 그만두어도 뭐가 문제예요? 나는 전혀 걱정이 안 되는데요? A 씨는 결국 또 다른 길을 찾고 있을 테니.
A : 그렇게 될까요.
모든 워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 A는 조금은 자신감을 얻은 체 대화가 종료되었다. 물론 자신에 대한 의심을 다 지우진 못했지만 말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대략 4년이 지난 지금 A는 마을버스기사 경력을 거쳐 시내버스기사로 일을 하고 있다. 아주 열심히 그리고 잘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방송에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나는 이 A 씨의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생각한다.
모든 삶에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들이 있다. 심지어 A 씨의 상황은 객관적으로 봐도 긍정적인 요소들이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A 씨는 자신의 부정적인 요소만 보면서 삶의 괴로운 방향에 집중하려 했다. 물론 A 씨는 자신의 삶에서 긍정적인 방향도 알고는 있었다. 허나 부정적인 방향에 집중을 하다 보니 그 긍정적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을 뿐.
우리 사회는 참 사람을 힘들게 한다. 객관적인 지표까지 어려운 상황에서 과업을 하나씩 이루어야 하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이 사회적 인식은 더욱 큰 아픔을 준다.
세상이 성공하는 길을 안내하기보다(심지어 그 성공의 기준이 너무 편협하기까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청년들이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본인의 부정적인 모습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키우며 본인의 긍정적인 모습에 집중하지 않을까?
그럼 적어도 본인이 잘하고 있는 청년들은 불안에 떠는 삶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현실을 논하는 사람들이 많다. 되묻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현실이란 것이, 열명 중 아홉은 무조건 괴롭고, 나머지 한 명마저 무조건 행복할 수는 없는 삶이라는 걸 아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