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하는 아빠는 육아휴직 중(339일) - 59
육아휴직 기간 동안은 육아 관련 경험을 최대한 하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어린이집에 관심이 많았고, 학부모운영위원회를 하게 되었다.
학부모운영위원회를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한 생각은 단 하나였다.
'운영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자'
공공성을 가지는 기관들은 법적 또는 제도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운영위원회'를 운영하게 되어 있다. 나 역시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다수의 운영위원회를 담당한 적이 있었고, 그때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이유 막론하고 우리의 일에 군말 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첫 회의에 참여했을 때 역시나 공공기관 특유의 민간조직 회의 느낌이 났다. 학부모운영위원회의 역할은 소개함과 동시에, '복잡한 것은 저희가 다 할 테니 걱정 마세요.'라는 뉘앙스를 끊임없이 풍겼다. 솔직히 회의자료들(특히 예산)을 보고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궁금한 것들은 내가 따로 물어볼 수 있지만, 회의 중 질문을 하면 그들이 준비한 흐름이 끈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들의 역할은 명확했다. 규정에 의한 역할이 있었지만, 기관에서 원하는 역할은 플러스알파였고, 솔직히 말해 규정에 의한 역할보다 알파의 역할을 해주길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알파는 바로 '어린이집 행사 지원'
나는 애초에 웬만하면 어린이집 행사에 참여할 생각이었고, 운영하는 기관 입장에서 도움 주는 학부모들에게 원하는 기대치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앞으로있을 행사지원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 첫 행사가 '어린이날 행사'였고, 행사에 대한 가정통신문이 집으로 왔다. 요는 행사가 오후에 진행되기 때문에 행사장에서 현장 하원을 한다는 안내였고, 보호자의 행사불참으로 현장하원이 어려울 경우 연장반에서 보육을 한다는 것이었다.
현장하원과 연장보육 중 선택을 하게 되어 있었고, 나는 연장보육을 선택했다. 이유는 행사지원을 하게 되면 당연히 뒷정리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사 전 날이 되었고, 갑작스레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 담임: 숲이 아버님! 당일에 연장반 보육을 하는 0세 반은 숲이 뿐이어서요! 행사에 참여하시는 걸로 아는데 혹시 이유가 있으실까요?
나 : 아, 저 행사지원을 나가서 뒷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어린이집 담임 : 그러셨군요! 마음만으로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뒷정리는 저희가 하면 됩니다. 혹시나 숲이가 연장반에서 힘들어 할 수도 있으니 현장하원 하시는 게 어떠실까요!
나 :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어린이집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주임 선생님이었다.
어린이집 주임 : 숲이 아버님, 담임선생님께 상황을 전달받았습니다. 뒷정리를 함께 해주시려 하셨었다고요. 그런데 담임선생님께서 안도와 주셔도 괜찮다고 했다고...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도움을 요청드려도 될까요?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나 : 그렇게 하겠습니다.
실제로 어린이집에서 행사지원 학부모에 대한 안내를 할 때, 행사 부스운영까지만 안내를 하고 뒷정리에 대한 안내는 없었던걸 보면, 처음에는 뒤정리는 어린이집 구성원으로만 할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행사 당일이 되었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에어바운스를 활용한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부스처럼 설치되어 있었고, 아이들이 돌아가며 체험을 하는 식이었다.
나 역시 하나의 부스를 맡았다.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선생님이 해줄게'라는 말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닌데?'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때마다 '아니 아저씨가!'로 급하게 정정을 해야 했다.
본 행사지원은 숲이가 아빠를 알아보고 '왜 나를 봤는데 안 안아줘요!'라는 원망의 표정으로 몇 번 울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잘 마무리했다(그때마다 숲이를 저 멀리 데리고 가 달래주신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그리고 뒷정리를 함께 한다는 내 발언에 용기를 얻으셨는지, 어린이집 측에서 학부모님들께 조심스레 뒷정리를 도와주시길 요청드렸고,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함께 마무리를 했다.
도의적으로도 함께 시작한 행사는 마무리까지 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전략적으로도 행사지원을 하며 이미 고생을 했는데, 마무리까지 함께 하며 '확실히 도움을 받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더 좋은 방향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행동의 결과는 아주 분에 넘치는 감사인사를 계속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집에 오는 길에
'내가 열심히 참여하면 어린이집에서 아무래도 우리 숲이에게 더 신경 써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다. 분명 그런걸 바라고 했던 행위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은 진짜 부모가 되어야만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육아휴직 동안에는 어린이집 행사에 모두 참여할 생각이다, 그때마다 얼마나 새로운 것을 느낄지,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게 금방 또 적응을 하게 될지 그 결과가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