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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거 Sep 19. 2024

상담하는 아빠는 육아휴직 중 - 24

숲이의 방이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청약에 당첨되고 입주를 기다리고 있던 시점에서 숲이가 생겼다. 그때부터 우리는 집을 어떻게 꾸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일 큰 방을 서재 겸 옷방으로 하고! 제일 끝방을 우리 침실! 그리고 침실바로 옆방을 숲이방으로 하자!'

가벼운 논의 끝에 위와 같이 큰 틀만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사할 즈음, 우리 가족에게 큰일이 생겼다. 초창기 글에 밝혔던 것처럼 조기진통 문제로 와이프가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와이프는 입원 중이고 나는 병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직장까지 다니고 있었기에 이사준비가 쉽지만은 않았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이기에 이것저것 할 것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삿날에는 다행히 와이프가 잠시 퇴원을 한 상태였지만(훗날 2차 입원을 한다), 여전히 우리는 짐을 정리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정리하지 못한 짐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숲이방에 몰아넣었고, 숲이방은 그렇게 창고가 되었다.

 다행히 숲이가 건강히 태어나고 우리 세 가족이 이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숲이방은 창고였다. 신생아 시절은 모든 시간을 함께했기에 굳이 숲이방을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솔직히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면서도 와이프는 '숲이방이 창고로 있으면서 먼지 쌓여있는 게 싫어'라고 자주 이야기했고, 나는 '어차피 숲이는 계속 우리랑 생활해야 해, 차라리 숲이방을 창고로 두고 나머지 공간을 살리는 게 좋은 선택이야'라고 이야기를 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현상유지를 하며 꾀나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50일 즈음되었을 때부터, 사태가 심각(?)해짐을 느꼈다. 숲이는 우리 부부의 침실에 이동형 침대를 두고 함께 자고 있었다. 분명 그 침대의 설명서에는 첫돌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고 보통 못써도 5개월까지는 사용한다는 후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숲이의 성장속도가 너무 빨랐다. 이미 침대에서 눈뜬 숲이는 침대의 저 아래에 거의 구겨지듯 불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달 이상은 못 버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때부터 우리 부부는 대책을 세워야 했다.

 우리는 침실에 슈퍼싱글과 퀸사이즈 침대를 두 개 붙여 쓰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가 쓸 수 있는 보조침대를 설치하기에는 공간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침대에서 숲이와 같이 자기에는 안전이 보장 되지를 않았다. 결국 답은 숲이방을 빨리 정리하는 것이었다.

 김제 부모님이 방문하셨을 때 우선 숲이방의 큰 짐들을 다 정리했고, 일단 숲이의 물건들만 정리해 두었다. 그때부터 숲이방을 어떻게 세팅할지에 대해 논의가 오갔다.

 우선 숲이의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장들을 주문해서 설치했다. 여기까지는 이견이 없었으나 숲이의 잠 공간에 이견이 생겼다,

'범퍼침대는 어차피 아이가 조금만 크면 바꿔 줘야 한대! 애초에 침대를 들이고 안전바를 설치하자'가 와이프의 의견이었고, 

'안전 때문에 범퍼침대를 사용 못하는 거면, 낙상위험이 있는 침대는 더 위험한 거 아니야?'가 저 의견에 대한 답이었다.

그래서 결국 침대 없이 토퍼만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분리수면은 위험할 수 있기에, 숲이방에서 한 명은 함께 자야 한다는 의견에 우리가 사용할 토퍼를 추가로 주문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나란히 잘 때 어른이 아이에게 침범하면 위험할 수 있기에, 숲이의 자리에 안전바까지 설치를 했다. 그리고 숲이를 상징하는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더해져 숲이의 첫 방이 완성되었다.

 숲이방이 완성되고 숲이가 잠을 자는 첫날! 우리 부부 역시 그 옆에서 함께 잠을 청했다(넓지는 않은 공간이기에 와이프는 중간에 원래침실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 방식으로 함께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 내 방이 처음 생겼을 때의 '아지트'같은 느낌이 들어 이 공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와이프는 예전 고향집 자기 방과 구조가 비슷하다며 정감이 간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숲이 역시 다행히 새 잠자리에 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잘 자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잘 보내고, 아침에 깨어난 숲이의 모습을 보니 자면서 많이 움직였는지, 처음 잠이 들었던 형태에서 90도나 틀어져 있었다. 그동안 이동형 침대가 얼마나 작고 불편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방을 만들어주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숲이방은 우리에게 '쉼'의 공간이다. 아이와 낮잠을 잘 때도 함께 방으로 오고, 우리 부부 중 한 명이 쉼을 청할 때도 숲이방에서 휴식을 청한다. 그리고 양가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안방을 내어 드리고 우리는 숲이방에서 오밀조밀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아이를 잘 자립시키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부모를 떠나 독립된 개체로 잘 살 수 있게 준비시키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어찌 보면 숲이에게 방이 생긴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그 시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렇게 이쁘고 소중한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를 잘 떠나서 잘 지낼 수 있기 위한 과정이라니, 왜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본인들의 소유물로 생각을 하게 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될수록 오히려 자녀와 사이는 멀어지게 되고, 자녀 역시 부모와 몸은 멀어지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부모에 대한 마음의 결핍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막 100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조금씩 강경한 의사표현이 생기는 숲이를 보면서 이제 숲이가 표현하는 이야기들이 우리 가족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숲이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주는 내 모습을 슬프지만 멈춰야 할 것 같다. 

 양육에 있어서 훈육은 하되 체벌은 하지 않고 자유를 주되 방임은 하지 않는 그런 부모가 되어서, 숲이가 부모와 몸이 떨어지더라도 항상 마음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항시 애쓰고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이런 마음이 잘 지켜지는지 역시 글로 잘 기록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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