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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거 Sep 27. 2024

상담하는 아빠는 육아휴직 중 - 27

숲이 118일, 잠은 더 이상 재우는 게 아니다

'오빠 나 이제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와이프가 파업선언을 했다. 파업분야는 '숲이의 낮잠 재우기'이다.

 숲이는 110일 차에 키는 65센티를 훌쩍 넘겼고, 몸무게는 9.5킬로를 돌파했다. 이미 할머니들은 숲이 안는 것을 포기했고 할아버지들도 숲이를 장시간 안는 것은 난색을 표했다. 

 앞선 백일의 기록에 작성했지만, 우리는 따로 숲이의 수면교육을 시키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숲이의 수면상황을 이야기하자면 '밤잠은 누워서 잘 자지만, 낮잠은 우리 품에 안겨서 자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선상태에서 숲이가 눕혀진 형태로 안아야 숲이가 잠에 들었다. 이런 상황이 더 이상 유지되어서 안됨을 와이프가 이야기한 것이다.

 나와 와이프(실제 내 주장이 조금 더 강했다)가 수면교육을 따로 시키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어차피 때되면 누워서 잘 잘 것이다. 실제로 밤에는 누워서 잘자지 않는가?

2. 낮에는 안겨 있고 싶어서 그럴 수 있다. 안겨있고 싶은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숲이에게 더 좋을 것이다.

 실제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우선 나는 숲이를 안는 것이 크게 힘들지 않았고, 내가  숲이의 잠 대부분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숲이가 너무 잘 자란다. 와이프는 이미 도수치료를 받고 있고, 나 역시 숲이가 계속 자라고 자라서도 누워서 자는 것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숲이 누워서 재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팔베개를 한채 누워서 재우기를 시도했다. 이유는 숲이가 잠이든 상태에서 내려놓으면 잠에서 깨지만, 팔베개를 하면 깨지 않고 잠을 찼기 때문이다.

 내가 치과에 간 사이에 와이프가 시도를 했고 결과는 '너무 쉽게 성공'이었다. 숲이가 조금 투정을 부렸지만, 한 시간가량 잠을 잤다는 것이다. 우리는 '역시 숲이는 준비되어 있구나'라고 기뻐했고, 다음 낮잠타임에는 내가 동일한 방법을 시도했다. 역시나 대성공, 심지어 잠이 든 상태에서 팔을 빼니 혼자서 꾀나 긴 시간을 누워서 잤다. 우리는 이렇게 누워서 재우기 프로젝트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낮잠 타임부터 조금씩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팔베개를 시도하는 순간 숲이가 격렬히 울기시작한다. '또 잠투정이군'이런 생각에 무시했으나 꾀나 오랜 시간 울음이 지속되었고, 결국 숲이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하지만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숲이를 안아서 달래고, 다시 팔베개를 하고 이과정을 반복해서 숲이를 재웠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낮잠타임에서 또다시 숲이의 격렬한 울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제야 너무나도 당연한 물음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은 잠투정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자기 싫어서 우는 건 아닐까?'라고 말이다. 동시에 우리가 잠을 재웠던 방식을 되돌아봤다.

 보통 숲이가 손이 뜨거워지고 하품을 하거나, 세워서 안았을 때 얼굴을 우리 어깨에 비비면 졸린 신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호를 받으면 우리는 숲이를 눕혀서 안은채 재우는 자세를 취했고, 숲이는 가만히 잠에 들거나, 잠투정 후 잠에 들었다. 그런데, 잠투정이 과한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졸리면 자면 되지 왜 이렇게 투정이 심하지? 이렇게 잠 못 들면 우리도 힘들고 숲이도 힘들 텐데'라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과한 투정에도 결국 숲이가 잠들기는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숲이가 잠투정을 안 부릴 때가 진짜 졸린 건 아닐까?'라고 가정을 세우고 '숲이가  재우는 자세를 취해도 투정을 부리지 않을 때만 재우자'란 각오로 숲이를 관찰했다.

 그제야 숲이의 행동들이 새롭게 보인다. 동시에 우리의 생각도 바꾸어봤다. 물론 숲이가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 이 역시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품을 하는 건 졸린 걸 수도 있지만, 잠에서 깬 걸 수도 있다, 실제 우리도 잠에서 깬 다음에도 하품을 하지 않는가?'

 '졸린 기분이 드는 건 맞지만, 자고 싶은 건 아니다. 우리도 졸린 상태의 나른한 기분을 즐기기도 하지 않는가?'

 

 숲이는 변한 게 없지만 우리가 변하니 달라지기 시작했다. 숲이가 주는 신호를 우리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잠을 재우려 시도할 때 투정을 심하게 부리면 억지로 재우지 않고 함께 놀아줬다. 세워서 안아줄 때 눈과 얼굴을 비벼도 억지로 재우려 하지 않고 함께 장난을 치며 놀아 봤다. '아뿔싸!' 놀아주니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진짜 졸릴 때 옹알이가 많아지면서 잠을 요청한다.

그때 잠을 재우니 투정 없이 바로잠에 든다. 그것도 꾀나 깊게,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오늘 밤잠은 아예 팔베개도 해주지 않았다. 와이프가 옆에 누워서 지켜만 보니 스스로 잠에 들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이 무엇인 줄 아는가? '잠들기 전에 옹알이를 한다', '밤잠은 누워서 스스로 시도한다'는 예전에 관찰을 했었고 심지어 내가 이 육아시리즈에 글로도 기록을 해 놨다는 것이다. 그런데 숲이가 새로운 방식으로 잠에 들자, 이전에 관찰하고 알고 있었던 것을 잊은 것이다. 

 물론 어제, 오늘 숲이를 관찰해서 우리가 찾은 방식이 내일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숲이를 재울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은 것'이 아니라, '숲이가 어떨 때 자고 싶어 하는지를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와이프가 말했다. 

'우리가 숲이를 재우는 게 아니야, 숲이가 우리에게 자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거지, 우리는 그때 도움을 주면 되는 거야'

 이 말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재운다는 표현자체가 얼마나 부모중심적인 표현인가? '재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순간 '얘는 재워주는데 왜 이렇게 안자?'라는 할 필요 없는 자녀에 대한 원망도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잊지 않아야겠다. 숲이는 계속해서 잘 자라고 있고, 잘 자랄수록 숲이의 의사표현은 커질 것이란 것, 그리고 그 의사표현을 부모가 이해하고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숲이와 우리 부부 행복한 삶에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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