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조언 사이 그 어딘가.
상담방송을 하면서 역시나 빠질 수 없는 주제는 젊은 세대들의 '진로고민'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부모의 반대이다.
여자 고등학생이었던 한 친구는 정확히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아버지)의 미래에 대한 강요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특히나 자신이 그림에 관심이 있어 틈틈이 그려둔 그림을 아버지가 찢었을 때 느꼈던 그 슬픔을, 왠지 익숙하듯이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여중생이었던 한 친구는 자신이 노래를 하고 싶다는 명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술고등학교를 희망하는데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며 괴로워했다.
이러한 경우는 솔직히 '진로'상담이란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비단 이번 경우가 아니라 이들의 삶에 있어서 부모에 의해 상처받은 경험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항상 우선적으로 이들이 받았을 상처들에 대해 진심 어린 위로를 한다. 그리고 부모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짚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꼭 잊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부모님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을 것임을 (예를 들어 부모들도 부모들에게 사랑을 온전하게 받지 못해서 주는 사랑에 익숙지 않다), 그리고 분명 부모님들이 본인에게 준 사랑이 있을 것임을.
그 후 진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들을 나열하듯이 이야기해 준다. 진로 그 자체보다 더 본질적인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 뒤이기에, 이러한 나열식 정보가 오히려 명확한 컨설팅 보다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두 번째는 어쩔 수 없는 물리적 상황들이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10대 후반 남자청소년이 있었다. 이 친구는 격투기를 접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큰 부상을 겪었고 더 이상 격투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너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어설픈 위로는 크게 의미가 없을 수 있기에, 이 친구가 잊고 있던 성공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다. 이 친구는 자신을 일어나게 해준 격투기를 할 수 없어서 좌절감에 빠져있지만, 오히려 격투기를 통해 일어났던 것처럼 분명히 또 일어날 수 있음을 이야기해 준다. 물론 이 친구에게 당장 무슨 말이 귀에 들어오겠는가, 그래도 끊임없이 이야기해 준다. '사실'에 기반한 이 친구의 성공경험을, 그리고 오히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활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임을.
셋째로, '자신이 무엇을 할지 못하는 막연함'
고등학교를 다니는 남학생이었다. 평소에 웃으면서 방송을 듣고 소통하다가 어느 날 이야기 한다.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내가 할 것을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왜냐 하면 우리나라는 '일단 그냥 해', '성적이 나오면 그때 선택하면 돼'가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구들에게는 말해준다. '삶에 어떤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 어떤 것을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지부터 차분히 고민해서 본인의 가치관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지만 당장에 티 나지 않고 성적과도 관련 없기에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크게 세 가지 예시를 들었지만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건 충고와 조언이 아닐 것이다.
'당장의 위로', '삶에 있어 이러한 상황이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는 객관적 설명', 그리고 '또다시 고민이 있을 때 언제든 찾아오라는 작은 안정감'.
이 세 가지가 오히려 필요한 이야기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한다.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던 친구들이 종종 다시 방송에 들어온다.
오히려 아버지의 뜻과 얼추 비슷하게 대학전공을 선택하고 현실적인 시각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대학생이 된 친구도 있고,
예술고는 포기했지만, 일반고에서 실용음악을 준비했고, 지금은 실용음악보다 미디어 관련 전공을 희망하는 고등학생이 된 친구도 있다.
아직도 격투기를 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며 같은 이야기를 하는 친구도 있고,
햇살에 타들어가는 지렁이를 흙으로 옮겨주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고, 이와 함께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남학생은 지금 간호대에 다니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언젠가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또 생기고 이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혹시나 나를 또 찾아온다면 언제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