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담 관련 공부 중 이론의 비중이 현저히 작은 이유
내 방송에 들어온 사람들 중 실제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실제 상담을 받아 본 경험이 있고, 당연히 그 상담에 실망감을 느낀 사람들이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비슷하게 하는 말들이 있다.
'그냥 책을 읽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 말을 듣자마자 그것이 무슨 뜻 인지를 알 수 있어서 참 미묘한 감정이 들곤 한다. 그리고 우선 나는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상담을 받는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런 상황에서 용기 내서 상담을 받았을 텐데 처음 경험이 그렇다니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상담에 거부감이 들었을 것 같아요. (중략) 세상에는 다양한 상담자가 있어요. 그중 나에게 맞는 상담자가 있을 수 있고, 맞지 않는 상담자가 있을 수도 있을 거예요. 다음에 혹시 상담을 받을 기회가 있는데 이전 경험처럼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냥 상담을 피하기보다는 상담자를 바꿔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분명 oo님에게 잘 맞는 상담자를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는 상담을 하는 것에 대한 '면허'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상담자라는 직업을 갖기까지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과 '시간'이 충분히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상담자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제도는 우리나라에 다양한(?) 상담자를 배출하게 되는데 크게 일조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상담자들이 다양한 내담자들을 만난다.
내가 보기에 '저렇게 상담을 한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상담자들이 있고, 나 역시 누군가의 눈에는 '저렇게 상담을 한다고?'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상담자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 아주 지극히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글임을 우선 밝힌다. 또한, 이 매거진 초반에 작성했던 '내가 상담에서 이론을 등한시(?)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변론을 하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상담 관련에서 '이론'을 공부하는 비중이 아주 극히 드물다. 솔직히 '아예 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이론 관련 문서와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지 않을 뿐 내가 개인적 시간을 투자해서 이론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상담을 위한 공부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 하는 데에는 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했고, 그래서 나는 상담을 위해 이론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개인적으로) '사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느냐? 단순하다. 상담은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담이론 보다 나를 찾아오는 또는 찾아오게 될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직업적으로만 봐도 엄청 다양한 직군이 존재하고, 이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세상은 각자 다르다.
이렇게 물질적인(?) 사람의 경우의 수가 많은 것처럼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의 경우의 수'또한 굉장히 많다.
나는 상담자가 내담자를 만남에 있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생각(판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이게를 왜 못하지?', '답답하네' , '왜 저렇게 살지?' 등 내 기준에서 내담자를 파악하려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게 되면 상담자는 내담자를 '과잉교정'하려 들 수 있고, 그 '교정'이 옳은 일 일지라도 내담자는 굉장한 거부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 상담은 완전히 '실패'한 상담이 된다. 상담자가 아무리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고, 훌륭한 설계를 할 수 있고, 내담자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으면 무엇을 하는가? 그 내담자가 상담자를 신뢰하지 않는데.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끔 '와... 내가 만나는 내담자 진짜 이상해'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상담자들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상담자들도 둘로 나뉜다. '정말 내담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아쉬움을 표한하는 상담자'와 '그저 자신이 기술을 뽐내고 싶은데 그게 통하지 않은 내담자가 마음에 들지 않은 상담자'로 말이다.
나는 상담을 할 때 내담자에게 다음 주에는 기록할 수 있는 팬과 노트를 준비해 오기를 요청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팬과 노트를 가져오는 것이 어려운가?'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팬과 노트를 준비해 오지 않는 내담자들의 비중이 꾀나 된다(특히 비자발적인 내담자일수록). 나는 이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지적하려 들지 않는다. 실제로 누군가의 물리적 심리적 강요에 의해 무엇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내 것'이 되기보다는 '심리적 저항감'을 무의식에 심어주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며 내담자에게 오히려 '네가 당신에게 요청한 것들에 대해 당신이 행하지 않더라도 나는 당신은 혼(?) 내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한다.
단순히 기록할 수 있는 '팬과 노트'를 가져오기를 요청할 뿐인데 무려 두 달(8회기)이 지나서야 이를 수행하는 내담자들도 있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팬가 노트'를 가져오기를 기다려주고 지지할 뿐이다. 그리고 처음 노트와 팬을 가져오기까지가 어려울 뿐, 그 이후로 내담자들은 '노트와 팬'을 잊지 않고 가져온다. 노트와 팬을 가져왔다고 해서 다른 과제들도 바로 수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또한 같은 스타일로 그저 기다려주고 지지한다. 물론 방법 또한 알려준다. 그러면 역시 비슷한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내 방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답답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전문가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위의 내담자는 삶에 있어 굉장히 오랜만에(처음일 수도) 온전한 지지를 경험했을 것이며, 그 지지를 바탕으로 타인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무엇인가를 수행했다는 성공경험을 체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눈에 띄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은 내담자의 앞으로 삶에 있어 굉장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노트와 팬 조차 '안'가져오는 내담자가 아니라 다양한 심신의 이유로 '못'가져오는 것 일 수도 있다. 3일 동안 씻지 않고 집에 있다가 다음날 친구들과 약속이 생겨 밖에 나가야 하면 떡진 머리를 감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인데 이것을 진짜로 '모르는'내담자들도 있다. 이 외에도 세상에 정말 다양한 내담자들이 존재한다. 물론 이 다양한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고 다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상담자가 내담자를 만났을 때는 이해하고 존중하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정답제시도 물론 중요하다(그 조차 정보를 모를 수 있으니).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정보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라포(관계) 형성을 하고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라는 생각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다양한 사람들 접하면 더 좋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어야, 무조건적인 보여주기식 '아 그랬구나'가 아니라, 상담자로서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담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기본 지식이 있어야만 '상상력'과 '창의력'이 개발될 수 있다.
상담자에게 그 기본지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 기본지식이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아주 긴 글을 썼지만 내가 이론 공부보다 사람공부를 하려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상담 관련 대부분의 이론에서 조차 상담 있어 그 시작은 '라포형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왜 '라포형성'이 제일 먼저 인지에 고민을 했고, 이 '라포형성'의 중요성을 안 뒤부터는 이를 위해노력을 하고 있다.-
정도로 정리하며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